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은 스스로를 지킬 수 밖에 없었다.
최근에 IS로 인해 여성 모슬렘의 수영복인 부르카와 비키니의 합성어 부르키니가 논란이 생겼다. 이 논란은 테러에 대한 두려움으로 생긴 자기 방어적 태도라는 점이다. 물론 이해할 수 있다. 극단적인 모슬렘들의 테러는 단지 중동 사람이라고, 혹은 종교 복장인 차도르, 히잡만 착용해도 테러범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불어 프랑스의 한 레스토랑은 모슬렘 전통복장을 입으면, 출입할 수 없다고 단정 지어 논란이 됐었다.
본 영화는 18세기 수녀원의 폐쇄성과 당시 사회에서 공적인 도피처를 그려내고 있다. 필자가 부르카 논란을 언급한 이유는 '베일'이라는 레이어 때문이었다. 베일이란 사회와의 거리의 은유적 장치다. 얼굴을 가림으로 속세와의 단절을 통해 종교적 거룩함을 드러낸다. 물론 부르카는 남성-권력주의 문화의 산물로, 여성을 사물화 하여 종교적 이유와 동시에 남성에게의 소유됨을 의미함을 무시할 수 없다.
영화 속 수잔은 가족들의 강요에 의해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 이면에는 경제적 이유와 출생의 문제 때문이었다. 수잔의 언니들은 결혼 후 재산을 자매들보다 더 받으려고 안달이었고, 막내 수잔에게 가난보다 의식주가 해결되는 곳으로 보내려 한 거다.
수도원 주의의 최초는 AD 4세기경 안토니우스를 말하고 있다. 물론 수도 행위의 최초는 아니지만, 그의 광야에서의 은둔 수련 생활은 서서히 확장되게 된다. 후에 서방과 동방 기독 수도원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엘리아데의 《성과 속》에서는 종교 사회의 공통점은 마을이나 공동체의 중심에는 종교적 상징물이 자리 잡는다는 연구를 보여줬다. 이처럼 마을 중심에는 거룩한 종교 상징물이 자리 잡고, 마을 밖에는 속된 것들이 자리 잡는 거다. 그렇기에 많은 수도자들은 악을 축출하기 위해 마을 밖 광야로 떠난다. 그러나 깨달은 이들은 마을로 돌아와 악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닌 내부의 것임을 설파한다. 마음의 문제라는 의미.
수도원 운동의 시작은 이렇지만, 기독교가 제국화 되고 권력화 된 뒤의 수도원은 타락하게 된다. 고인 물은 썩는 걸까? 부유한 이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해 수도원에 지원금을 납부하고, 마음의 평안함을 얻곤 했다. 그러나 부유하지 않은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수잔이 수녀원으로 들어간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부모의 속죄를 위해, 마치 우리 사회 속에 부모가 해내지 못한 것을 자녀에게 부여하듯이 말이다.
단절이 주는 편리함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무한한 자유함을 선사하지만, 무한한 절제도 선사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상황과 사건을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는 거다. 신을 향한 애정 어린 수녀들의 모습 속에 왠지 모를 방황이 그려진다.
정적인 영상 속에 한 줄기 흔들리는 감정선은 영화 속 활기를 불어넣는다. 200년 가까이 된 종교의 부패와 안타까움은 우리에게 환상으로 그려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광야로 가지 않아도 스스로 단절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
영화 속 수잔의 고통을 주변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혹은 권력의 압박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권리를 스스로 찾아야만 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