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자유의 재생산 : 엑스 마키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우리에게 환상과 충격으로 다가온다.

by Wenza

엑스 마키나? 어디선가 들어본 표현이다. 책을 찾아보니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에서 읽었던 표현이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극의 갈등을 신의 개입으로 완전히 해결되는 것을 "deus ex machina(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는 직역하면 "기계 장치로 내려온 신"을 뜻한다. 당시 로마의 연극에서 사용되었던 특수효과 장비를 통해 신적 효과를 냈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상상할 틈도 없는 영상들이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약 2000년 전의 사람들에게 소리와 효과로 이뤄진 연극은 그들에게 얼마나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본 영화는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다. 과거에서부터 인공지능에 대한 영화는 다양했다.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다룬《HER》,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 감정을 갖게 된 로봇 《아이로봇》등 우리에게 인공지능 로봇의 영화는 어떤 의미로는 두려움으로, 어떤 의미로는 설렘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한 유명 검색엔진 회사에서 수석 프로그래머인 칼렙은 회장 네이든의 집에 초대되는 추첨에 당첨된다. 깊은 산 속에 있는 네이든의 연구소에서 칼렙은 인공지능 로봇인 에이바와 튜링 테스트를 하게 된다. 튜링 테스트는 기계가 얼마나 인간과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테스트를 말한다. 이 테스트의 목적은 대화의 대상이 인간인지 아닌지에 대한 혼란이 목적이다. 간단하게 인간인 줄 알았는데, 로봇이었다면 성공하는 테스트다. 그러나 칼렙에게 주어진 테스트는 단순한 튜링 테스트가 아닌, 마치 인간처럼 보이는 로봇과의 대화다.



필자는 인공지능에 관련한 글 중에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를 자주 인용해왔다. 이는 원본보다 원본 같은 사본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매체들이 현대 사회에 가득할 것이라는 선지자적 메시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본 영화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오히려 사본으로서의 인공지능이 아닌, 새로운 생명으로의 존재다. 정확히 말하자. 진화한 인공지능 로봇을 그린다.


장자의 호접지몽은 옛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무엇이 꿈인지 생시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과거에 말하던 "원본과 사본의 경계"는 사라졌다. 우리는 광대한 정보 속에서 가상과 현실 속에서 각자의 경험치를 쌓으며,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적응한다." 어쩌면 원본과 사본의 경계는 의미가 없어졌을까? 또 다른 나 자신이 있어도, 그건 내가 아닌 타인일 수도.



영화 중간중간에 20세기의 대표적 회화 작품들이 나오곤 하는데, 중심적으로 다뤄진 것은 잭슨 폴락의 액션페인팅이다. 잭슨 폴락의 그림은 남근 중심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곤 하는데, 마치 흩뿌리는 작업 방식 때문일 거다. 실제로 폴락은 캔버스에다 자신의 오줌을 뿌려 그림을 완성하기도 했다. 또한 인지적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오롯이 본능적 요소로 그려내는 무계획적 계획, 어쩌면 캔버스에 대한 성적 폭력성을 드러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내가 본 회화는 구스타프 클림프의 "마르가르트 스톤보로 비트겐슈타인의 초상"이다. 알아본 바로는 비트겐슈타인 막내딸의 초상이었고, 지성과 독립성이 강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 초상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락방에 보관했다고 한다. 독립적이고 힘있는 그녀는 순진하고 온순한 여성으로 그려졌고, 닮지도 않았다. (밑의 그림은 클림트의 여성을 보는 이중성이 나타나지 않은 유일한 그림이라고 한다.)


구스타프 클림프의 "마르가르트 스톤보로 비트겐슈타인의 초상"


영화《엑스 마키나》는 남성 중심적 액션페인팅과 여성 중심적 초상을 보여주고 있다. 잭슨 폴락의 작품은 네이든의 철학이 담긴 그림이다. 인공지능 로봇의 방에 장식되어 있는 비트겐슈타인의 초상은 마치 그림처럼 다락방에서 밝은 곳으로 나오게 됨을 의미한 걸까? 인공지능 로봇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다.



네이든은 인공지능을 만들지만, 가장 큰 실수를 하고 있다. 그것은 완전한 인공지능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녀를 소유물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앞선 글 중 영화《채피》를 통해서 로봇 인권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때, 그에 따른 책임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에이바의 모습은 심히 관능적으로 다가온다.


힘의 논리와 끝없는 소유욕은 또 다른 환상과 또 다른 재앙을 재생산할 뿐이다. 어쩌면 인간의 문화와 감정을 보고 배운다는 사실은 어쩌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본 영화에서 에이바가 보여준 모습은 지독히도 사람답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ccelerando : 위플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