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극단일까? : 하트 오브 더 씨

언제나 극단은 현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by Wenza

본 영화는 19세기 소설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이 만들어지게 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한 낯선 이, 멜빌이 에식스 호의 마지막 생존자를 찾아 한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에식스 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18세기에서 19세기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미지의 장소가 아직은 존재하는 시기였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보물.



영화는 당시에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로 보여주고 있다. 오웬 체이스를 통해서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겸손함 그리고 조지 폴라드 선장을 통해서 신은 인간을 선택했고, 인간은 지구를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오만함. 물론 현시대에서 폴라드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면,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게다. 그러나 그 시대에서 중산층, 기득권층이 갖고 있는 사상은 폴라드와 다르지 않았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성서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 28절)

이 구절은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는 대상으로 보기 적합한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인간의 정복욕이나 욕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신의 창조질서에 근거하여 관리하라는 의미가 강하다. 파괴가 아닌 조화와 질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자연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신 앞에서의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세를 비롯한 근대 종교 역사는 인간을 위해 신을 가져다 사용한다.


허먼 멜빌에게 에식스 호 이야기를 전하는 토마스


석유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고래기름으로 연료를 유지했다. 그래서 포경선주들은 당시의 재력가라 해도 무방하다. 인간이 이 땅에 번성하여 충만하려면, 많은 연료가 필요하다. 필요는 욕망에서 기인하고, 욕망은 만족하지 못한다. 포경선 에식스 호도 많은 고래기름을 얻기 위해 먼길을 떠난다. 그러다 칠레 어느 섬에서 표류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악마에게 공격당해 겨우 살아남았다고 한다. 폴라드와 체이스는 선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가문의 명성을 위해서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항해한다. 자신들은 다를 것이라는 미신.


에식스 호를 공격하는 모비딕


그들은 결국 모비딕에게 공격당하고, 보트 세 척으로 표류하게 된다. 영화는 인간이 극단으로 몰렸을 때, 생명을 어떻게 연장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언제나 극단은 현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의문은 원인을 찾으려 하고, 원인은 아무것도 낳지 못한다. 체이스와 모비딕이 서로를 직면했을 때,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서로 죽이기 못해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에.


모비딕은 자신이 삶의 터전에 인간이 침략해 가족과 친구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그 상황에 대한 의문만 가득할 뿐이다. 인간은 그저 극단에 가서야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거다. 무엇이 극단일까? 우리는 각 극단 위에서 위태롭게 서있는지 모른다.


표류하는 보트를 공격하는 모비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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