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사회는 '혐오'에 빠져 살고 있다.
최근 강남역에서 일어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우리네 사회는 '여성 혐오'에 대한 문제를 공론하고 있으며, 더불어 여성의 인권과 여성이기에 살아왔던 세상에 대한 이해와 주어진 공포심과 두려움으로 살아왔었던 여성들의 아우성이 뜨겁다.
이와 다르게 남성들이 잠재적 성범죄자, 잠재적 살인자로 낙인찍힌다는 편협을 편협으로 대처하는 것에 대한 주장을 하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조현병을 갖고 있는 묻지마 살인으로 정의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혐오 살인을 주장하는 일부에게 일부 남성들의 아우성도 따듯하지는 않다.
미국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2016)은 동성애 클럽에 들어가서 그들을 처단하겠다며, 약 50명을 살해했다. 또한 최근에 서울신대와 관련 있는 트위터에서는 믿을 수 없는 트윗이 올라왔다. 필자는 페북에 누군가가 공유한 글을 통해서 보게 됐는데, 혐오라는 감정은 어쩌면 종교적인 감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리네 사회에서 혐오라는 표현은 단지 이유를 가지고 싫어하는 의미와는 다르다. 어쩌면 공포증(phobia)에 더 가까울 지경이다. 공포의 대상의 성격은 다양하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무지에 대한 공포, 믿음의 붕괴에 대한 공포. 공포로 인한 불안을 잠재우려는 방법은 많다. 공포의 대상을 알아가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고, 후자에 대한 공포는 고정되지 않은 세상에서 고정된 것을 찾으려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물론 그게 잘 안돼서 생기는 문제겠다만.
예로부터 동성애를 다룰 때, 질병으로 다루거나 악마가 들었다고 오해했었다. 이러한 마녀사냥들은 나와 다르다는, 나와 같아야 한다는 공동체적 폭력성으로부터 기인한다. 왕따와 같은 따돌림의 문제도 동일하다. 나와 다르니까. 그리고 마치 다른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 그러나 왕따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20세기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동성애는 정신의학에서 질병 분류에서 제외된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닌 사랑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거다. 이 또한 동일하다. 다수와 같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보는 사실이 정상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감정의 근간에는 혐오라는 감정이 깃들어 있다. 이해가 없는 판단은 타인을 규격화시키고 강제한다. 그러나 명심해야 될 것은 사랑과 혐오라는 감정은 결코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혐오라는 감정도 마치 다수가 소수를 강제하는 것처럼 혐오라는 감정을 없애려는 소모적인 싸움이 많기 때문이다. 남혐이든 여혐이든, 무언가를 혐오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무언가를 배척하고 심판해야 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번 여러 사건을 뛰어넘는 사회 근간에 뻗어있는 혐오의 감정을 단지 대상적이며 심판적인 혐오를 그리는 것이 아닌가?
혐오는 감정이다. 감정은 모두에게 있으며, 컴퓨터 파일 삭제하듯이 없앨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가 세월의 상흔을 품고 편협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자세가 옳지 않은 것이 아닌 거다. 타인의 사상을 강제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은 없다. 우리는 혐오 자체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보다 우리네 사회의 폭력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유 없는 폭력, 나는 그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