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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밍버드 Feb 26. 2019

이탈리아 북부 여행 2 (파도바)

파도바 Padova (영어로는 파두아 Padua) 는 베니스의 산타 루치아 역에서 이딸로 Italo를 타면 2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때문에 하나의 도시를 돌아보기에 여유로운 시간은 아니지만 베니스에서 당일로 쉽게 다녀올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스크로베니 예배당 Cappella degli Scrovegni 으로 향했다. 파도바를 가야했던 이유는 스크로베니 예배당을 장식하고 있는 지오토 Giotto di Bondone (c.1267 - 1337) 의 그림 때문이었다. 고대 로마의 경기장이 있던 자리에 세워져 아레나 예배당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작은 예배당 내부를 지오토는 성모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생채워진 파격적인 프레스코로 덮어버렸다.

프레스코의 보존을 위해서 정해진 시간에만 관람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 전에는 온라인 예약이 필요하고 당일 관람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수고로움을 감내할 가치는 충분하다.


아레나 예배당


아레나 예배당의 제단부분과 '최후의 심판'이 그려진 입구의 프레스코.  
고리대금업자였던 아버지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이 예배당을 봉헌하는 파도바의 은행가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최후의 심판' 하단부에 묘사되었다

무표정한 중세의 얼굴이 아닌 슬퍼하고 분노하며 즐거워하는 살아있는 인간의 감정이 담겨진 그림, 비현실적인 황금색 배경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푸른 하늘현한 지오토의 그림에서 르네상스의 회화의 시작을 본다.


왼쪽은 '요아킴과 안나의 만남,' '유다의 배신' 오른쪽은     '나뭇가지의 전달,' '가나의 결혼식,' '애도'가 그려져 있다

장면 하나 하나를 오래 오래 보고싶었지만 제한된 시간 때문에 알고있는 이미지들을 급히 다시 한번 체크하는 정도 밖에 할 수 없었다. 원화를 보았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예배당이 1880년 파도바 시의 소유가 된 이후 여러 번의 보수가 있었고  가까이는 2001-2002 년의 보수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어도 화집 속의 사진에 익숙한 눈에는 색채가 살짝 바래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스크로베니 예배당이 파도바 시립박물관 부속이라  같은 티켓을 가지고 시 소속 박물관 관람이 가능하여 인접한 시립미술관 Musei Civici di Padova 을 들렀다. 1층은 고고미술관으로 파도바 시와 관련된 로마시대 및 그 이전 시기의 유물들이, 2층 피나코테카에는 14세기에서 18세기의 그림들과 14세기에서 16세기의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오토, 벨리니, 베로네제, 틴토레토, 티에폴로같이 많이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도 있고, 처음 본 로컬 작가들의 그림도 많다.  슬슬 커피 생각이 나면서 지쳐오는데 같이 갔던 아들은 더 보기를 포기하고 의자에 앉더니 엄마 혼자 보고 오란다.


각각의 중정이 있는 두 부분으로 구획된  1층 고고 미술관
2층 피나코테카

박물관을 나와 걷다보니 큰 건물과 광장이 나왔다. 예전에 재판소로 사용되었다는 라지오네 궁 Palazzo della Ragione 이다. 일층 아케이드에는 식료품점도 있고 카페들도 많다. 그 앞의 광장에는  과일 야채를 파는 노점상들이 가득하다. 종이 봉지에 가득한 싱싱한 체리가 2 유로다. 반은 안판다는걸 너무 많다고 우겨서 1유로만큼만 샀다. 둘이 먹어도  넉넉한 양이다.  서울에서의 가격을 생각하며 흐뭇한 맘으로 클리어.  한참 늦어버린 점심식사는 피자와 콜라로 때워버렸다.


라지오네 궁과 광장의 노천 시장

걷다가 멋진 건물이 있어 들어가 보니 그곳이 바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파도바 대학 Universita degli Studi di Padova 이었다.

1222년에 설립되었고 한때 갈릴레오가 교수로 재임하였고 코페르니쿠스가 학생이기도 했다는 이 대학은 한때는 유럽 과학의 중심지였단다. 오늘날도 이탈리아 최고의 대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투어 시간이 맞지 않아  내부를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밖에서만 보아도 건물 입구의 주랑및 천정과 벽에 장식된 문장들이 그 역사와 전통을 말해주는 듯 하다.

팔라쪼 보 Palazzo Bo 라는 이름을 가진 파도바 대학의 본관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짧은 휴식을 갖고 다시 파도바의 수호 성인인 성 안토니오를 모신 성 안토니오 성당 Basilica di Sant'Antonio 에 도착했다. 포르투갈 출신이었던 성 안토니오는 위대한 설교가였다는데 이곳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안에서도 널리 알려진 성지 순례지란다.


베네치아의 성마르코성당을 연상시키는 비잔틴 양식의 돔이 얹혀 있는 성 안토니오 성당
 성당의 내부

슬슬 베네치아로 돌아갈 기차시간이 다가와

역을 향하는 도중 욕심을 내어 시립미술관들 중 하나인  팔라쪼 주커만 Palazzo Zuckermann 을 들렀다. 단추와 작은 금속제품들을 생산했던 공장 제도파 Zedopa 를 창업한 기업가 엔리코 주커만 Enrico Zuckermann 이 20세기 초에 지은 저택이다.

시간은 많지 않은데 볼 것은 많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공예품과 가구들 조각, 그림들도 많이 있었지만 특히 고대의 주화들을 모은 방대한 전시실들이 눈길을 끈다


팔라쪼 주커만의 전경과 3층의 화폐전시실

미술관을 나와 역을 향해 아이와 함께 바삐 걷기 시작했다. 아침나절엔 가까웠던 그 길이 왜 그리도 먼지...

마음은 바빴지만 역으로 가는 길에 보게된

해질 무렵 파도바 운하 Naviglio 의 아름다움에 잠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직 머물러 있는데 구름이 몰려오면서  빠르고 차갑게 변화하는 대기의 이 느낌이 바로 지오르지오네 Giorgione 가 '폭풍우 La Tempesta' 에서 표현했던 긴장과 평온함의 이질적 공존의 실사판인 듯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이 도시를 마음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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