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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라이 Oct 22. 2023

좋아하는 일 찾기 1

초짜의 꿈

"초짜님은 그동안 불행했을 것 같아요"

글쓰기 수업에서 작가님이 말했다. 과제를 이렇게 빨리 제출하는 학생은 처음이라고 했다. 거칠고 투박한 글이었지만, 신이 나서 썼고, 작가님은 그걸 알아보신 듯했다. 작가님은 글을 쓰지 않았던 나는 행복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지난 40년 동안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어릴 적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를 시작한 것이 전공으로 이어졌다. 중·고등학교 때 여러 번 그만두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좋아하는 것이 아닌 성적이나 정해준 길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음악을 전공하는 경우 부모님의 헌신이 크기 때문에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크게 좌절하고 방황했다.
 


"워커힐 근처에 사시는 선생님은 지하가 딸린 3층짜리 고급 빌라에 사셨다 각 층마다 그랜드 피아노가 한 대씩 있어 레슨을 받기 전에 학생들은 피아노를 한 대씩 차지하고서 손도 풀고 레슨 받을 곡도 연습했다. 먼저 레슨을 받은 사람이 나오면 다음 차례에 레슨을 받을 사람의 이름이 호명되고, 보통 자신의 엄마와 함께 레슨실에 들어갔다. 레슨실은 몇 계단 내려가면 있는 반지하에 있었고, 어둡고 차가웠다. 그 방에는 커다랗고 이름난 그랜드 피아노 한대와 한 벽면을 꽉 채운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그 사진은 연주복을 입은 선생님의 상체만 나온 모습이었다. 옆얼굴이 강조된, 나보다도 큰 액자는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유명 대학을 나와 외국에서 공부하고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은 음악계에서 꽤 알려진 사람이었다.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우려면 선생님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다. 나는 처음 선생님을 만난 날 몇 곡을 연주했고, 합격 사인을 받아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레슨을 받으러 다니는 길은 멀고 구역질이 나오고 울렁거렸다. 집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아빠가 태워주시면 엄마랑 둘이 버스를 타고 복잡한 동서울 터미널에 내렸다. 당시 구불구불하고 비포장도로가 많은 길과 차에서의 긴 시간은 어린 나에게 무리였고,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늘 매번 시외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속에 있던 것을 모두 게워냈던 기억이 난다. 그 뜨끈하고 쓴 오물이 내 목구멍으로 나오는 느낌은 마치 뱀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레슨 받으러 가는 동안에도 나는 늘 음악을 생각하고 공부해야 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무릎 위에 악보를 펴놓았고, 워크맨을 꺼내 지난 시간에 받았던 레슨 내용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속이 매스껍고 멀미가 나서 끝까지 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레슨을 받을 때면 매번 혼이 났기 때문에 귀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선생님의 고함 소리와 악보를 집어던지는 소리였다. “이렇게 하려면 이른 새벽 시골에서 뭣하러 여기까지 오냐”라는 선생님의 고함 소리였다. 엄마는 레슨실에서 나와 함께 엄마보다 훨씬 어린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있었다. 나는 점점 피아노가 싫어졌다."



어릴 적 일을 회상하며 브런치 작가에 응모할 때 쓴 글인데,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지만, 꺼내 쓰며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듯한 해방감과 쓰는 기쁨을 처음으로 누렸다. 막연하게 느껴지는 두려움이나 고통스러운 기억도 글로 풀어내면 괜찮아진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고, 무엇보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기뻤다.



마흔이 넘어 글을 쓰는 즐거움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문예창작제에서 상을 받았다. 여태까지 글로 칭찬이나 인정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새로웠다.



<그릿>의 저자 앤절라 더크워스는 "아동기에는 너무 어리기 때문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학교에 갈 무렵부터 특정 직업으로 관심이 쏠리면서 특정 직업 외에 다른 직업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죠. 하지만 앞으로 그릿의 전형이 될 인물이라고 해도 중학생 나이에 분명하고 확고한 열정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단지 대체로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을 파악하기 시작할 뿐입니다."고 한다.


TED 강연 영상 <GRIT: the power of passion and perseverance | Angela Lee Duckworth>

앤절라 더크워스 <그릿>



어릴 적,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한마디 말에 진로가 정해졌다. 늦었지만,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릿'으로 이끌어줄 좋아하는 일을. <레스 브라운 명언 30>의 저자 레스 브라운은 "또 다른 목표를 세우거나 새로운 꿈을 꾸기에 너무 늙은 나이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고,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을지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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