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엄마가 되었다.
23살, 엄마가 되었다. 학창 시절부터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젊은 엄마'가 되는 것이라 답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늘 제일 먼저 결혼할 거라 예상했다. 현 신랑 구 남자 친구와의 연애시절 때에도 "난 23살에 결혼하고 싶어. 오빠랑 헤어지면 선을 봐서라도 23살에 결혼할 거야."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21살, 22살이 엄마의 희생과 책임감을 알았을까? 이 세계에 발을 딛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꿈을 이뤘다. 신랑과 결혼해 23살 10월 엄마 인생 1년 차가 시작되었다. 육아서와 맘 카페에서 육아를 글로 배우기 시작했다. 출산 전부터 출산하고 직접 육아를 하면서 무수한 나의 질문은 친절한 선배 엄마들이 알려줬다.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들에겐 밤낮이 따로 없으므로 항시 대기하는 개인과외 선생님 같았다. 친정엄마의 산후조리법과 육아는 가끔 충돌했다. 글로 배운 내 말이 다 옳은 것 같았고, 혼자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걱정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한 달여 만에 둘이 떠나 셋이 되어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완모만을 고집했던 어린 엄마를 대신해 잠깐이라도 육아를 대신해 줄 사람은 없었다. 교대근무를 하던 신랑을 배려하는 마음에 생후 6개월까지는 방을 따로 썼다. 잠투정하는 아이를 안고 매일매일 같이 울었다. 둘째는 절대 모유 수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둘째 생각까지 했던 걸 보니 덜 힘들었었나 보다.
얼마 전 신랑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싱글대디의 라디오 사연을 들었다. 아이를 낳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아이 엄마가 떠났다는 것이다. '엄마로 사는 인생이 힘들 것 같다'라는 이유를 남기고, 당시 스무 살인 엄마는 스스로 엄마이기를 포기했다. 가만히 듣던 우리 부부는 각자의 생각을 한 마디씩 뱉어냈다. 신랑은 '아무리 힘들어도 그러면 안 됐다. 책임감 없는 행동이다', 난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라는 입장이었다.
신랑에게 "나는 그 어릴 때에도 혼자 완전 잘 키우지 않았냐?" 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잠깐 신호대기 중이라 천만다행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터진 나 때문에 신랑도 안절부절못했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옆에다 차를 좀 세워보라고. 꺽꺽거리며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아이가 아이를 키운다는 말이 그땐 정말 듣기 싫었는데 지나고 보니 정말 그렇다. 십여 년이 지나 그때의 나를 돌아보니 이제야 내가 보인다. 뭐가 그리 급하냐고 조금 더 놀고 조금 더 즐기고 천천히 결혼하라던 엄마의 말을 이제야 이해한다. 흰머리가 무수한 어른이 되어도 자식은 마냥 어린아이 같다는데, 아기를 업고 안고 있던 내가 얼마나 애처로웠을까.
가끔 아쉬운 일은 있었어도 후회했던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딸에게는 너만의 꿈을 꿔보라고, 크고 넓은 너만의 삶을 진하게 누려보라고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