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장국현과 예술의전당의 법적 공방은 장국현의 승리로 정해졌다. 이미 계획되어 있고, 준비되고 홍보까지 되어 전시를 취소하면 큰 손해를 예상되기 때문에 전시를 취소할 수 없다는 논리다.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하여 이 사건은 사진계 뿐만 아니라 예술계에서 논의가 될 전망이다.
이하는 필자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장국현 작가의 논란의 사진
우리는 이 사진을 의식하지 않고 볼 때에 아름다운 자연과 여백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수도 있을겁니다. 사진 하단의 그루터기가 보이신가요? 장국현 작가가 사진의 완성도를 위해 무단벌목을 한 흔적입니다. 약 220년 정도 된 금강송이라네요.
현재 장국현 작가에 대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요.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첫째, 사진 구도가 나오지 않아 무단으로 벌목했다는 겁니다. 벌목한 이유는 이상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죠. 더불어서 산림보호구역에 있는 금강송을 베었다는 점이고, 무단벌목은 불법에 500만원의 벌금형이 너무 가볍다는 거죠.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장국현 작가의 12년도 인터뷰인데요. 이런 말씀을 하셨네요.
“전 세계 최고의 자연유산인 우리나라의 산과
나무를 사진을 통해 보전하고 싶다”
“제 사진을 본 관람객들이 자연유산 보전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생긴다면 좋겠다”
둘째는 예술의전당과 장국현 작가의 의견충돌이죠. 예술의전당의 입장은 굳이 여론도 안좋고 작품윤리에 어긋나는 작가를 세계적인 작가만 모시는 곳에서 대관해줄 이유는 없는거죠. 장국현 작가에겐 기부를 위한 전시회를 계획한 것이 물거품이 될 위기입니다.
셋째로 사진계에서도 좋은 시선을 받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선 사진술에 있어서 좋은 구도를 맞춘다거나 타이밍에 있어서의 중요성도 있을겁니다. 그러나 기술을 넘어서서 사진예술은 촬영자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네요. 제가 아는 한 작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촬영하는 장소와 피사체가 동일해도 바로 그 순간과 지난 순간은 다른 사진이 됩니다. 이런 사고를 갖게 되는 순간 사진은 실존주의적인 장르가 되어버립니다.
윌터가 숀을 찾아 미국에서 아이슬란드까지 갑니다. 숀은 유령표범을 찍기 위해 몇일을 언덕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 있다 유령표범이 나왔고, 숀은 사진을 찍지 않고 그저 보기만 하죠. 그러자 윌터는 숀에게 왜 찍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숀이 대답하죠.
"때로는 있는 그대로를 누려야 해. 나를 위해서"
이렇듯 사진에는 작가의 철학이 주를 이루는 듯합니다. 사진은 그 결과물이지 사진작가에게는 하나의 수도행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리적인 피사체를 찍으나 관념적인 성질을 드러내는 것이죠.
사진작가로서의 장국현의 사진들은 감탄이 나올정도로 아름다운 사진들과 우리나라의 강산의 아름다움을 잘 느낄수 있도록 친절한 사진들이 많아요. 그러나 가장 아쉬운 점은 사람의 한순간의 실수인거죠.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고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한 이상, 그는 더이상 홀로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는 이제 시대에 뒤쳐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중요한 사건이라 생각됩니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죠. 그 안에 의미를 담는 것은 찍는 이나 보는 이에게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화폭의 그림처럼 실제를 지워내는 것은 사진 그 자체의 힘을 벗어나는 게 아닐까요? 자연유산을 지키려고 자연을 파괴하다뇨? 네로가 로마를 불태우는 모습이 떠오르네요.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