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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za Aug 27. 2016

불편한 당연함 : 서울역

근원적 문제제기는 연상호에게는 무의미하다.

연상호 감독, 그의 파급력은 굉장하다. 영화 《부산행》의 흥행과 더불어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전국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연상호의 작품을 훑게 되고, 우리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한 획을 체험하고 있다. 물론 애니메이션 감독의 흥행은 주목할 만 하지만, 이 현상이 한국 애니메이션 계에 큰 영향을 주긴 어려울 것 같다.



연상호의 영화를 보고, 흔히 표현하는 말로 "지옥도"라고 부르곤 한다. 마치 환상의 유토피아와 같이 긍정의 미래를 그리는 영화와는 다르게, 현실 그 자체의 지옥의 모습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좌절된 희망을 그리고 있다. 그는 실제로 애니메이션 《지옥:두 개의 삶》을 통해 현실의 잔인성과 환상의 잔인성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리기도 했다.


연상호는 《사이비》나 《돼지의 왕》에서 좌절, 즉 믿음의 대상에 대한 실족을 그렸다. 더불어 옳은 가치의 혼란과 옳다는 것에 대한 모순을 지적한다. 우리는 무언가 문제가 생길 때에 원인을 찾고, 책임질 사람을 찾아낸다. 그러나 원인과 범인을 찾는 것이 현상을 해결하진 못한다. 원인과 결과라는 것은 현상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닌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불과하다.



오히려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은 우리가 봐야 할 것을 놓치게 만든다. 한없는 어둠도 다르지 않다.  적당 빛과 어둠의 공존, 우리 삶을 이루는 균형이다. 연상호 감독의 다양한 작품들은 빛나는 희망과 한없는 어둠 속에서 한 없이 공평한 연출을 보인다. 다시 말하면, 원인과 결과에 대한 욕구가 서로를 향한 칼날로 변화하고 있다. 무언가를 탓하는 것은 끝이 없는 소모적인 행위다.



한 작품의 제작자는 하나의 세계관 속에서 신으로 강림한다. 그러나 동시에 제작자의 한계는 감정이입으로 인한 공평하지 않음이다. 이와 다르게 연상호 감독은 마치 희망과 좌절을 공평하게 그려냄으로써 우리네 사회 속의 부조리와 소모적인 싸움들을 낱낱이 흩뿌린다. 보는 내내 불편했던 것은 그들의 반응이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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