장국현 현상, 예술의 가치(2)

by Wenza

장국현 소나무 사진작가 초대는 이제 3일 후에 열리게 된다. 많은 이들의 비난과 비판 속에서 법의 손은 장국현 작가의 손을 잡았고, '이익'이라는 명확한 자본 체계의 논리로 해석됐다. 이제 그의 사진전은 12일부터 26일까지 2주간 진행된다. 그러나 예술의 전당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의 전시 소개에 예술의 전당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예술의 전당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작품을 공공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어 <장국현 사진전>에 대한 대관계약을 취소했으나, 전시 주최사인 ‘미술과 비평’은 ‘전시회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 중앙 지방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본 건에 대해 서울지법 제51민사부는 ‘<장국현 사진전>의 준비 및 전시를 방해해선 안된다’는 판단을 내리고 예술의 전당에 통보하였습니다. 이에 본 전시는 법원 판결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장국현은 2011년∼2013년 경북 울진군 산림보호구역에서 세 차례에 걸쳐 수령 220년 된 금강송 등 금강송 11그루와 활엽수 14그루를 무단 벌목(산림보호법 위반)해 2014년 대구지법 영덕지원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10년여간 소나무 사진을 찍으면서 조선일보에 12년 9월 25일 자 기사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산의 정기와 기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우리나라 산과 소나무같이 정기를 내뿜는 것은 없어요.


기사에 따르면,

그는 울진 ‘금강송’의 모습을 촬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상북도, 울진군과 함께 울진 ‘금강송’의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등재를 위해 발 벗고 뛰는 중이다. 지난 5월에는 프랑스 파리 시청 국제미술관에서 ‘한국의 울진 금강송’이라는 주제로 2주간 사진전을 개최했다. 사진전을 관람한 파리 시민들은 울진 금강송의 자태를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그는 파리 사진전까지 마친 이상 금강송의 세계 자연유산 등재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의 그의 전시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 부분은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소나무를 베면서 까지 자신의 사진을 완성시키려 했으며, 그것이 단발성이 아닌 연발성 행위였음이 밝혀져 사진계와 예술의 전당 및 네티즌들의 언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는 11~13년까지 세 번의 무단 벌목을 했고, 금강송 11그루와 활엽수 14그루를 베었으며 그에게 주어진 벌금은 500만 원이었다. 그의 책임은 법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면 된다. 그러나 이 문제가 예민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예술의 윤리성'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왼쪽부터 마크 로스코, 쟝 샤오강, 데이안 허스트


우리네 사회에서 예술이란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 저변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사상이 있는데, 사실 정의하기 매우 어려운 개념이다. 이 개념을 알려면 20세기의 모더니즘이라는 흐름을 알아야 하는데, 친절한 책들이 많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검색해도 잘 나오니까. 뭐가 되었든. 포스트모더니즘을 단순화하는 사조가 기독교 신학에서 꿈틀꿈틀 대고 있다. 적어도 내가 학교에 있었을 땐 포스트모더니즘을 '다양화'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정의했으니까.




그렇다고 '다양화'라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언급한 이유는 무언가를 정의할 때, 정해진 정의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미학자이자 철학자인 조지 딕키(왼쪽)는 비트겐슈타인(오른쪽)이 언어의 가족 유사성을 발전시키면서 예술에 적용하게 된다.


간단하게 언어의 가족 유사성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겠다. 비트겐슈타인은 Game이라는 단어로 이 개념을 설명했다. 우리가 '게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생각들이 게임이라는 단어에 자리 잡는다. 예를 들면, 흥미나 즐거움이라던지 중독이라든지 말이다.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단어의 개념들이 '가족 유사성'이라고 불린다. 언어는 공동체의 약속이기에 같은 단어일지라도 문화와 사회가 다를 때, 언어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언어는 단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사용에 의미가 있다. 이렇게 해석의 방향이 열려 있는 경우를 비트겐슈타인은 Open Concept(열린 개념)이라고 부른다. 물론 닫힌 개념도 있다. 예를 들면, 손이나 발같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개념들을 말한다. 약간의 가지를 치면 그는 과거의 많은 사상가들이 열린 개념으로 쓸모없는 논쟁을 소비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닫힌 개념일까? 딕키는 비트겐슈타인의 열린 개념을 끌고 온다. 조지 딕키에게는 예술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평가적인 예술과 분류적인 예술이다. 전자와 같은 경우는 한 작품을 보고, 자신이 느끼는 아름다움. 즉 예술이라고 생각될 때의 경우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성질의 예술 평가이고, 예술이 아닌 것도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 자유 함이다. 후자의 경우는 말 그대로 장르적인 표현의 예술이다. 딕키는 여기서 예술세계의 인정을 말한다. 예를 들면, 미술계나 전시계 다시 말하면 "예술에 지위를 부여하는 사회 제도"에 의해 분류되는 예술이다.




여기서 장국현 작가의 작품의 예술성에 대한 입장은 열려있다. 그렇다면 윤리적인 입장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그는 평가적인 예술과 분류적인 예술의 범위 안에 있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진계에서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명확하다.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찍는 과정에서 잘못이 발생한 사진을 전시하는 것이 속죄가 될 것 같지 않다. 하지 않는 것이 속죄하는 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표 문화공간인 예술의 전당 쪽이 이번에는 옳게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한겨레, 3월 31일 기사)


장국현 예술의전당

장국현 현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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