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심오하면서도 단순하기도 한 그의 그림은 우리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그의 영화 《옥희의 영화》에서 벤치에 있는 우유곽을 보고, 젊은 남자는 말한다.
"이 우유곽은 어디서 온 걸까?"
이게 뭔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어쩌면 철학적인 질문이겠다. 왜냐면 존재의 원인과 목적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젊은 남자는 그 답을 얻지 못한다. 그에게는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은 현실에서의 자신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북촌방향》은 영화감독 성준(유준상)이 상경하면서 시작한다.
"영호(김상중) 형만 만나고 갈 거다. 아무도 만나지 않을 거야."
그러나 결심대로 되진 않은 게 인생 아닐까? 영호만 만나기로 결심한 그에게는 새로운 만남과 익숙한 후횟거리들만 가득하다. 보람(송선미)은 술자리에서 성준에게 20분간 4명의 사람을 만났는데, 우연히도 영화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너무 이상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성준은 말한다.
"이유가 없죠. 이유 없이 일어난 일들이 우리의 삶을 이루는 건데, 우리가 취사선택해서 생각의 라인을 만들어서 그걸 '이유'라고 하는 거죠."
성준은 모든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란다. 개인이 인지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해서 '이유'라는 게 형성된단다. 그러나 말을 얼마나 멋지게 포장하든, 그의 말은 어떻게든 포장된 합리화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에게는 사랑도 아무런 이유 없이 우연히 생겨난 거다. 그에게 삶은 개연성 없는 단발성 사건의 연속이다. 정말일까?
그게 우리한테 좋아
그는 관계를 연장시키지 않는다.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하고 싶어서 일까? 아니면 그녀를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일까? 참 이기적이다. 그는 섹스는 하고 싶지만, 남자로서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다. 그리고 동시에 명예를 잃고 싶지 않지만, 그것을 유지하고 지켜낼 꺼리는 미미하다.
갑자기 상경한 그에게 과거의 추억이었던, 좋았던 기억들은 환상에 머물고 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동시에 자신의 흔적에 대한 책임을 벗어나려는 최면, 망각을 향한 욕망이다. 적어도 그에게는 북촌뱡향은 망각을 향한 욕망과 동시에 욕망을 위한 망각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