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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an 06. 2022

제12화 - 농업이야기2

통일벼로 보릿고개를 극복했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농업 부문에서 개간과 간척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경지정리와 수리사업을 시행하는 등 생산기반을 확충하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전체 논 면적이 1960년 122만ha에서 1980년에는 131만ha로 증가했다.

     

고도성장 시기에는 녹색혁명이 추진됐다     

  고미가(高米價)정책과 분식장려 운동을 통해 쌀 소비절약을 유도하는 한편, 쌀 생산을 촉진하고 소비자와 생산자를 동시에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쌀 수매가격을 방출(공급)가격보다 높이 책정하는 이중곡가제(二重穀價制)를 시행했다. 그 결과 양곡관리기금 결손액이 1970∼80년 기간 동안에만 9,700억원에 달했다.     

경지면적 추이 

  자료 : 농림축산식품통계연보      

  통일벼로 대표되는 다수확품종을 개발하고 식부면적을 확대하기 위해 이들 품종의 쌀을 정부가 전량 구입해 주는 우선수매제도를 시행했다. 농업 생산구조도 크게 변모했다. 농촌인구가 도시로 많이 이주함으로써 농가인구는 1965년 1,581만명에서 1980년에는 1,083만명으로 감소했다. 경운기, 이앙기, 방제기, 탈곡기 등 장비 보급이 확산됨에 따라 영농 기계화는 급진전됐다.

  농산물의 수입자유화도 부분적으로 추진됐다. 1976년 축산물 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해 호주와 뉴질랜드산 소고기 수입이 허용됐다. 이어 1978년에 들어서는 수입자유화 기본방침을 확정하고 3차례에 걸쳐 농산물 수입이 이루어졌다. 1980년 이후에는 고추, 마늘, 참깨 등으로 수입 농산물 품목도 다양화됐다. 곡물 중심 생산에서 탈피하여 채소와 과일, 축산물 등의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는 등 상업적 농업 부문의 성장도 시작됐다. 

  1970년 4월부터 ‘근면, 자조, 협동’을 기본정신으로 한 농촌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농로개설, 마을회관과 공동작업장 조성, 소득용 작물 개발, 초지 조성, 농촌주택 개량, 취락구조 개선, 간이급수시설 설치 등이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됐다. 이 시기에 역점을 두고 추진됐던 사업은 농지의 생산성을 높이는 경지정리, 쌀 생산량 증대를 위한 종자개량, 경작지 확대를 목적으로 한 간척사업 등이다.

      

경지정리로 수리안전답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경지정리란 농지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협소하고 불규칙적인 형상의 농경지를 적정 규모로 구획을 나누어 정리하고, 농로 및 관개시설을 정비하는 등 농토와 부대시설의 물리적인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동시에 분산된 필지를 소유자별로 집단화하기 위해 소유권 이동을 수반한 환지(換地)도 병행된다.

  구불구불한 논배미를 표준화・직선화하고 관배수로(灌排水路)를 논배미와 연결했다. 또한 농로 확장을 통해 이앙기, 콤바인 등 영농장비의 출입과 농약, 비료 등 영농자재 및 생산된 농산물의 운반을 용이하게 하는 한편, 객토 투입 등 지력을 높이는 사업도 함께 시행됐다. 경지정리는 토지이용률 및 농업생산성의 향상을 도모하고, 영농기계화의 촉진으로 노동력을 절감하며, 농촌의 환경 개선을 통해 복지농촌을 건설하는데 기여했다.

  1965년부터 시작된 경지정리 사업은 1988년까지 시행 면적이 77만8천ha에 달했는데 그 중 67만8천ha가 논을 대상으로 추진됐다. 이로써 수리안전답 면적도 1965년 전체 논 면적의 44%인 49만2천ha에서 1992년에는 74%인 97만3천ha로 늘어났다. 경지정리에 소요된 비용은 국비 50∼60%, 지방비 20∼30%, 농지소유주 20%의 비율로 분담됐다.

     

'기적의 쌀통일벼 개발로 주곡 자급이 달성됐다     

  정부는 주곡(쌀)의 만성적인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다수확 품종 쌀의 개발에 나섰다. 1966년부터 농촌진흥청이 주도한 신품종 볍씨 개발 사업은 필리핀 소재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에 파견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허문회 교수가 맡아서 진행했다. 조기 개발을 위해 여름에는 한국에서, 겨울에는 필리핀에서 실험 종자를 경작함으로써 연 2회씩 세대를 진전시켰다.

  단립종인 자포니카(japonica) 1개종과 장립종인 2개의 인디카(indica) 품종을 3원 교배하여 개발했다. 3원 교배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창의적인 육종방법이었다. 이렇게 해서 1970년에 개발된 신품종은 국내에서는 통일벼로, 국제적으로는 IR667로 명명됐다. IR667은 국제미작연구소에서 개발된 667번째 품종이란 의미다. 통일벼 개발로 우리나라의 작물 육종기술은 세계 수준으로 격상됐다.

  1971년 국내에서 시험재배를 통해 다수확성이 확인된 통일벼는 ‘기적의 쌀’로 주목받았으며, 이듬해부터 전국적으로 확대 보급됐다. 1976년에는 전체 논의 44%에 통일벼를 식부하여 521만5천톤의 쌀을 생산함으로써 주곡의 자급이 달성됐다. 이듬해인 1977년에는 쌀 생산량이 600만5천톤에 달했고, 자급률은 113%를 기록했다. 또한 이 해에 전국 평균치 기준 10a당 쌀 수확량이 494kg으로서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1975년에 일본이 달성한 447kg이었다. 

  쌀의 자급이 이루어짐에 따라 1969년 이래 시행돼 온 무미일(無米日)이 폐지되고, 쌀막걸리 제조가 재개됐다. 통일벼는 기존 벼보다 생산량이 30% 정도 많은 다수확 품종이긴 하나 단점도 있었다. 냉해에 취약하여 보온못자리가 필요하고, 다량의 비료 시비와 용수 공급이 요구되며, 줄기 키가 작아 볏짚 활용에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밥맛이 자포니카 품종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 등이다. 이후 통일벼의 단점을 개선한 후속 품종으로 유신벼가 개발됐다.

     

간척사업을 통해 국토면적을 3.6%나 넓혔다     

  2020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국토면적은 100,413km2이다. 이는 1954년의 96,929km2에 비해 제주도 면적의 1.9배인 3,484km2나 늘어난 규모다. 땅은 저절로 커지지 않기에 인위적으로 바다나 호수 등 공유수면을 메워서 늘였기 때문이다. 이를 간척(干拓)사업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간척지는 거의 전부가 간석지(干潟地; 갯벌)를 매립해 조성됐다. 동해안 지역에 소재한 울산공업단지나 포항제철소 부지 등도 간척지이지만 간척사업은 갯벌이 발달한 서해안과 남해안 지역에 집중됐다. 부산과 인천의 항만시설, 인천국제공항, 여천산업단지, 광양제철소, 송도국제도시 역시 간척지에 건설됐다. 이처럼 공항,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 시설과 산업단지나 신도시 건설 등을 목적으로 간척사업이 시행된 경우도 있으나 주로 농경지 확보를 위해 추진됐다.

  우리나라 최대의 간척지인 새만금지구를 비롯하여 시화지구 등 대부분의 간척사업은 산업용지와 함께 농경지 확보를 목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수도권매립지와 청라신도시 지역도 당초에는 농지 확보를 위한 간척사업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방조제 내부에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해수를 퍼내고 담수호를 조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새만금지구 간척사업은 1991년부터 2020년까지 30년에 걸쳐 진행됐다. 세계 최대 규모인 33.9km의 방조제를 건설하여 농지 등 291km2의 토지와 호소 118km2를 확보한 대규모 국책사업이었다. 시화지구의 경우 조성된 담수호의 오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해수호로 변경됐고 대안으로서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조력발전소가 건설됐다.

     

간척사업에 민간도 참여했다     

  1970∼80년대에는 정부 예산 부족으로 간척사업에 민간 참여를 유도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서산지구와 김포매립지 사업이다. 서산간척지는 1979년 매립면허를 취득한 현대건설이 1980년부터 매립공사를 시작하여 1982년과 1984년에 각각 B지구 및 A지구의 방조제를 완공했고, 1986년 시험영농에 돌입한 후 염분 제거과정을 거쳐 1995년에 최종 준공됐다. 총 15,409ha을 매립하여 10,201ha의 농지를 확보했다. 현재 현대건설의 자회사인 현대서산농장이 이 농지에서 벼농사와 축산 사업을 하고 있다.

  서산 B지구 공사 때의 일화다. 1,288m의 방조제를 축조하면서 270m를 남겨둔 최종 물막이 공정에서 난항을 겪었다. 병목현상에 따라 해당 구간의 유속이 초속 8m로 빨라져 투입되는 돌과 흙의 유실이 계속됐기 때문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스웨덴에서 고철로 도입한 322m 길이의 23만톤급 폐유조선을 가라앉혀 조류의 흐름을 막은 후 공사를 진행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방조제는 성공리에 완공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생중계되고 외신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 기법을 일각에서는 ‘정주영 공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김포매립지는 동아건설산업이 1980년 허가를 받아 추진한 간척사업으로 1991년에 완공됐다. 총 3,730ha (1,126만6천평)의 간척지 중 1987년 정부에 양도된 627만7천평(전체의 55.7%)은 수도권쓰레기매립지와 발전소, 하수처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70만평에 달하는 농경지는 1999년 농업기반공사에 매각됐다. 이 부지가 용도 변경되어 현재의 청라국제도시로 변모됐다.

  간척지에 조성된 송도국제도시의 기반시설공사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회자된다. 이는 2000년대 초 공공공사에서 최저가낙찰제가 부활된 후 최초로 발주된 공사였고, 2개 공구로 분할 발주됐다. 예정가 대비 60% 이하의 낙찰률로 2개 공구 모두 지방 소재 중견건설사가 수주했다. 공교롭게도 2개사 모두 시공 중에 부도가 나서 도산했다. 그래서 시공보증을 선 건설사가 승계시공하게 됐다. 발주처인 인천시는 예산이 부족하여 공사대금의 25%를 토지로 지급하는 것으로 당초 시공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이 매립지가 완공되자마자 토지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승계시공사들은 이른바 ‘대박’을 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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