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밍버드 Apr 20. 2019

이탈리아 북부여행 4 (밀라노-여름)

밀라노의 미술관들

베로나에서 기차를 타고 밀라노 첸트랄레에 내렸다. 매일 33만명이 이용한다는 유럽에서 가장 큰 역이다. 천정이 높은 역 내부는 거대한 신전을 연상시킨다. 수 많은 사람이 몰려 있어도 전혀 답답하지 않다. 그런데 밖에 나와 보니  너비 200미터 높이 72미터에 이른다는 첸트랄레역의 인상은 그 건축물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이들까지도 파시즘의 분위기를 느낄 만큼 대단히 위압적이다. 밀라노는 가족 모두에게 처음이라 기대가 컸는데 처음 대면한 건물이 영 아니다. 불편한 역사의 한부분이 드러나는 나름 의미 있는 건축이지만 빛나는 이탈리아 감성의 무덤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택시를 타고 두오모 근처 에어비앤비에 도착했다. 크지는 않지만 깨끗하고 세련된 원베드 아파트였다. 거실의 소파베드를 아이가 쓰기로 했다. 두오모가 걸어서 5분 거리라 짐을 대강 풀고 거리로 나왔다.  저녁 시간임에도 대성당 앞 광장과 주변은 엄청난 인파로 북적인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가며 걸었다. 밀라노의 첫 식사는 구글의 도움으로 두오모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해결. 식전 빵도 푸짐했고 캐주얼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두오모 광장과 비토리아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Antica Focacceria S. Francesco란 이름의 식당.     맛있었던 문어 샐러드

다음 날 스포르체스코 성으로 향했다.

1차 (1482-1500) 2차 (1506-13)에 걸쳐 16년간 밀라노에 체류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스포르체스코 성의 살라 델레 아쎄 Sala delle Asse (Room of Wooden Boards)를 프레스코로 장식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 그곳은 복원 중이라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성채는 아름답다기보다는 남성적이고 방어적인 인상이다.


스포르체스코성 입구

제일 먼저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작품인 론다니니 피에타 Rondanini Pieta (1552-64)를 찾았다. 정신분석 연구방법론에 의거해 쓰여진 논문들에서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품에서 떨어져 고아 아닌 고아로 자라난 미켈란젤로 분노가 그의 작품 속 애착관계가 보이지 않는 여러 모자들에서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뭔가 애잔한 느낌의 이 미완성 피에타를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 그가 인생 마지막 시기 이 작품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화해를 이룬 것은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 베드로 성당
론다니니 피에타

론다니니 피에타의 여운을 뒤로하고 박관을 둘러보았다. 규모도 크고 작품들도 너무 많아서 대략 패스. 눈길을 끄는 작품앞에서만 잠깐씩 머물렀다.  여행자의 감상법이랄까.

태피스트리 전시실.                                                             규모도 대단하고 전시방법도 인상적이다
마돈나 리아 , 42.5cm×31.5cm, c.1501)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을 만났다. 레오나르도  빈치적인 스타일과  때문에 오랫동안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서야 제자 프란체스코 갈리 Francesco Galli 의 작품으로 판명된 마돈나 리아 Madonna Lia 다. 2007년 이 그림을 밀라노 시에 기증한 아메데오 리아 Amedeo Lia를 기억하며 붙여진 명칭이다.  고요하면서 시적 매력 풍성한 이 그림이 감상자의 바쁜 발길을 붙든다.


성 앞의 분수는 시원하게 물을 뿜어낸다. 유월 중순인데도 상당히 더운 날이라 살짝 지친다. 조금 걷다가  구글링이고 뭐고 그냥 눈에 보이는 카페로 들어가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근처인 암브로시아나 미술관 Pinacoteca Ambrosiana 으로 직행했다.  

암브로시아나 미술관의 중정과 내부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코덱스 아틀란티쿠스 Codex Atlanticus 와 카라바지오의 정물화때문에 암브로아나를 찾았는데 브뤼겔의 작품을 비롯해 마음을 끄는 탁월한 작품들이 많아서 예정보다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1637년 이래 이곳에 소장되어 온 코덱스 아틀란티쿠스는 수학, 과학, 문학, 철학, 미술 전 분야에 걸쳐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연구 노트 및 스케치들이 집대성된 기록물이다.


얀 브뤼겔 Jan Brueghel the Elder (1568-1625)의  작품들
암브로시아나의 도서관 Biblioteca 에 전시중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의 일부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와 같은 공간에 전시되고 있는 카라바지오의 정물화 (46cm×64.5cm, c.1566)

카라바지오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정물화 속에서 무화과, 사과, 배, 복숭아, 포도로 가득한 바구니는 화면 가장자리까지 바짝 다가와 감상자 앞으로 쏟아질 듯하다.  잘 익었거나 조금씩 색이 변하고  썩어가기도 는 과일들은 삶의 과정을 은유로 설명하는 북유럽 정물화의 전통을 따른다. 극사실적 표현기법 통한 착각의 효과는 바로크적이다.    그림이 그려졌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백년간  과일바구니의 생생함에 감탄했을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이렇게 미술품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생명력을 얻는다.


다음  남편은 먼저 서울로 나고 아이와 다시  남게 되었다.  우리  일정은 숙소에서 가까운 폴디 페쫄리 박물관 Museo Poldi Pezzoli 이었. 쟈코 폴디 페쫄리 그의 어머니 로사 트리불찌오 개인 소장품들에 시작 박물관인데 특히 북이탈리아와 네덜란드, 플랑드르지역 작가들의 작품들  무라노글라스, 갑옷과 무기류등을 망라하는  방대한 콜렉션으로 유명하다. 

폴디 페쫄리 박물관
방문객들을 위한 의자의 색감에서도 이탈리아의 감성을 읽는다
보티첼리, 죽은 그리스도를 애도함 (107cm×71cm, c.1490-1495)

르네상스 화가 티첼리 Sandro Botticelli  그림 '그리스도를 애도함 The Lamentation over the Dead Christ with Saints' 묘사된 명의 마리아 가운데서도 막달라 마리아의 얼굴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그리스도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냈던 막달라 마리아가 다시 한번 죽은 그리스도의 상처난 발에 얼굴을  있다. 머리의 베일, 머리카락, 얼굴, 그리스도의 , 손가락, 수의에서 보티첼리의 특징인 유려한 들의 향연 본다. 


폴라이올로, 소녀의 초상 (45.5×32.7cm, 1470-72)

또 다른 르네상스 화가 라이올로 Piero del Pollaiolo  '소녀 초상' 또한 단번에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정체는 알려져 있지   단단하고 기품있는 자세, 장신구  의상으로 신분 짐작할 뿐이. 하늘 배경이 되어 더욱 도드라지는 프로필의 윤곽선,  발그스레한 입술과 뺨의 터치, 과하지 않은 진주 머리 장식 목걸이, 귀를 덮은 베일의 뛰어난 묘사가 그림에 아취를 더한다. 


주요 미술관들이 대부분 숙소 근처라 편하게 다닐  있었지만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은 아들 가고 했던 프라다 술관은  중심부를 벗어나  메트로를   다음에도 35도의 햇볕이 내리쬐는 길을  걸어야했다. 

프라다미술관
 황금빛 건물 Haunted House 에는 로버트 고버 Robert Gober와 루이스 부르즈아 Louise Bourgeois 의 상설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촬영은 불가하다.

밀라노의  미술관 Fondazione Prada  단일 건물인 베니스 프라다 미술과는 달리 일곱  기존 건물   동의 신축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이루어진 거대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콜하스 Rem Koolhaas  이끄는 건축회사 OMA  프로젝라는데 문을 들어 때는 짐작조차   없었던 건물들의 풍경이 진행 방향을 따라 계속해서 펼쳐진다. 독특한 공간감, 각각의 건물에서 보이는 낡음과 새로움, 수직과 수평, 높고 낮음,  좁음과 같은 상반된 요소들이 묘하게 어우러져  건물군을 특정한다.


제프 쿤스 Jeff Koons 의 튤립 Tulips,  컬러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거대한 꽃다발이다.

미술관 건물들 중에서 가장 높은 타워 Torre 에는 '아틀라스 Atlas' 프로젝 일환으로 6개 층에 걸쳐 마이클 하이저, 제프 쿤스, 미안 허스트, 카르스텐 횔러 작품을 롯하여  미술 획을 긋는 기념비적인 작품들이 상설 전시되어 있다. 넓직한 공간에 느긋하게 배치된 작품들을 보니  여유에 동화되는 듯한 기분.


월터 드 마리아 Walter de Maria 의 Bell Air Trilogy 2000-11 와 모나 하툼 Mona Hatoum 의 Remains of the Day, 2017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 Tears for Everybody Looking at You, 1997(왼쪽)  A Way of Seeing, 2000 (오른쪽)
영화 감독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이 디자인했다는 세련된 색조의 미술관 카페 그리고 북스토어

반나절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 우리나라 기업들 설립한 미술관 오너 관계인들의 문화적 허영 채워주는 그들만의 리그 아니라 문화를 선도하는 철학이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밀라노에 가장 매력적인 지역을 꼽자면 아마도 브레라 지구가 아닐까 싶다. 그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곳이 브레라 미술관. 오래전부터 오고싶었던 곳이다. 

브레라 미술관
미술관의 오픈 스토리지 공간
미술품 복원공간

그 어느 미술관보다도 브레라에서는 감상자와 미술관 사이의 거리감이 좁혀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관람객들에게 배타적 영역이었던 미술 복원실이나 스토리지 공간도 일부이긴 하지만 공개되어 있는데다가 어떤 작품들에일반적인 작품 해설 더불어 시인이나 과학자 같은 '비미술전문가'들의 감상 첨부되어 있어 그림 읽는 재미를 더한다.


안드레아 만테냐 Andrea Mantegna 의 성모자상,1485, 이를 설명하는 두 개의 레이블 중 하나인 소설가 사라 더난트  Sarah Dunant 의 문학적인 해설
안드레아 만테냐, 죽은 그리스도 Dead Christ, 68×81 cm c. 1483

르네상스 화가 테냐 Andrea Mantegna의 '죽은 그리스도'에는  극단적인 단축법 forshortening  적용되었다. 거의 강제적으로 감상자들을 화면 가까이로 끌어당겨 그리스도의 손과 발에 난 상처를 보여주면서 이 죽음의 고통에 감정을 이입시킨다. 그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단축도가 정확하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발크기 정도는  잊게된다. 너무나 파격적인 표현 법때문에 이 작품이 작가 자신의 개인 소장용이었으리라는 설도 전해진다.


카라바지오, 에마우스의 저녁 Supper at Emmaus, 1606

카라바지오의 '에마우스의 저녁' 역시 브레라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작품 중 하나다. 제자들이 엠마오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도중 함께 식사하던 인물이 부활한 그리스도임을 알게되는 순간 묘사다. 그가 그린 런던 내셔날 갤러리 소장인 또 다른 '마우스의 저녁'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브레라의 진지한 감상자

밀라노를 떠나기 전날 너무 피곤해서 좀 다는 아이를 두고 두오모 광장에 위치 노벤첸토

Il Museo del Novencento 를 찾았다.  노벤첸토 20세기 이탈리아 표적 미술품들을 소장  전시하있다. 각층을 연결하는 내부의 나선형 램프 구겐하임을 연상시킨다.

노벤첸토미술관과 내부의 나선형 램프

움베르토 보치오니, 지노 세베르니, 쟈코모 발라등 이탈리아 미래주의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모두 한 곳에서 볼 수 있어 반가왔다.

움베르토 보치오니, 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 1913 와 지노 세베리니, Dynamism of a Dancer, 1912
루치오 폰타나 Lucio Fontana, 네온 Neon 설치물이 걸린 공간 밖으로 두오모 광장이 내려다 보인다

댄 플라빈 Dan Flavin (1933-1996)의 설치작품이 있는 산타 마리아 아눈치아타 성당에서 밀라노 일정의 마무리를 짓고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을 위해 남겨다.



숙소로 돌아오다 저절로 발길이 식자재의 천국 Peck으로 향했다.  마음같아서는 통째로 서울에 옮겨놓고싶은 곳이다. 최상급 퀄리티때문에 값도 만만치 않고 가져갈 수있는 식재료도 제한되어 있어 그림의 떡인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구경만해도 즐겁다. 여행 이후의 일상에 맛을 더해 줄 진한 향기의 얼그레이 티, 커피, 오렌지 허니 카트에 나왔다.


작가의 이전글 이탈리아 북부 여행 3 (베로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