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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라이 Oct 22. 2023

마구잡이로 읽기

초짜의 읽는 삶

책을 볼 결심을 했을 때, 책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책을 읽었던 경험이라도 풍부하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감이라도 올 텐데, 나는 소위 북큐레이션은 차치하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 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첫 책은 세바시 강연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켈리 최의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였다. 그녀의 인생 스토리는 마음에 울림을 줬고,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게 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지금 하는 일에서 최선을 다해보라'는 그녀의 말을 귀로 들으며 마음에 아로새겼다.



모두가 입을 모아 사피엔스, 사피엔스 하길래 뭣도 모르면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었다. 600쪽이 넘는 <사피엔스>는 역시나 길고 방대했다. 특히 초반이 지루했다.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초반을 넘기느냐 넘기지 못하느냐에 따라 완독 여부가 판가름 난다고 했다. 학계에서는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지만, 대중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농업 혁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긴 글은 배경지식이 없는 나에게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의 강인함과 가능성을 시사, 암시하는 듯했고, 시작해 보려는 마음에 불을 지폈다.  



<사피엔스>를 읽은 다음 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읽었다. 도서관 수업에서 강사님이 추천해 준 책이었다. 언어의 마술사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글은 심미적 문체로 나를 뒤흔들었고, 내밀한 곳에 침잠해 있던 언어미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했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그다음 날은 최종훈의 <부자의 역사>를 읽었다. 북튜버가 낭독한 책이었는데, 돈과 경제에 대해 무지한 나도 충분히 흥미롭게 느껴질 만큼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리스어로 '벗어남', '일탈'의 뜻을 가진 '하마르티아 hamartia'는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죄를 의미하는데, 하마르티아를 극복하느냐 마느냐가 부의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하마르티아는 문학에서도 등장한다고 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사학>에서 처음 언급한 개념으로 주인공이 갖는 결함으로 인해 벗어나기 어려운 숙명"이라고 했다. "그리스어로 불행이 행운을 낳고 행운이 다시 불운을 낳는, 운의 역전을 의미하는 '페리페테이아 peripeteia'는 자신의 결함과 결핍을 잘만 이용하면 얼마든지 인생 역전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고 했다. <부자의 역사>를 읽으며, 약점을 극복해 성공에 이른다는 이야기는 내게 또 한 번 각인되었다. 하마르티아를 극복하고 페리페테이아를 꿈꾸게 됐고, 요동치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이 일었다.



다음으로 읽은 책은 박완서의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였다.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라디오 DJ의 입을 통해 이름난 작가님의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이었다. 한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중의 거장인 박완서 작가의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를 보며 사소한 일에 분개하는 사람으로서 깊이 공감했다. 문학을 읽으면서 행진하는 듯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최종훈 <부자의 역사>

박완서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알베르토 사보이아의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갈망으로 읽게 되었다. 모리 다쓰야의 <뉴스 사용 설명서>는 카메라라는 인위적이고 제한적인 프레임 안에서 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영상을 언젠가 본 기억이 나서, 한윤섭의 <해리엇>은 아이가 보는 책이라 읽게 되었다.


일주일 넘게 이어진 하루 한 권 독서는 그렇게 두서없이 이어졌다. 그때그때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읽을 동기가 생겼다.  


처음 책을 읽기로 결심했을 때, 일주일 동안 하루에 한 권을 읽자고 다짐했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결심했고, 실행한 것이 전부였다. 뭔가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결심하고 실행하는 것이었다.     





북큐레이션의 사전적 의미

(Book)과 큐레이션(Curation)의 합성어인 '북큐레이션'은 특정한 주제에 맞는 여러 책을 선별해 독자에게 제안하는 것을 말하는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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