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홍대 정문 앞에 떠들썩한 조각상이 말이 많다. 조각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손가락의 모양이 일베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 기사에서 사진을 가져왔는데, 설치된 이후 그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던 일베를 혐오하는 이들인지 몰라도, 조각물에 계란을 던지는 일까지 생겼다. 기사에서 작가 홍기하(4년)의 입장을 소개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정문 인근에 설치된 극우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 일베를 상징하는 석고상을 설치한 것은 조소과 4학년 학생 홍기하씨(22)로 밝혀졌다. 홍씨는 31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작품 의도를 묻는 질문에 "일베를 옹호하려는 것이냐, 비판하려는 것이냐 논란이 있는데 그런 단편적이고 이분법적 해석을 위한 작품은 아니다"라며 "일베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현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실재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베라는 건 실재 하지만 그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가상의 공동체 같은 것인데 그걸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체로 만들어보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위의 링크 참고)
우리가 자주 접하는 미디어와 현대의 매체는 원본과 사본이 동등해지는 현상, 시뮬라크르라는 표현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는 쟝 보드리야르의 표현인데, 과거의 미술과 문화에서는 원본의 권위와 중요성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원본보다 더욱 원본 같은 사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사본은 원본과 같은 아우라를 갖게 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던 모나리자의 그림을 이제 우리는 전 세계 어디에 있든지, 경험할 수 있다. 심지어 가보지 않은 장소도 구글맵으로 다닐 수 있으며, 360도 카메라로 제한된 시야에서 벗어나 타지를 현지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를 시뮬라크르라고 말한다. 어쩌면 홍기하의 조각상도 현실의 민낯이었던 가상의 세계를 다시 현실로 재구성함으로써 인간 세계의 이면을 표현하고자 함이 아닐까?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수많은 인격과 역사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 홍기하도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쩌면 몰 윤리적인-비 이타적인 성향의 모습의 상징을 실제화함으로써 동시에 누군지 알지 못하는 정확하게 말하면 전인적인 의심과 가능성을 표현하고 있다. 현시대에 일베라는 흉측한 돌연변이 집단이 생긴 것은 일베라는 타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일베 이전에도 타인을 혐오하고, 조소를 날리는 인간 내면의 잔인성과 이기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일베와 같이 대규모로 모이지는 않았지만
홍기하의 조각상의 논란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는데, 가장 선동적이며 논란이 되는 문제는 조각상이 주는 숭배의 성격이다. 조각이 주는 1차적인 의미는 일베를 상징하는 손 모양이다. 작가가 어떤 고상한 뜻을 가지고 만들었든 간에 그 조각은 일베를 상징한다. 다른 논란은 홍익대학교 앞에 설치를 했다는 사실인데, 이는 홍대생 입장에서 마치 홍대를 대표하는 조각상같이 보여 일베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불쾌한 이미지를 갖게 한다. 그러나 후자의 이유의 이면에는 우리 시대에 가장 핫하다는 홍대 앞에 인간이 갖고 있는 내면성을 드러내려 하는 상징적 작품에 가장 걸맞은 장소라 생각한다.
홍기하는 작품의 제목을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라고 정한다. 말 그대로 무소부재한 성격을 갖고 있다. 흔히 기독교 신학에서 신의 성격 중 하나를 무소부재한 성격을 말한다. 이는 말 그대로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어디에다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디에나 있으면 어디에나 없으리. 홍기하는 작품에 무소부재한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하나의 신성을 피해갈 수 없다. *여기서 신성은 거룩함을 말하지 않는다.
작가 홍기하의 조각상이 공식적으로 오픈식도 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슈가 된 상황, 사회에서의 비난을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할 것인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