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대작 논란

by Wenza

최근의 조영남의 그림이 고용된 화가의 그림에 덧칠한 뒤 사인해서 판매되었다는 사실에 SNS와 뉴스에 가득하다.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이 있는데, 한 기사에 따르면 이렇다.


1. “동시대의 미술은 물리적인 과정을 조수에게 맡기는 것이 드물지 않다.”
2. “미술계에 굳은 관행에 대해 외부에서 너무 몰라서 생긴 일”
3. “관행이라는 말이 틀린 얘기는 아니다”
4. “다른 사람의 기술을 빌렸다면, 그건 협업이라고 해야 한다.”
5. “관행이어도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내용은 위의 링크 참고


기사는 현시대의 미술전문가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의 의견들을 잘 정리해서 보도하고 있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 두 번째 의견에 공감하는 바이다. 물론 반이정 미술평론가의 의견은 무척이나 날카로워서 거칠게 보이지만, 그의 문체에 집중하지 않는다.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분노하는 많은 이들이 있을 거다. 이는 작가 개인이 만들어야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은 작가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진다.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겠다만,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볼 때 마냥 비판적으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팝 아티스트인 앤디 워홀도 자신의 작업실을 Factory라고 불렀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릴린먼로 실크스크린도 앤디 워홀이 직접 작업한 게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출처가 기억이 안 난다.


살아_있는_자의_마음속에_있는_죽음의_물리적_불가능성_2.jpg 데미안 허스트, 살아 있는 자가 상상할 수 없는 육체적 죽음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a0011285_47cac89339ccd.jpg 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개념예술이나 구조 예술은 예술가가 직접 작업하지 않고, 설계만 해서 기술자에게 맡기곤 한다. 현대 예술가들은 조수를 고용해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브릿 아트의 데미안 허스트도 동일하다. 건축도 동일한 범위 내에서 다뤄져야 하는 예술 분야 중 하나 아닐까?


현대 예술에서 예술가는 작품의 소유권자가 될 수도 있으며, 작품 자체가 되기도 하고, 작품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작품 자체를 포기한다는 말의 의미는 예술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반예술을 시도하는 행위다. 모든 것이 예술이면 모든 것은 예술이 아니다.


내가 볼 때, 현대의 미술은 예술가가 없어도 상관없다. 나는 객관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조지 디키가 말한 평가적인 예술 분류에 더 마음이 끌린다. 디키는 분류적 예술과 평가적 예술로 예술을 개념화했는데, 분류적 예술이란 예술계에서 인정한 예술을 의미하고, 평가적 예술은 개인이 예술로 인정하는 예술을 말한다.


조영남이라는 '이름의 가치'라든지, 대작을 해서 덧칠한 사실은 '예술'이라고 느낀 개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구입의 목적은 알 바 아니다) 이 사건은 조영남의 그림에 대한 예술의 가치를 논하거나 예술의 가치를 비난함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조영남과 보수를 받고 일한 무명 화가 간의 정당한 거래가 이뤄졌는지 논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랜 시간 말을 꺼내지 않던 그가 왜 이제야 나오는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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