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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Feb 07. 2022

제21화 - 석유이야기

20세기 석유시장은 야마니 사우디 석유장관이 좌지우지했다

  에너지 각론의 두 번째는 석유 이야기다. 석유는 지질시대에 다량으로 존재했던 바다생물을 근원 물질로 하여 이들 생물유기체가 산소 공급이 희박한 곳에 집적되면서 산화되지 않고 보존되어 생성된 액상의 물질이다. 생성 시기는 1억5천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와 쥬라기로 알려져 있다. 지하 배사구조 지형에서 상부 덮개는 암층이고 함유층 하부에는 물이 있어 유출되지 않아야 석유광상이 형성된다. 물론 모래나 혈암 속에 섞여있는 석유도 있다. 이들은 비전통 에너지로서 오일샌드, 셰일석유 등으로 불린다.

     

원유는 API 도수에 따라 경()()()질유로 분류된다     

  정제되지 않은 석유를 원유라 한다. 원유는 비중에 따라 경(輕)질유(lighte oil), 중(中)질유(medium oil), 중(重)질유(heavy oil)로 나뉜다. 이는 API 도수에 따라 구분된다. API 도수는 미국석유협회(American Petroleum Institute)가 정한 비중 단위로서 산식[API 비중(gravity)=141.5/원유비중-131.5]에 의해 산출된다. 비중이 낮은 원유일수록 이 수치가 올라가는 형태다. 즉, 원유가 가벼울수록 API 도수는 높아진다는 것이다. 가벼운 원유인 경질유를 정제하면 휘발유, 경유, 등유 등 경질(輕質)의 석유제품이 상대적으로 많이 생산될 수 있다. API 도수가 34도 이상은 경질유고, 31∼33도는 중(中)질유, 30도 이하는 중(重)질유로 분류된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200여 종에 달한다. 이 중 서부텍사스(WTI; Western Texas Intermediate)유, 브렌트(Brent)유, 중동산 두바이(Dubai)유 등 3종의 원유 가격이 국제유가를 대표한다. WTI는 미국의 서부텍사스와 뉴멕시코주에서 생산된 API 40도의 초경질유로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선물과 현물 거래가 이루어진다. 브렌트유는 영국과 노르웨이 사이의 북해에서 채굴된 원유인데 런던석유거래소(IPE)에서 거래되고 주로 유럽 지역에 공급되는 유종이다. 브렌트유 또한 API 도수가 38도인 경질유다.

  API 31도의 중(中)질유인 두바이유는 중동산 원유를 대표한다. 두바이가 중동의 금융 중심지이어서 여기서 거래된 유가가 중동 국영석유회사들과 실수요자 간 장기공급계약으로 체결된 원유 거래에 기준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바이의 석유 생산량은 많지 않고, 아랍에미리트(UAE)에서는 원유의 대부분이 두바이와 인접한 아부다비에서 생산된다.

      

세계인은 석유를 하루에 1억배럴 가까이 소비한다     

  석유는 산업과 운송 분야 등에 필수적인 에너지원일 뿐 아니라 석유화학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 부문의 원료로 사용되는 중요한 자원이다. 그래서 석유를 ‘산업의 혈액’ 또는 ‘검은 황금’으로 부른다.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침공한 이유도 미국의 대(對)일본 석유 금수조치에 대한 보복과 함께 타개책으로 동남아 지역에서 석유자원을 확보하기까지 미국의 공격을 지연시키는데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석유가 경제 활동에 필수불가결한 자원이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따라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 석유 수요는 1985년의 5,938만배럴/일(b/d)에서 1995년에 7,009만b/d로 증가했고, 2005년 및 2015년에는 각각 8,389만b/d와 9,261만b/d로 늘어났다. 2019년의 소비량은 1억b/d에 가까운 9,827만b/d를 기록했다.     

세계 석유 소비 추이     

  자료 : IEA     

  석유 통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배럴(barrel)은 오크통(술통)을 의미한다. 1859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타이터스빌의 오일크리크에서 처음 유정이 시추되었을 때 채굴된 석유를 오크통에 담아 저장한데서 비롯한다. 1배럴은 42갈론으로 약 159리터다. 1드럼이 200리터니까 드럼의 4/5 정도 부피다. 영어 약자로는 b 또는 bbl이라고 쓴다. 1일 기준으로 석유 생산량이나 소비량을 나타낼 때는 b/d(barrel per day)로 표기한다. 유종에 따라 석유 1배럴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에 중량 단위와 1:1로 환산되지는 않으나 대체로 석유 1톤은 7∼8배럴에 해당한다.

  다시 세계 석유 소비 통계로 돌아가 보자. 주목되는 점은 매 10년간의 석유 소비량이 1985년부터 2005년까지는 18∼20%씩 증가했으나 그 이후에는 증가율이 10%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유가와 석유 수요의 상관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유가 변동 추이는 추후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수준에서 등락을 보였다. 그러나 2004년에 들어와 사상 처음으로 40달러를 돌파했고 이후에도 급격히 상승하여 2008년에는 최고 145달러까지 치솟았다. 가격에 대한 수요가 아무리 비탄력적인 석유라 하더라도 유가가 상승하면 장기적으로는 석유 대신 타 에너지원이나 자원으로 전환하게 된다. 소비증가율 둔화는 이러한 대체 효과로 해석된다.

     

한국은 세계 7위의 석유 소비국이다     

  우리나라의 석유 수요는 2017년 역대 최고치인 280만b/d에 달한 후 매년 2만b/d씩 감소하여 2019년에는 276만b/d를 기록했다. 하루에만 약 220만 드럼 분량의 기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세계 순위는 미국, 중국, 인도, 일본, 사우디, 러시아에 이은 7위에 올라 있다.

  우리나라의 석유 소비 구조를 보면 2019년의 경우 휘발유, 경유 등 에너지유와 LPG의 비중은 각각 35.5%와 13.2%에 불과했다. 나머지 51.3%는 나프타, 아스팔트, 용제 등 비에너지 부문에서 사용됐다. 제품별로는 47.3%를 차지한 나프타가 단연 1위다. 즉, 전체 석유의 48.7% 만큼만 수송용이나 난방용 등의 연료로 사용되고, 절반 이상인 51.3%가 산업용 원료로 쓰인다는 것이다. 산업용 원료로 사용되는 비중이 16.5%에 불과한 세계 전체의 석유 소비 구조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만큼 우리는 석유를 연료보다는 석유화학제품의 원자재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데 많이 사용하고 있다.     

석유 소비 구조

                        세계(2018)                                           한국(2019)

    자료 : IEA(세계), 한국석유공사(한국)     

  또한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한 방울도 생산되지 않는 석유를 수출하는 희한한 나라다. 2019년 중 원유 수입량의 27.2%에 해당하는 3,920만톤의 석유제품을 수출했다. 휘발유와 경유는 정제된 물량의 절반 이상을 수출한다. 그래서 석유제품은 품목별 수출 순위에서 늘 상위 10위 내에 든다. 2012년에는 석유제품 수출액이 561억달러로 수출품목 1위에 올랐다.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정유능력 보유국이다     

  원유는 정유공장(refinery)에서 정제된다. 우리나라에는 SK에너지,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4개의 정유회사가 있다. 이들의 정유공장은 울산과 여수, 그리고 대산 등 해안에 소재한다. 원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SK에너지는 1962년 국영기업인 대한석유공사로 출발한 정유회사다. 이후 미국 석유회사 Gulf와 합작했고, 1980년 민영화될 때 선경그룹(현재 SK그룹)이 인수했다. 선경의 사명 변경에 따라 유공을 거쳐 현재 SK에너지가 된 것이다. 이 회사는 울산 석유화학단지의 모체 역할을 하고 있다. SK에너지의 정유공장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 프로젝트로 건설됐는데, 당시 국내 전력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국에서 빌려온 발전선을 이용하여 공사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했다.

  GS칼텍스는 미국의 Caltex와 합작해 민영기업으로 출발한 정유회사다. 최초 사명은 호남정유였으나, 역시 그룹명 변경과 그룹 분할을 거치면서 현재 사명으로 변경됐다. 제2의 석유화학 콤비나트인 여천공단의 중심 기업이다. 현대오일뱅크는 극동석유공업에서 시작하여 극동쉘과 현대정유를 거쳐 2002년부터 현재의 사명을 쓰는 정유회사다. 2011년 현대중공업그룹에 편입됐으며, 정유시설은 충남 서산시 대산읍에 소재한다.

  S-오일은 1976년 설립된 한이석유가 쌍용정유로 변경되었다가 현재의 사명이 된 기업이다. 1991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가 합작으로 참여한 후 2015년부터 단독 최대주주가 됨으로써 지금은 외국인투자기업이 되었다. 정유공장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에 있다.

  2019년 현재 우리나라 4개 정유회사가 보유한 정제능력을 합하면 339만3천b/d가 된다. 대한석유공사가 3만5천b/d 처리 능력의 상압증류시설을 가동한 1964년 이래 55년간 우리나라의 정제능력은 거의 100배나 커졌다. 이는 세계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다음의 다섯 번째 규모다.

    

국내 정유공장들은 원유를 알뜰하게 정제한다     

  원유를 정유시설인 상압증류탑에서 가열하면 온도에 따라 각종 석유제품이 생산된다. 낮은 온도에서 시작하여 처음에는 LPG가 추출되고, 온도가 올라갈수록 휘발유, 나프타, 등유, 경유, 중유(벙커C유) 순으로 석유제품들이 나오며, 마지막으로 아스팔트와 잔사유가 남는다.

  휘발유는 차량용 연료로, 경유와 등유는 주로 차량용과 산업 및 난방용 연료로 사용된다. 항공기용 연료도 등유다. 나프타는 납사라고도 하는데 석유화학산업의 기초 원료다. 중유는 과거 선박 연료로 많이 사용됐으나 지금은 중질유 분해시설에서 다시 정제되어 휘발유, 경유 등 고급유로 탈바꿈된다. 우리나라 정유공장들은 중질유를 최대한 재분해하고 있다. 상압증류탑과 중질유 분해시설에서 생산된 휘발유와 경유의 절반 이상은 수출된다.

원유 분별 증류도


유가 불안을 야기하는 첫째 요인은 석유 수급의 불안정이다     

  이제 유가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유가는 단숨에 몇 배나 뛰기도 하고, 한 순간에 폭락하기도 한다. 심지어 2020년 한 때는 선물 가격이었지만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도 있었다. 왜 유가는 안정적이지 못하고 롤러코스터처럼 변동 폭이 클까? 그 요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석유 수급이 불안정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석유는 필수 원자재로서 수요가 가격에 대해 극히 비탄력적이다. 따라서 공급이 조금만 부족해지더라도 가격은 급등하게 된다. 더욱이 석유공급국들은 강력한 카르텔로 뭉쳐 있다. OPEC(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이라 하는 석유수출국기구가 그것이다.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등 다섯 나라가 석유 가격의 하락을 방지할 목적으로 국제기구 형태의 OPEC을 결성했다. 이후 카타르(1961년), 리비아(1962년), 아랍에미리트(1967년), 알제리(1969년), 나이지리아(1971년), 에콰도르(1973년), 가봉(1975년), 앙골라(2007년), 적도 기니(2017년), 콩고(2018년)가 속속 참여함으로써 현재 회원국 수는 15개국이 됐다.

  이들 15개국이 세계 전체 석유 매장량의 81.5%와 생산량의 44%를 차지한다. 1962년부터 1986년까지 24년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으로 재임했던 셰이크 아흐마드 야마니가 OPEC을 주도했다. 그가 왕족이 아님에도 오랫동안 석유장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탁월한 능력 때문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으로서 OPEC 전체의 석유 생산과 수출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 왔다. 지금도 OPEC의 맏형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석유는 다른 에너지원보다 생산량에 비해 가채매장량이 적어 피크오일(peak oil)과 조기 고갈 문제가 종종 대두되곤 했다. 피크오일이란 생산이 정점을 지나서는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을 뜻한다. 1차 석유사태가 발생한 후 로마클럽은 40년이 지나면 석유가 고갈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10년대에도 석유 가채연수는 40년으로 추정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현재 가채매장량이 2.4조배럴이지만, 비전통 석유의 매장량이 8.5조∼9조배럴임을 감안하면 가채연수를 150년 이상이라고 보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과 투기자본도 유가 불안정의 요인들이다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대표적인 분쟁 지역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는 수시로 전쟁이 일어나고, 이라크는 인접한 이란 및 쿠웨이트를 침공한 바도 있다. 이슬람의 수니파와 시아파는 전통적으로 대립과 갈등 관계에 있다. 서방 세계의 이란 제재에 따라 세계 석유 교역량의 1/3이 통과하는 호르무스 해협은 항상 긴장 상태다. 10년 전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은 중동의 왕정 및 독재체제 국가로 전파됐고, 지금도 시리아에서는 내전이 종식되지 않고 있다.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산유량에 차질을 빚어 유가가 출렁이게 된다. 석탄과 달리 석유는 중동 아랍국가에 집중 매장되어 있고, 생산량도 많기 때문이다.  

  유가 불안정에는 투기자본도 한몫을 한다. 석유는 가장 중요한 원자재의 하나인데다 시장 규모도 크다. 현물, 선물, 파생금융상품 등 석유를 매개로 한 금융거래도 활발하다. 더욱이 OPEC이란 카르텔의 존재와 불안한 중동 정세는 석유 수급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킨다. 반면에 가격에 대한 석유 수요가 비탄력적이어서 가격 변동 요인의 한계효과(marginal effect)가 크다는 점도 ‘높은 위험과 높은 수익(high risk, high return)’을 선호하는 성향의 투자자에겐 양호한 투자 여건으로 작용한다.

원유가 추이(연평균 OPEC 수출가격 기준) 

  자료 : 에너지통계연보, Economicc Report of the President

     

1970년대 중동전쟁과 이란 회교혁명으로 유가가 10배 올랐다     

  배럴당 3달러였던 국제 유가가 1973년 10월에는 약 12달러로 4배 가까이 급등했다. 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 영국, 일본 등을 제재하기 위해 OPEC이 원유 공시가격 인상에 이어 수출금지 조치를 취한 데서 비롯됐다. 이를 1차 석유사태(oil shock; 석유파동)라 한다. 이때부터 석유메이저들이 가지고 있던 석유가격 결정권을 산유국이 장악했고, 석유 무기화와 자원 민족주의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유가 급등으로 세계 경제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불황에 휩싸였다.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76년 1월 석유 문제 대응을 위해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를 설립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두 번째 석유사태가 발생했다. 1978년 12월 인플레이션에 따른 달러화 가치의 하락을 보전하기 위해 OPEC이 석유 수출가격을 배럴당 14.55달로 인상하기로 의결했다. 또한 이란에서는 회교혁명으로 소요사태가 발생하면서 석유 생산이 차질을 빚게 되자 이란 정부가 석유 수출 중단을 선언했다. 당시 세계 2위 석유수출국이던 이란의 석유 수출이 중단됨에 따라 유가는 더욱 치솟아 1980년에는 배럴당 약 32달러 수준에 이르렀다. 중동 정세의 변화로 1973년 10월부터 1980년 초까지 국제유가는 10배 이상 급등한 것이다.

     

석유 공급 과잉에 따라 저유가로 반전된다     

  갑작스런 고유가는 산유국들의 석유 증산과 수출을 촉발했다. 더욱이 이란-이라크 전쟁의 발발로 양국은 전비 조달을 위해 석유 증산에 나섰다. 이로써 세계 석유시장은 공급 과잉(oil glut) 현상을 보였다. 유가는 하락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배럴당 10달러 대로 떨어졌다. 이 시기에 사우디아라비아 파드 국왕은 야마니 석유장관을 해임했다. 산유량을 축소하여 더 이상의 유가 하락을 방지해야 하는데 야마니 장관이 소극적이었다는 게 이유였다. 한편 1,2차 석유사태로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나라는 당시 저유가(유가하락)와 함께 저금리, 저달러(엔화가치 상승)의 3저 호황으로 1986∼88년 3년 동안 처음으로 큰 폭의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걸프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유가는 다시 20달러 대로 상승했다. 미국을 비롯한 33개국의 다국적군이 참여하여 6개월 만에 이 전쟁을 종식시킴으로써 유가 상승은 일시적 현상에 그쳤다. 이후 1997년 우리나라와 동남아 국가에 외환위기가 발생함으로써 유가는 배럴당 10달러 초반대로 하락했다.


OPEC의 감산과 신흥국 수요 증가로 유가는 재상승한다     

  2000년에 들어와 OPEC은 지속되는 저유가 현상을 탈피하기 위해 결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회원국들이 합심하여 감산 조치에 들어감에 따라 유가는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즈음인 2000년 9월 야마니 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OPEC의 진짜 적(敵)은 기술”이라면서 “기술이 석유 소비를 감소시키고 비OPEC국가들의 석유 생산을 늘일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비전통 석유의 생산과 대체에너지 사용 확대를 예견한 것이다.

  또한 2000년대 중반 이후 BRICs 등 신흥국들이 세계 석유시장에 큰 손으로 진입했다. 이들 나라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석유 수요는 크게 늘어났다. 그 결과 유가가 상승하게 된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2004년 5월 사상 최초로 국제 유가는 배럴당 40달러 선을 돌파했다. 더욱이 2000년대 초반 IT버블 붕괴 이후 선진국들이 경제 회복을 위해 유동성 공급을 확대한 결과 넘쳐나는 자금이 투기자금으로 석유시장에 유입됨에 따라 유가를 더욱 끌어 올렸다. 2008년 7월 14일 유가는 역대 최고치인 배럴당 145.18달러를 기록했다.

     

폭락한 유가는 아랍의 봄과 양적 완화로 고공행진에 돌입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던 유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가 침체하기 시작하자 폭락세로 급반전했다. 2008년 11월 20일 석유시장에서 유가는 48.71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불과 4개월 동안 1/3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약세 장세는 잠시 동안이었다. 각국이 경제 회복을 위해 양적 완화를 앞 다투어 시행하자 유가는 회복되고, 늘어난 유동성이 석유시장에 다시 유입되어 유가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

  여기에다 ‘아랍의 봄’ 물결이 석유시장에도 영향을 주었다. ‘아랍의 봄’은 2010년 12월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서 시작된 자유화 운동이 아랍지역으로 확산된 현상을 일컫는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통치해 온 리비아는 내전에 휩싸여 유전의 대부분이 파괴됐다. 이로써 하루 160만배럴의 석유 공급이 끊겼다. 때를 같이한 이란의 핵개발에 대한 미국과 UN의 제재 조치로 이란 석유의 공급도 차질을 빚게 됐다. 유가는 다시 고공 행진에 돌입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년 동안 연속해서 연평균 석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했다.     

미국 세일오일의 공급과 코로나19 여파로 유가는 급락한다      

  2015년부터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이 본격화됨에 따라 세계 석유 공급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셰일오일 덕분에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의 지위를 회복하고 수출도 재개했다. 참고로 2019년의 10대 석유 생산국(생산량)은 1위 미국(1,705만b/d), 2위 사우디아라비아(1,183만b/d), 3위 러시아(1,154만b/d), 4위 캐나다(565만b/d), 5위 이라크(478만b/d), 6위 UAE(400만b/d), 7위 중국(384만b/d), 8위 이란(354만b/d), 9위 쿠웨이트(300만b/d), 10위 브라질(288만b/d)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창궐하여 세계 경제는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이로써 2/4분기에는 유가가 배럴당 20달러 대로 하락하고, 선물시장에서는 사상 초유로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2020년 4월 20일 NYMEX에서 WTI 5월 인도분 선물가격 종가가 배럴당 -38달러였던 것이다. 석유 수요가 20%나 감소함에 따라 유조선을 포함한 비축시설은 포화 상태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만기를 연장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기계약분의 처분이 불가피했기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돈 주고 땡 처리한 셈이다. 그러나 2021년 들어 세계 경제가 회복 국면에 돌입함으로써 유가도 상승 기조로 전환됐다. 2022년 2월 현재 유가는 배럴당 80달러 이상 수준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난 50년 동안 국제 유가는 지정학적 불안과 경제 상황에 따른 수급 불균형, 투기자본의 가세 등으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해 왔다. 향후에도 이러한 현상이 계속될 것은 분명하다. 다른 원자재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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