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싸움은 개인의 정서적 유대관계를 축소화하고, 사물화 한다.
우리는 목숨을 걸며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을 무언가로부터 지키는 행위.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며 갈등을 최소화하는 천국이라는 무한한 상상의 장소가 우리네 삶을 이끌어가는지 모른다. 우리의 환상으로 만들어진 천국은 우리의 욕망을 정직하게 투영하고 있다. 욕망은 본연 자기의 부재로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갈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대상의 부재를 말한다. 자유를 외치는 이유는 내게 자유가 부재한 탓이고, 신을 구하는 이유는 내게 신이 없기 때문이다. 신에게 기도하는 신앙의 이면에는 신의 부재를 뜻하기도 한다. 변화에 대한 자신의 필요성을 외면하면서 말이다.
갈등과 싸움은 인간 본연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싸움의 목적은 물론, 평화다. 그러나 평화는 매우 상대적이어서, 누군가의 평화는 누군가의 희생을 야기한다. 인류 역사 간의 수없이 많은 전쟁은 평화를 갈구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우리나라에서 힘없는 이들의 착취당함에 대해 대변하고, 반응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본 영화 《카트》도 한국의 대형 마켓의 계약직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영화이며, 사회적 약자로 그려지는 이들이 권력자들에게 대항할 힘이 있음과 동시에 악순환을 막으려는 노력을 그리고 있다.
필자는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작품들을 적지 않게 접했다. 이미 앞서 쓴 리뷰 《위로 공단》도 한국사회에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서 다룬 영화이다. 이미 JTBC에서 드라마로 방영된 웹툰 원작 《송곳》도 대형 마켓에서 행해지는 불법적이고, 비 계약직과 계약직이 겪고 있는 비윤리적인 일들을 폭로한 적이 있었다. 미미하게나마 우리에게 노동조합의 중요성과 자신을 지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알렸다.
딜레마. 모든 싸움은 상대적이다. 모두가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 서로 간의 지키기 위한 것을 위해 싸운다. 어떤 FPS 게임은 적을 죽일 때마다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와 같은 메시지가 나온다. 모든 전쟁과 싸움은 개인의 정서적 유대관계를 축소화하고, 사물화 한다. 그래야 죽이기 쉬우니까.
우리가 자본주의를 쉽게 비판할 수 없는 이유는 자본주의를 우리 자신이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서적 유대관계가 없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잔인하다. 더불어 욕망이 유대관계보다 더 클 경우에는 더더욱. 우리네 사회는 힘 있는 자에게 더 없이 약하고, 약한 이들에게는 강경하다. 폭력적 평화의 방식은 라틴어 팍스 PAX라고 한다. 이는 로마의 평화의 의미인데, 이는 한쪽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평화다. 우리네 사회의 평화의 방식은 팍스가 대부분이다. 권력자나 노동자나 팍스의 평화를 따라가면, 서로 다른 것은 돈밖에 없을 거다.
영화 속 그들이 지키기 위해 싸우는 근본적인 이유는 평화라는 근사한 것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함께 하는 이들과 큰 문제없이 살아가길 원할 뿐이다. 후대의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