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에서 볼 수 없는 감정은 곁에 있을 때 볼 수 있다.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드와 분석심리학자 칼 융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 때 프로이드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융이 프로이드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정신의학에서 치료의 방법은 다양하지만, 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는 대화치료법이다. 대화라는 방법은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 방법은 상대를 환자라고 정의하는 것이 아닌 나와 동일한 대상으로 대하는 방법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은 관찰과 통계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정의한다. 모두 알고 있듯이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은 성적인 면에 집착한다. 인간의 원동력을 섹스로 전제하고 있으며, 섹스에 대한 단절이 있을 때 정신적 외상을 입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프로이드는 현 상태에 대한 정신의학적 문제는 과거의 성적 방향에 대한 좌절로 인해 생겼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한쪽의 정상화를 말한다. 그러나 융은 이런 기준을 거부하게 된다. 단순하게 몇 가지 증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 이렇듯 융은 그렇게 프로이드와 결별하게 된다. 그 과정 중에 융은 샤비나 슈필타인이라는 환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와의 대화 중에 융은 그녀가 마조히즘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의사로서 그녀를 치료하려고 한다. 그러나 치료 과정 중에 만난 정신의학 의사이자 환자인 오토 그로스를 만난다.
필자는 한 때 정신과 의사와의 대화를 하게 되면, 정신병을 얻게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신의학 의사와 정신의학 의사가 서로 만나면, 대등한 관계를 이루게 된다. 환자와 의사의 계급적 관계가 아닌, 정상과 비정상의 계급적 관계가 아닌 그런 관계 말이다.
오토 그로스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말한다. 그는 자신에게 상담을 받으러 오는 환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고 말한다. 환자가 자살을 시도하면, 자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더불어 자신이 환자와 섹스를 하기 원하면, 환자의 의사를 묻고 섹스를 하기도 한다. 그는 도발적이며, 파격적이고 본능적이다. 그의 치료법은 욕구를 차단하지 않고, 그들이 갖고 있는 현상과 욕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결핍을 충족으로 대체한다. 그것은 오토 그로스의 방법이었다.
상담학에서 금기시되는 것은 내담자에 대해 사적 감정을 품는 행위다. 정신의학도 동일하다. 내담자를 향한 사적 감정은 상대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불필요한 감정이입과 객관성을 갖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객관성이란 창은 주관성이란 방패를 결코 뚫지 못한다. 겉에서 볼 수 없는 감정은 곁에서 볼 수 있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들어가는 것만큼 부담스럽고, 위험한 것은 없다. 타인에 간섭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그렇게 위험한 거다. 우리는 관계의 줄타기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다. 위험성을 벗어버리려 객관성이라는 환상을 그리는 것은 아닌가? 개인과 개인과의 교집합 속에서 우리는 부담과 어려움을 갖고 다가선다. 영화는 정상과 비정상의 관계가 아닌 개인의 교집합, 감정의 소용돌이의 무게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