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원 Feb 03. 2022

제20화 - 석탄이야기

정선카지노는 연탄의 산물이다

  이번부터 4회에 걸쳐 에너지원별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먼저 석탄을 살펴본다. 석탄은 약 3억년 전 고생대 석탄기와 페름기에 퇴적된 식물이 가열과 가압 작용을 받아 생성된 가연성 암석이다.

     

탄소 함유량에 따라 탄종이 분류되고 용도도 다르다     

  석탄은 탄화된 정도에 따라 크게 토탄(peat), 갈탄(lignite), 역청탄(bituminous), 무연탄(anthracite)의 네 종류로 구분되는데 무연탄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연탄이다. 역청탄은 탄소 함유량이 75∼87.5%인 역청탄과 50∼75%의 아역청탄(sub-bituminous)으로 세분된다. 탄소 비중이 높아 연소 시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무연탄도 탄소 함유율 87.5∼92%인 반무연탄(semi-anthracite)과 92% 이상의 무연탄으로 나뉜다. 무연탄이 더 탄화되면 흑연으로 형질이 변화된다. 이렇게 석탄 종류를 세분하는 것은 종별로 성질과 용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석탄은 주로 연료로 이용된다. 연료도 용도별로 발전용과 산업용, 가정용 등으로 구분된다. 발전용 연료로는 아역청탄, 역청탄 중 코크스용을 제외한 부분, 반무연탄과 무연탄이 사용된다. 가정에서 난방과 취사용으로 사용되는 석탄은 대부분 갈탄과 무연탄이다. 중국이나 몽골 등에서는 갈탄을 비롯한 저품위 석탄을 가정용 연료로 사용함에 따라 대기오염이 심한 편이다.

  연료용 역청탄은 시멘트를 소성하는 데도 사용된다. 시멘트 제조의 주 공정은 소성로에서 석회석(분자식; CaCO3)을 가열하여 크링카(CaO)와 이산화탄소(CO2)로 분리하는 것인데, 여기에 점도가 다소 약한 역청탄이 분말 형태로 투입된다. 제철용으로는 코크스용 역청탄과 반무연탄이 연료 겸 환원제로 사용된다. 이밖에 석탄을 가스화하여 합성천연가스(SNG)를 제조하거나 카본블랙, 전극, 탄소재, 탄소섬유 등 석탄화학산업의 원료로 활용하고 있다.     

석탄의 분류와 용도

  우리는 석탄광산이라 하면 흔히 지하 갱도로 들어가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갱도탄광을 떠올린다. 그러나 지상에서 굴착기와 페어로더, 덤프트럭 등 중장비로 건설현장에서 터파기 하듯이 채탄하는 노천탄광도 많이 있다. 독일의 루르나 세계 최대의 석탄 매장량을 자랑하는 몽골의 타반톨고이, 호주의 대규모 탄전 대부분이 노천탄광이다. 노천탄광은 광상(鑛床)이 시루떡처럼 탄층과 토사층이 평면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형태다. 그래서 석탄밭과 같다고 하여 탄전(炭田)이라 한다. 노천탄광에서는 상상 이상의 대형장비들이 운용되고 있다. 타반톨고이 탄전에 있는 덤프트럭은 석탄 250톤을 한 번에 실어 나른다. 따라서 노천탄광에서의 채탄 생산성은 갱도탄광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세계 석탄 소비는 감소 추세다     

  2020년 중 전 세계에서 소비된 석탄은 73억3,300만톤.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2014년의 79억9,600만톤에 비해서는 8.3% 정도 감소했지만 2000년의 47억9,300만톤보다는 53.0%나 증가한 양이다. 세계 석탄 소비량이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는 매년 45억톤 내외에 그쳤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석탄 소비량이 급증한데 기인한다. 석탄 1위 소비국은 단연 중국이다. 중국은 2020년에 세계 총 소비량의 절반을 넘는 38억3,000만톤의 석탄을 사용했다. 2위는 9억7,600만톤을 소비한 인도였고, 우리나라는 1억1,500만톤으로 9위를 기록했다.

  석탄 소비가 2010년대 중반 이후 소폭이나마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와 미세먼지 문제 등으로 인해 석탄 소비에 제약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2012년부터 석탄 소비를 줄여 나가고 있으나 아직도 전체 에너지 소비의 62%를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 전체로 용도별 소비 비중에서는 산업 부문이 80%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거용도 7.5%로 높은 편인데 저개발 국가일수록 주거용 석탄 소비량이 많다.

  우리나라의 석탄 소비 구조를 보면 2019년의 경우 전체 소비량 1억3,300만톤 중 63.8%인 8,480만톤이 발전 부문에서 사용됐고, 산업 부문에서는 4,756만톤(35.8%)을 소비했다. 산업 부문의 석탄 사용량 중 유연탄은 4,145만톤이었는데 대부분이 제철용(3,496만톤)과 시멘트 소성로용(399만톤)으로 쓰였다. 이 해에 연탄 제조용으로 사용된 무연탄은 64만4천톤으로 집계됐다.     

세계 석탄 소비량 추이 (단위 : 백만톤)

  자료 : enerdata     

  석탄 최대 생산국 역시 중국이나 수요량이 워낙 많아서 매년 3억톤 정도씩 수입한다. 인도도 2위의 생산국이나 연간 2억톤  내외를 수입함으로써 석탄 수입 2위 국가에 올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100만톤 정도의 무연탄만 생산되기에 석탄 수요량의 거의 전부를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이어 4위의 석탄 수입국이며, 2019년의 수입액은 142억달러였다. 호주, 인도네시아, 캐나다산 석탄을 주로 수입한다.     

연탄 보급은 산림보호 차원에서 시작됐다

  이제 연탄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 도시가스가 보급되기 전까지 연탄은 한국인의 취사와 난방을 책임져온 연료였다. 연탄은 한국전쟁 직후에 가정용 연료로 등장했다. 그러나 연탄 보급이 본격화된 시점은 1960년대 중반. 가정의 주종 땔감이었던 화목(火木; 장작)의 사용이 금지되면서부터다. 정부는 한국전쟁으로 산림이 황폐해진 데다 화목 채취로 인해 전국의 산이 오늘날 북한 지역 산처럼 민둥산으로 변해가자 임목 채취를 일체 금지했다. 화목 대신에 난방과 취사용 연료로 연탄을 보급했던 것이다.

  당시 정부는 식목 장려와 함께 산림 보호를 위해 불법 임목벌채 등 「산림법」을 위반하는 자를 엄격하게 처벌했다. 우선 산림을 관리하는 산림청을 농림부(현재 농림축산식품부) 외청에서 내무부(행정안전부) 소속으로 변경 조치했다(이후 1987년에 다시 농림수산부로 환원되었음). 영림서(현재 지방산림청) 직원에게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산간수’라 불리던 이들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일제강점기 때의 순사와 같은 두려운 존재였다. 정부의 강력한 조치에 힘입어 산림녹화 사업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단위면적당 입목(立木)량을 나타내는 임목밀도가 1965년의 9m3/ha에서 2019년에는 161m3/ha로 18배나 증가했다.

  산림녹화와 관련한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우리나라가 중국 및 러시아와 수교하기 전까지는 항공기의 항로가 일본 쪽으로만 열려 있었다. 포항의 영일만 상공을 통과하는 노선이 주 항로였는데 이 지역의 산 역시 민둥산이었다. 정부는 외국인들이 맨 먼저 보게 되는 한국 땅이 헐벗은 산이라 첫 인상이 좋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사방사업을 추진했다. 그런데 토질이 나무가 착근하기 어려운 이암과 혈암이어서 과거에도 수없이 많은 사방사업을 시행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지역이었다. 1971년 대통령 지시에 의거 중앙임업시험장 주관 하에 우량 묘목을 밀집 식재하고 잡관목(雜灌木)을 다량 이식하여 1977년까지 4,538ha에 달하는 산지를 녹화하는데 성공했다. 단일 구역으로는 최대 규모의 치산치수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산림육성 기술은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연탄은 30년 이상 한국 가정의 주된 연료였다     

  연탄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먼저 탄광 개발에 나섰다. 강원도 태백・정선 지역과 경북 문경, 전남 장성 등에 소재한 기존 무연탄 광산을 확충하고 신규 광상 개발을 추진했다. 석탄 수급을 담당하는 대한석탄공사를 설립하고, 정부가 장성광업소 등 탄광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즉, 민영과 국영의 이원화를 통해 석탄 생산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이로써 국내 무연탄 생산량은 급격하게 증가하여 1986년에는 2,115만톤에 달했다. 그럼에도 생산이 수요에 못 미쳐 1980년대 중반까지 매년 200만∼300만톤씩 연탄용 무연탄을 수입했다. 연탄 공장들도 바빴다. 서울의 창동, 대구의 반야월 등 철도역 옆에 대규모 저탄장을 설치하여 무연탄을 쌓아 두고, 연탄을 찍어 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연탄 공장들이 이전하거나 문을 닫은 지금은 저탄장과 공장부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또 다른 과제는 생산된 무연탄을 소비지까지 수송하는 문제였다. 당시로서는 연간 1,000만∼2,000만톤의 석탄을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각지로 운송하는 것이 보통일은 아니었다. 그것도 수요가 몰리는 가을철에 집중 수송해야 했다. 가정마다 겨울나기 준비는 김장과 연탄 장만이었고, 이는 국가적 대사였다. 정부는 철도 부설을 서둘렀다. 태백선, 문경선 등 무연탄 수송을 위한 철도가 개설됐다.

  연탄 사용에 따른 부작용도 속출했다. 대표적인 것이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연탄가스는 무색, 무취, 무미의 비자극성 가스인 일산화탄소(CO)를 일컫는다. 일산화탄소는 탄소를 포함한 물질이 불완전 연소될 때 발생하는 가스다. 해마다 연탄가스 중독자가 수없이 많이 생겨나고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1960∼69년 10년간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숫자가 거의 2만5,000명에 달했다. 그래서 연탄가스를 ‘그림자 없는 살인흉기’나 ‘겨울철의 사신(死神)’ 등으로 불렀다. 연탄가스 중독은 아궁이와 구들장, 방바닥 등이 허술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화목을 사용할 때는 연기만 났을 뿐인데 연탄아궁이로 전환되니 일산화탄소가 스며들었던 것이다.

     

연탄 소비는 도시가스 공급으로 격감했다     

  확대일로에 있던 무연탄 소비는 도시가스가 공급되면서 감소하기 시작했다. 천연가스는 1985년 하반기부터 수입됐다. 배관망 구축 등으로 가정에 본격적으로 공급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으나 3∼4년 후부터는 도시가스 사용량이 크게 늘어났다. 그동안 액화석유가스(LPG)를 연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1986년 2,471만톤이었던 연탄 수요가 1991년에는 1,499만톤으로 거의 1,000만톤이나 감소했고,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100만톤 수준으로 격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유가가 급등하자 연탄 수요가 다소 늘어 200만톤 내외로 회복됐지만 이후 유가 하락과 더불어 다시 감소하여 2018년 이후에는 100만톤 미만으로 떨어졌다.                    

연탄용 석탄 소비량 추이    

   자료 : 대한석탄협회

     

연탄에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     

  연탄 수요가 격감하긴 했으나 일부 저소득층 가정과 농촌의 비닐하우스 난방 등에 여전히 연탄이 연료로 사용되고 있다. 연탄 한 개 무게가 약 3.6kg이니까 2019년의 연탄용 무연탄 소비량 64만4천톤을 연탄 갯수로 환산하면 대략 1억7,900만개로 산출된다. 적지 않은 수량이다. 현재 전국에는 44개의 연탄공장이 있는데 대부분 특・광역시보다는 도 지역에 소재한다. 이는 농촌의 연탄 소비가 그만큼 많음을 반증한다 하겠다.

  정부는 저소득층과 농촌 지원 대책의 일환으로 종전부터 연탄에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보조금은 원탄인 무연탄 구입과 연탄 제조비용, 연탄공장이 부담하는 연탄 수송비 등 3개 부분으로 나누어 지급된다. 현재 연탄 한 개 기준 무연탄 구입비에 125.96원, 제조비에 151.25원, 수송비에 25.75원 등 도합 301.96원이 지원된다. 연탄의 공장도 가격은 개당 639원인데 만약 지원금이 없었다면 940.96원이 됐을 것이다. 여기에다 출고 후 소비지까지의 상・하차비를 포함한 운반・배달비 111원을 더하면 소비자는 개당 1,051.96원을 지불해야 하나 보조금 덕분에 750원만 부담한다. 운반・배달비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산식에 적용된 111원은 서울의 평지 지역을 기준으로 산출한 금액이다.

  정부가 주는 지원금 총액 301.96원은 지원금이 없을 경우 지불해야하는 금액인 1,051.96원의 28.7%에 해당한다. 즉, 연탄에 대한 보조금 지급률은 28.7%인 셈이다. 개당 지원금 301.96원을 2019년의 연탄 생산량 1억7,900만개에 곱하면 이 해에 정부가 연탄에 지원한 총금액은 대략 513억원으로 계산된다.

     

강원랜드는 폐광지역 회생 대책으로 생겨났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연탄 수요가 감소함에 따라 무연탄의 공급 과잉 현상이 지속되고 재고는 쌓이기 시작했다. 많은 탄광들이 폐광에 들어갔다. 탄광은 태백과 정선에 많이 몰려있다,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이 지역에 소재할 만큼 산골짜기 외진 지역인데 탄광 덕분에 번영을 구가해 왔다. 그러나 폐광으로 졸지에 피폐화되자 주민들은 지역 경제를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폐광 지역의 경제 회생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1995년 법적근거로서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공포했다. 이 법에 의거 1998년에 강원랜드가 설립됐다. 강원랜드는 시장형 공기업으로서 자본금 1,000억원으로 출발했다. 우선 공공부문에서 통상산업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광해관리공단과 강원도개발공사, 정선, 태백, 영월, 삼척 등 폐광지역 4개 시・군이 모두 510억원을 출자했다. 나머지는 추후 공모를 통해 조달했다.

  강원랜드의 주 사업은 카지노와 리조트 운영이다. 정선군 사북읍에 소재한 강원랜드카지노(정선카지노)는 국내 17개 카지노 중 유일하게 내국인도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다. 강원랜드가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기는 하나 당초 설립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카지노로 인한 폐해도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19화 - 에너지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