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인가로부터 소속되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성장주의, 이타주의, 해체주의, 인상주의.... 우린 수없이 많은 ~ism을 듣고 있다. ~주의라는 표현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곤 한다. 또한 개인의 정체성과 동시에 무언가의 소속감을 갖게 한다.
역사 속에서 다양한 주의들이 불린다. 미술에서는 모더니즘으로 넘어오는 시기에 입체주의나 다다주의와 같은 주의가 있고, 철학사를 돌아보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예들이 있다. 최근에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개인주의'라던지 '난 그런 거 안 하는 주의'와 같이 사용되고 있다.
주의라는 표현에는 현재에서 과거를 정리하는 역할과 개인의 표현 수단으로 사용된다. 필자는 종교계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주의'를 많이 접했다. 복음주의, 신학적 보수-진보주의, 예수 주의 등 수없이 많은 주의. 보통 이러한 주의들은 개인의 소속감을 강화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주의라는 표현은 소속감과 정체성을 알리는 동시에 배타적인 성격을 갖곤 한다.
우리는 소속감이라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여긴다.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접할 수 있는 표현들. "왜 영화를 혼자 봐?", "그 나이 먹도록 결혼-취직을 못했어?"라든지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에는 틀림없으나 복수를 지향하는 단수임에도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결국에는 개인으로서의 존재적 완전을 이뤄야 함이 필수적이라는 것. 그럼에도 왜 개인은 물리적 소속감, 정치적 소속감, 예술적 소속감, 정신적 소속감, 종교적 소속감을 추구하는 것일까? 소속되지 않는 개인은 도태되고 마는 것일까?
지금까지 부지런히 읽어준 감사한 독자분들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단체라는 거야? 개인이라는 거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개인의 한계를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더불어 사람과 인간의 모순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는 단체와 개인의 사이에서 단체에도 개인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을 수 있는 권리적 의지를 말하고 싶다.
개인은 어떤 것에도 소속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로운 선택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가지려면 전제되는 사실은 개인으로서의 존재적 완전을 이뤄야 함이다. 언제든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소속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는 개인의 존재적 완전 이전에 소속감에 취해 개인이 아닌 단체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 우리네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그런 흐름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를 주의에 중독되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