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카즈 감독은 우리에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더 유명하다. 나는 그의 영화 《바다 마을 다이어리》를 보고, 감독이 연출한 영화를 찾아보게 됐다. 그러다 배두나 주연의《공기인형》을 찾았다. 포스터에서 보듯이 메이드복을 입고 있다. 메이드라는 말 그대로 '하녀'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종과 주인의 수직관계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소유관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소유된 대상은 주인의 물건이 된다.
우리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종관계의 기준은 급여자와 수급자로 구분된다. 이 사회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온전히 개인주의적이어야 한다. 개인주의라 함은 타인이나 무언가의 가치보다 자신의 이익이 더 우선적으로 점해는 가치를 말한다.
요즘 '어른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성인들이 장난감이나 피규어를 모으는 현상을 빗대어 사용하는 합성어다. 과거에는 오타쿠라는 혐오적 표현이 '어른이'라는 그나마 순화된 개념으로 전환되고, 취존(취향 존중)으로 개인만의 특수한 영역으로 인정되고 있다. 느릿하지만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다.
섹스돌도 피규어와 같은 인형이지만, 일종의 자위도구이다. 실제 사람 크기로 제작하여 성관계를 하듯이 사용하는 성인용품. 섹스돌의 발전이 어디까지 왔는지 궁금해서 찾아보기도 했다. 위의 사진처럼 생각보다 높은 퀄리티의 피겨처럼 섹스돌도 많이 있는 걸로 확인된다.
본 영화에서 공기인형인 노조미(배두나)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인정하는 부분을 반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이러니한건 영화 내에서는 공기인형에 불과하지만 우리네 눈에는 살아 있는 여자가 말하고 있다는 거다.
"나는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대체품"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단순한 도구에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현대의 관계있어서 도구화되고 자본화된 사람의 가치를 회복하려 한다. 갓 태어난 노조미는 세상을 알아가고 마음을 갖게 되지만, 괴롬도 느끼게 된다.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현실의 괴롬을 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시간이 흐르고 노조미는 노조미의 주인인 히데오가 다른 섹스돌을 구입하게 된다. 아마 자신 곁에 있지 않은 노조미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섹스돌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생일 축하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 장면을 통해 히데오에게는 사랑이 아닌 욕구를 해소할 도구가 필요함이 분명해진다.
"나 정말 사랑했어요? 내 생일은 언제예요?"
"다시 인형으로 돌아가 주면 안 될까?"
"저는 속이 텅 비어있어요."
"나도 그래"
여기서 노조미는 히데오를 떠나게 된다. 노조미는 히데오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공원에서 노조미는 한 할아버지를 만난다. 그들의 대화는 이렇다. 현대인들은 누군가의 대체품으로 살아가고 있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대용품으로써 자신의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아마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외로움과 고독, 필연적인 공허함... 이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본 영화는 노조미를 통해 마음의 현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서부터 사람은 자연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인간 중심적 사고로 종교-과학-정치-경제 등을 발전 및 확장했다. 그 결과, 인간 외의 모든 것은 도구적 가치를 갖게 된다. 도구의 가치가 소모되면, 그 도구를 바꾸면 되는 거다. 우리가 해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다. 그러나 도구라는 표현이 사람으로 바뀌어도 큰 어색함이 없다.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도구화에 있어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인 거다.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자신이 되는 것. 공기인형은 비극적으로 자신이 돌아갈 자리로 간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재활용 처리장으로 간다. 노조미는 자신만의 무덤을 만들어 스스로 공기를 빼낸다.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거두는 행위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거두는 행위
이는 도구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공기인형은 현시대의 사람 관계 속에서 상처를 피하려고, 홀로 있으려는 이들을 위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