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허물 : 하녀

자유란 결코 온전한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by Wenza

사람은 언제나 자유를 갈망하면서 한편으론 통제받길 좋아하곤 한다. 물론 일반화할 수 없다. 자유의지라고 들어봤을 거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는 신의 규칙을 깨어 선악과를 먹는다. 그들은 신과의 관계가 손상됐고, 결국 에덴에서 쫓겨난다. 이는 신을 향한 인간의 최초의 자유의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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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에서 신의 권력(예정)과 자유의지에 대한 논리가 모순에 있어서, 신의 은총으로 인해 현재 우리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것을 설명한다. 우리는 이것을 "유한한 자유"라 표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자유는 결코 온전한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가 유한하다는 것은 인간 자신의 한계성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어쩌면 탄생부터 홀로 자유롭게 존재할 수 없는 인간에게 자유란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란 공(空). 아무것과 얽매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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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는 종을 뜻하는 말인데, 종이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존재이다. 영화 하녀는 은이가 고용주의 집에 취직하면서 훈과의 육체적인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해라는 눈치챈다. 해라는 은이가 매일 먹는 보약에 독약을 섞어놓고, 결국 은이는 훈의 아이를 유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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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은 주인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종이 주인에게 복종이 아닌 자신의 자유를 주장할 때, 그에 따른 보복이 가해진다. 소유물은 소유주에게 반항할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우리는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얼마 없다고 느낄 때 '절망'이라는 감정을 갖는다. 체제를 전복할 수 없는 자신 유한성을 체감하고, 권력층이 주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진정한 자유. 과거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한 '자살'이 운명과 죽음의 불안에서 자유롭게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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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매달아 자신을 불태워 자유를 말한 은이의 자살은 오랫동안 그 집에 하녀로 일했던 병식은 하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 집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훈의 집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훈의 딸의 생일을 축하하는 장면으로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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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필자는 불타는 은이의 시체를 바라보는 훈의 딸의 얼굴에 주목하고 싶다. 성경에는 출이집트를 주도한 모세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신의 인도를 받아 광야에서 타지 않는 가시나무를 직면한다. 그 사건을 통해 모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은이의 타지 않는 불길은 훈의 딸과 보는 이에게 던지는 광기로 그려진 전복의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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