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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Mar 07. 2022

제29화 - WTO이야기

왜 라운드 전성시대는 끝이 났는가?

  1948년 3월 24일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UN 무역고용회의에서 「아바나 헌장(Havana Charter)」이 채택됐다. 3년의 기획 기간과 2년 동안의 협상을 거친 후 53개국이 서명한 이 헌장에는 무역정책, 카르텔, 상품협정, 고용, 경제발전, 국제투자에 관한 내용들이 담겨졌다. 아울러 국제무역을 규율하는 UN 산하기구로서 국제무역기구(ITO)를 설립하는 안(案)도 포함돼 있었다.

     

국제무역기구 설립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브레튼 우즈 회의에서 통화, 금융, 무역이란 세계경제질서 3각 체제의 확립을 추진하되 먼저 IMF와 IBRD 설립에 합의하고, 추후 국제무역기구를 출범하기로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미국 상원에서 「아바나 헌장」 비준이 거부됨으로써 ITO의 출범은 좌절됐다. 1940년대 후반 미국은 세계 수출의 1/3과 수입의 1/10을 차지한 무역대국이고, 세계 최대의 무역흑자 국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한 이유는 「아바나 헌장」이 이상적인 수준의 자유무역을 지향하고 있음에 반해 당시 미국은 자유무역에 관한 한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아바나 헌장」의 초안 작성과 병행하여 추진된 관세와 무역 분야의 협상 결과가 35개 조항으로 조문화하여 제출됐다.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그것으로 1947년 제네바 회의에서 채택되어 1948년 1월 발효됐다. 「아바나 헌장」이 무산되자 GATT가 세계 무역질서의 기본적인 법적 구조로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그러나 GATT에는 조직에 관한 규정이 없었기에 1955년 무역협력기구(OTC)라는 이름의 국제무역을 관장하는 기구 설립이 발의됐다. 이 역시 미국이 동의하지 않아 성립되지 않았고, 제네바에 소재한 GATT 사무국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이로써 GATT는 WTO가 출범할 때까지 UN의 준전문기구로서 지위를 가진 매우 이례적인 형태의 국제기구였다.

     

GATT는 라운드로 무역자유화를 추진했다

  GATT는 '무차별원칙(non-discrimination principle)'과 '수량제한 금지(elimination of quantitative restrictions)', '공정한 경쟁'을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다. 무차별원칙이란 국별로 차별을 금지하는 최혜국대우(most-favored-nation treatment), 즉 특정 국가에 유리한 조건은 모든 국가에 대해서도 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외국인을 국내인과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국민대우(nation treatment)를 의미한다. 수량제한 금지는 관세만이 국내산업 보호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원칙이고,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보조금과 덤핑이 철폐돼야 한다는 것이다.

  GATT는 공정무역을 규율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회원국 간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 및 개방화를 위한 협상을 추진해 왔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설립될 때까지 여덟 차례의 다자간무역협상, 즉 라운드(round)가 개최됐다. 라운드는 GATT 조문을 축조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GATT 체제 출범 이전에 진행된 1차 라운드에는 23개국이 참여해 공산품의 관세 인하를 논의했다. 이어 1949년에는 프랑스 안시에서 2차 라운드가 열렸다. 이후 3차에서 6차 라운드까지도 관세 인하가 협상의 주안점이었다. 특히 1967년에 타결된 6차 케네디 라운드에서 관세율이 대폭 인하됨으로써 목표년도인 1972년의 공산품 평균 수입관세율은 1차 라운드 이전의 40%에 비해 1/5 이하 수준인 7%로 낮아졌다.

  5차 때부터 라운드 명칭에 다자간무역협상을 주창한 인명이나 회의가 개최된 도시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5차는 당시 미국 국무부 딜런(Douglas Dillon) 차관이 주창자여서 딜런 라운드로, 6차는 개시자인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케네디 라운드로 명명됐다. 7차와 8차는 각각 일본 도쿄 및 우루과이에서 개최된 GATT 각료회의에서 새로운 다자간무역협상의 추진이 결의됨에 따라 도쿄 라운드와 우루과이 라운드라고 이름을 붙였다.     

다자간무역협상 추진 현황              


도쿄 라운드는 비관세장벽을 규제하기 위해 개최됐다     

  공산품에 대한 관세율이 대폭 인하되자 선진국들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비관세장벽(non-tariff barrier)을 속속 발동하기 시작했다. 수입허가제, 할당관세, 수량규제(쿼터제 등), 기술장벽(제품기준, 표준, 검사, 인증, 라벨링 등), 수출제한(수출세 등), 원산지규정, 지적재산권, 반덤핑규제, 수출자율규제 등이 그것들이다.

  그래서 무분별한 비관세장벽의 발동을 규제하기 위한 7차 다자간무역협상인 도쿄 라운드가 개최된 것이다. 6년간 진행된 협상 결과 덤핑방지, 보조금・상계관세, 관세평가, 기준인증절차, 수입허가절차, 정부조달 등 비관세장벽 6개 분야에 관한 협정서가 작성됐다. 또한 선진국의 관세율을 추가로 평균 33% 인하하는데도 합의했다.

  비관세장벽의 사례로 1974년 섬유수입국과 수출국 간에 체결된 다자간섬유협정(MFA; multi fiber arrangement)을 살펴본다. MFA는 섬유와 의류제품의 수입량을 수출국별 쿼터(quota)로 제한하기 때문에 보호주의 성격이 강한 다자간 협정이라 하겠다. 수입이 급증할 경우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수량제한 등의 수입규제 조치를 발동할 수 있다는 세이프가드(safeguard; 긴급수입제한) 조항이 GATT 19조에 규정돼 있으나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적용에 그쳐야 한다. 그러나 이 협정은 당초 예정한 4년간의 시행 기간이 4차례나 연장된 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결과에 따라 2005년에야 폐지됐다.

  수출국에는 수출자율규제(VER; voluntary export restraint)란 방식으로 매년 수출한도가 부여된다. 한도(쿼터)는 전년도의 수출실적에 연동하여 책정된다. 소진하지 못한 수량에 대해서는 익년도의 쿼터량을 2배만큼 삭감하기 때문에 연말에는 수출쿼터 투매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MFA 시행 전에 섬유수출 실적이 많아 오히려 수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8차 다자간무역협상은 서울라운드가 될 뻔 했다     

  1986년 9월 20일 우루과이 푼타 델 에스테(Punta del Este)에서 개최된 GATT 각료회의에서 무역자유화를 보다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다자간무역협상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1994년 4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합의문을 채택하기까지 장장 7년 7개월 동안 진행된 우루과이라운드(UR; Uruguay round)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당초 GATT는 각료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9월 20일 개막되는 86서울아시안게임과 일정이 겹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사실상으로는 농산물시장 개방이 주요 의제 중 하나로 예상됐기에 기피했다고 볼 수 있다. 서울 라운드에서 농산물시장의 개방 문제가 논의되면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에 그랬을 것이다.

  우루과이 라운드는 몬트리올, 제네바, 브뤼셀, 워싱턴, 도쿄 등세계 10여개 도시를 순회하며 협상을 진행한 후 모로코에서 ‘마라케시 선언’이 채택됨으로써 종료됐다. 8차 라운드인 UR은 그동안 진행된 다자간무역협상 중 가장 중요하고 포괄적인 무역협상이었다. 7개 분야에 걸쳐 합의가 이루어졌다.

  공산품 분야에서는 관세를 1986년 9월 수준에서 40% 감축하기로 했다. 이로써 선진국의 평균 관세율은 양허 기준 3.3%로 낮아지게 됐다. 농업 분야의 경우 비관세장벽을 관세화로 전환하되 다만 최소시장접근법(MMA)을 허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허용보조금의 범위를 구체화했다.

  섬유 분야에서는 MFA의 수입쿼터제를 향후 10년 내에 폐지하고 WTO 규율에 통합하기로 했다. 그리고  규범 측면에서 GATT 정신에 위배되는 수출자율규제, 시장질서협정 등 이른바 회색조치(grey area measure)를 4년 이내에 철폐하고, 반덤핑, 상계관세, 긴급수입제한 조치의 발동 요건과 기준을 보다 투명하고 엄격하게 규정했다.

  서비스 분야에 대해서는 새로운 규범인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 General Agreement on Trade in Services)’을 제정했다. 또한 통일된 분쟁해결 절차를 마련하고 단계별로 처리 시한을 설정하는 등 결정의 신속성을 보장하는 분쟁해결 시스템을 구축했다.

  무엇보다도 UR 협상의 결과 그동안 설립이 좌절된 국제무역기구(ITO)와 무역협력기구(OTC)를 대신하여 국제무역을 관장하는 기구로서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가 창설됐다는 것이 큰 성과였다. WTO는 GATT를 대체하는 항구적이고 강력한 국제기구로 당시 76개 GATT 회원국 및 신규 36개국 등 112개 가입국으로 출범했다. 최고 의결기관인 각료회의는 매 2년마다 개최된다.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은 중단된 상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자간무역협상의 주 의제는 공산품의 관세율 인하에서 비관세장벽 제거로, 그리고 자유무역의 대상 범위를 농산물과 서비스 부문으로 확대하는 순서로 진척됐다. 그러나 WTO 체제가 출범한 이후 27년이 지나는 동안 다자간무역협상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제4차 WTO 각료회의에서 새로운 무역 이슈에 관한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의제로 농산물과 서비스 시장의 추가 개방, 반덤핑・보조금・지역협정・분쟁해결에 관한 WTO 협정 개정, 환경, 지적재산권, 투자 및 경쟁정책, 정부조달의 투명성에 관한 새로운 무역규범의 수립 등을 설정했다. WTO 체제가 출범한 이후 첫 번째 다자간무역협상이지만 GATT 시대부터 카운트하면 아홉 번째 라운드다. 그러나 라운드란 명칭 대신에 도하개발아젠다(DDA; Doha Development Agenda)로 명명했다. 개도국들이 라운드란 용어 사용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2005년에 종결하기로 목표를 설정했으나 현재까지도 타결되지 못한 채 협상이 중단된 상태다.

  DDA 협상이 교착 상태에 처한 원인으로는 우선 의제를 둘러싸고 선진국과 개도국 간 입장차가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농산물과 서비스 시장의 추가 개방과 지적재산권 보호 등 분야에 있어서는 양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와 함께 WTO의 의사결정방식도 합의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첫째는 콘센서스 방식에서 비롯된다. WTO에서도 GATT 때와 마찬가지로 회원국 전원 합의, 즉 만장일치제로 의결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미국과 EU가 주도하여 합의를 도출해 왔다. 그러나 회원국 수가 늘어난 오늘날에는 만장일치에 도달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2021년 현재 WTO 회원국 수는 164개국이다. 케네디 라운드의 74개국과 UR 협상에 참여한 117개국에 비해 1.4∼2.2배 수준이다. 2001년 WTO에 가입한 중국을 비롯하여 인도 등 신흥국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도 합의 도출을 어렵게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WTO가 일괄타결(single undertaking)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종적으로 모든 분야에 대해 동시에 합의를 추구하는 방식, 영어로 ‘Nothing is agreed, until everything is agreed’여서 한 가지 의안이라도 타결되지 않으면 전체 안건이 유보된다.

               

라운드 대안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이 활성화되고 있다     

  다자간무역협상이 어려워지자 이해를 같이하는 국가들 또는 그룹 간 무역자유화를 도모하는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이 속속 체결되고 있다. WTO 출범 당시 50건에도 못 미쳤던 세계 전체의 FTA가 2020년 현재 494건으로 늘어났다. 정부조달협정(agreement on government procurement) 등 특정 이슈에 대해 입장을 같이하는 WTO 회원국들이 체결하는 무역협정(PTA; preferential trade agreement)이나 지역무역협정(RTA; regional trade agreement)도 활성화되고 있다. 이러한 무역협정들은 다자간무역협정에 비해 보다 큰 폭의 시장개방과 민감한 통상규범의 반영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진영 또는 광범위한 이해당사국들 간에 체결된 FTA도 있다. 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는 중국과 일본이 제안한 지역무역협정으로 한・중・일과 아세안,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TPP(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의 경우 2016년 2월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12개국이 협정에 서명했으나 2017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한 후 CPTPP(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로 명칭을 변경하여 추진하고 있는데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이 다시 참여할 예정이다. 미국과 EU 간에는 TIP(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 범대서양 무역투자 동반자 협정)이 추진되고 있으나 영국의 EU 탈퇴로 주춤하고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의 FTA 현황을 보면 2004년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2021년 1월 발효된 한-영 FTA까지 17건의 FTA가 시행 중이다. 또한 RCEP, 한-이스라엘 FTA 등 4건의 FTA 협상이 타결되어 서명됐으며, 한-중-일 FTA, 한-러시아 FTA 등 6건이 협상 중에 있다.     

연도별 FTA 발효 현황         

   ※ 1995년 WTO 출범 이후 발효된 건수가 90% 이상임

   자료 : 섬유산업 FTA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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