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참, 우리 맘처럼 안된다.
포크송, 지금 우리에게는 추억에 묻힌 장르의 음악이다. 미국 빌보드 차트에 상위권엔 힙합이 가득하고, 우리나라 음악 순위는 아이돌 음악과 힙합, 드라마 OST로 가득하다. 몇 년 전 우리나라 포크송 열풍이 쎄시봉을 통해 문화흐름을 타곤 했다. 포크송이란 게 민요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 포크송은 미국 민요를 번역해서 불렀기에 애매하지만 말이다.
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무명 가수 르윈의 날 것의 삶을 그리고 있다. 가진 건 몸과 노래밖에 없는 그에겐 지인들의 집에 얹혀사는 것, 그 외에 추운 겨울을 살아낼 방법이 없다. 자존심은 현실적 수준에 비례한다. 가진 것이 없는 만큼 얼마 없는 가진 것에 목숨을 건다. 마치 르윈의 음악에 대한 자세는 잃을 게 없는 우리네 삶 속에 잘 깃들어있다.(적어도 나한테)
르윈의 삶은 사건의 연속이다. 삶이 그렇겠다. 항상 새로운 무언가가 겨우 이어진 안정을 흩어놓는다. 어쩌면 그가 이뤄놓은 역사에 책임을 지는 걸 수도. 무언가 원인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생기는 거겠지.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는가? 우리는 현상에 대해 책임을 떠넘길 누군가가 필요할 뿐이다.
앞서 말한 자존심과 수준의 비례에 대해서 말한 가장 큰 이유는 영화 내내 르윈의 모습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남의 평가를 듣는 순간 우리는 영원한 눈칫밥을 먹고살아야 한다. 남의 평가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방법은 내 가진 것에 대한 가치를 끝없이 올리는 것. 이를 평가에 대한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을까?
르윈은 어느 순간 자신이 갖고 있는 책임을 실감한다. 더불어 그 자체를 그저 받아들인다. 환상에 대처하는 그의 방법은 지루하고, 명료하게 그려지고 있다. 더 이상 잃은 것이 없는 그는 자신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다. 세상 참, 우리네 맘처럼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