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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밍버드 Mar 02. 2019

이탈리아 북부 여행 3 (베로나)

2박 3일의 일정으로 베로나에 머물렀다.

들르는 도시마다 반쯤은 밀린 과제를 해치우는 심정으로 성당과 뮤지엄을 찾았던 내게 베로나는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풍광, 멋진 음악으로 여행 중 완벽한 휴식을 선사했다.

사실 베로나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매년 여름 열리는 오페라 페스티벌 Arena di Verona Opera Festival 때문이었지만 여행을 마친 후엔 어느 도시보다도 가장 많이 떠올랐던 곳이 바로  베로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도시의 골목 골목이 다 그림 엽서의 한 장면이다.


피렌체에서 남편이 합류하여 베로나에서는 아들과 함께 세명이 움직였다.  사람이 많아질 수록 좋은 점은 식사 때 좀 더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는 점.  에어비앤비 호스트 루이사의 추천으로 첫날 이른 저녁 숙소 근처의 작은 식당을 찾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으음~'소리가 절로 나오는 음식의 퀄리티에 모두 만족.  역시 신선한 재료가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던데 덩달아 베로나의 다른 식당들도 기대가 된다.


La Vecia Mescola라는 이름의 식당, 강추!
육회를 좋아하는 아들이 주문했던 Tartare di manzo
메인과 디저트

베로나의 원형 극장 아레나의 야외 무대에서  오페라를 관람해보고 싶은 오랜 소망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우리가 예매했던 아이다 Aida 는 그 옛날 올리비아 허시가 출연했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 프랑코 제피렐리 Franco Zeffirelli 가 연출한 오페라여서 무대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컸다.  베로나 시의 인구가 26만 명에 불과한데 페스티발이 열리는 여름 두 달 동안은 세계 각국에서 거의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오페라 관람을 위해 베로나를 찾는단다. 문화 콘텐츠의 놀라운  힘이다. 이날 저녁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빽빽하게 아레나를 채우고 있었다.


브라  광장 Piazza Bra 의 아레나
관객으로 가득 찬 공연 전의 아레나

공연 시작 시간인 9시가 다가오면서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나와 앉아 음을 맞추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를 미리들 듣고왔는지 재빨리 우비를 꺼내입는 사람들도 있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자 돌연 모든 단원들이 악기를 케이스에 넣고 퇴장해버렸다. 잠시 기다리라는 방송이 나오고 관객들이 웅성댄다. 옆사람들이 이러다가 공연이 취소될 수도 있다 한다.  다행히 10여분 후 비가 그치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다시 나오고 공연도 진행되었다.  그런 작은 해프닝도 있었지만 엄청난 규모의 화려한 무대와 그 큰 경기장을 압도해버리는 음향은 다른 모든 것을 잊게할 만큼 감동 그 이상이었다. 오래 전 뉴욕 메트 Met 에서 감격하며 보았던 아이다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탁 트인 무대 공간과 하늘이 배 인상깊은 베로나의 아이다다.


승리를 축하하는 이집트인들
이집트군대와 에티오피아 노예들,  공주 암네리스와 시녀들

공연은 인터미션을 포함해 장장 네시간 가까이 지속되었고 새벽 한시가 넘어서 막을 내렸다.

옆에서 졸음을 참으며 긴시간을 인내로 기다려 주었던 아들과 남편에게 고마울 뿐.^^


다음 날 베로나 관광 필수 코스 줄리엣의 집 Casa di Giulietta 을 찾았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 줄리엣의 집이다. 사실 이곳은 오래 전 베로나 시에 의해 조성된 일종의 기획 관광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베로나의 아니 전 세계적인 사랑의 성지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허구 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이 놀랍다. 아수라장같은 그곳에서 잠시 생각해본다. 라다메스와 아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이

쉬이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인가?

사실 나는 벽에 붙어있는 수 많은 자물쇠, 밴드, 낙서같은 사랑의 표식들이 사랑보다는 집착인듯 보여 약간 무섭기도...

몇 커플들이 이후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있을지?


줄리엣의 발코니와 동상

베로나의 중심에는 에르베 광장 Piazza Erbe 이 위치한다. 아름다운 건물들로 둘러싸인 광장에는 노천 시장이 있고 주변에는 많은 카페 및 식당들이 있어서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시 중심부가 그다지 크지 않고 관광 스팟이 주변에 모여 있다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광장 중앙의 분수와 노천 시장
광장 동쪽에 위치한 종탑 Torre dei Lambert
시장 뒷편으로 광장 북쪽에 위치한 팔라쪼 마페이가 보인다

광장의 북쪽에는 베로나의 귀족 마페이 가문의 저택이었던 팔라쪼 마페이 Palazzo Maffei 가 있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이제는 호텔을 비롯한 상업시설로 변모 되었는데 루이사가 추천한 리스토란테 마페이 Ristorante Maffei 가 바로 1층에 있어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역시 베로나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A+.



에르베 광장에서 아디제 강 쪽으로 걷다보면 베로나에서 가장 크다는 성 아나스타시아 Sant'Anastasia 성당 에 이른다. 도미니크  교단에 속한 이 성당은 1290년 경 건축되기 시작되었고 베로나의 수호 성인 피에트로에게 봉헌되었다.


성 아나스타시아 성당
성당 중앙부와 양쪽 측랑을 구분하는 베로나산 붉은 대리석 기둥이 두드러진다

다시 강을 따라 피아짜 두오모로 향했다. 이곳에선 승천하는 성모마리아  S. Maria Assunta 에게 바쳐진 본당과 바로 옆에 붙은 성 엘레나 성당, 클로이스터, 세례당,  도서관, 주교관 등 여러 건물이 함께 있는 복합 건물군 Complesso del Duomo 을 만날 수 있다. 두오모의 수수한 외관과 달리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대리석들과 벽화, 제단화들이 본당내부를 장식한다.


본당의 장미빛  대리석 장식 기둥들이 아름답다.

본당과 연결된 산 지오반니 세례당 St. Giovanni in Fonte 는 12세기 초에 재건축된 로마네스크  건물이다.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부조가 있는 중앙의 8각형 세례단은 하나의 대리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각 면에는 수태고지, 엘리자베스를 방문하는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탄생, 목자들에게 선포되는 탄생 소식, 성모자와 동방박사들, 헤롯 왕과 병사들, 영아 살해, 이집트로의 도피, 그리스도의 세례가 조각되었다.


세례단에 부조로 조각된 목자들과 양, 성모자와 동방박사들
이미 5세기에 교회가 있던 자리에 다시 건축된 성엘레나 성당 곳곳에는 발굴된 옛 교회의 유적들이 보존되어 있다 .

저녁 역시 루이사의 추천을 따라 숙소 근처 골목 에노치부스라는 식당을 찾았다. 그날만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부부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외에 다른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느긋하게 할머니가 서빙을 하고 할아버지는 주문과 조리를 맡아 별로 만들기 어렵지 않아 보이는 음식들을 푸짐히 내오는 독특한 분위기의 동네 식당이랄까. 그렇지만 애피타이저도 파스타도 모두 합격.


Enocibus
애피타이저와 과일 샐러드


그렇게 푸짐한 저녁을 마치고 셋이서 함께 아디제 강변을 걸었다.  폰테 피에트라 Ponte Pietra 가 보였다. 우리말로 바꾸면 돌다리라는 뜻.

전형적인 로마의 아치형 다리인데 흔한 조각 하나 없지만 조형적 간결함이 아름답다. B.C 100년 완공되었고, 1298년 개축, 2차 세계대전때 파괴되었다가 1957년 재개축 되었다 한다. 다리밑을 흐르는 강물이 유난히 잔잔하다.


폰테 피에트라

베로나를 떠나는 날 열쇠를 돌려주는데 루이사는 눈물까지 글썽인다. 다음에도 꼭 다시 들르란다. 이곳에서의 모든 순간들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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