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도에 개봉한 영화《피아니스트》는 폴란드계 유대인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전기를 다룬 영화다. 독일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고, 유대인들을 게토라는 곳으로 보내 수용했다가 젊은이들만 축출해서 일꾼으로 부리게 된다. 슈필만은 죽음의 수용소로 가는 길에서 제외되게 되고, 유대인 일꾼들 속에서 생활하면서 생명을 연장한다.
홀로코스트, 번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는 독일 나치가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짐승으로 여겼고, 벌레 죽이듯이 그들을 살해했다. 20세기의 최악의 광기라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한 영화는 우리에게 많이 익숙하다. 익숙하다는 것은 지난 과거에 대한 반성과 기억의 의지라고 해석해도 괜찮다.
(위의 사진은 슈필만과 슈필만의 무덤, 사진은 위키피디아)과거를 기억하고, 과오를 인정하는 것은 나와 같은 세대들에게 좋은 폼이 된다. 영화 속의 슈필만에게 어째서 그런 재앙이 닥쳐왔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끊임없이 살아남으려고 한다. 생존에 대한 필사적 노력의 시작은 무고하게 살해된 가족들의 무게도 있겠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이다. 다시 연주하기 위해.
전쟁 한 가운데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살아남는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직면할 때면, 우리는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다.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목적과 방향성에 대한 혼란, 불안정성으로 인한 두려움. 그 상황에서 슈필만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아야 했다. 그는 피아니스트고, 그 정체성이 그의 존재 자체니까.
영화《피아니스트》에서 슈필만은 단지 하나의 생명이 아닌 유대인들의 생명이며, 예술가의 영혼이고, 역사의 흔적으로 그려진다. 잊지 말아야 할 것,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