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 철강이야기

철강은 세계은행의 지원 거부를 딛고 일어섰다

by 해원

제5화부터 제10화까지는 산업 이야기다. 철강, 조선, 자동차, 전자 순으로 발전 과정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번 이야기는 철강에 관한 것이다. 철의 원소기호는 Fe다. 원자번호는 26번이고 원자량이 55.8, 비중 7.86인 원소다. 지구를 구성하는 요소 중 중량 기준으로 가장 많이 차지하는 물질이다. 우리 몸속에도 철이 있다. 사람마다 3∼5g씩 지니고 있다. 적혈구 내 헤모글로빈의 구성 성분이 철이다. 폐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기능을 하기에 철이 없다면 바로 사망하게 된다. 따라서 사람은 반드시 철이 들어야 살 수 있다.


철의 발상지는 소아시아 아나톨리아 지방이다

인류가 철을 최초로 사용한 시기는 BC3000∼BC2000년 무렵이다. 이 시기의 철은 운철(隕鐵)이었다. 주 성분이 철과 니켈의 합금인 운석(隕石; 유성의 잔류물)으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지구라트 등에서 사용한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철을 최초로 제조하기 시작한 곳은 소아시아의 아나톨리아(Anatolia) 지방이다. BC1500년 경 아나톨리아 고원에 자리 잡은 히타이트(Hittite)제국은 철을 독점 생산하여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당시는 청동기 시대였는데 청동검이 강철검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히타이트의 제철법은 BC 13세기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BC 12세기에는 이집트로, 그리고 BC 10세기경에는 인도 등지로 퍼져 나갔다. 이후 그리스를 통해 로마 등 유럽으로 전파된 BC 8세기부터는 본격적인 철기시대에 접어들었고, 할스타트(Hallstatt; 현재 오스트리아 지방), 라텐(Rathen; 독일) 등에서 다양한 철기문화가 꽃피웠다. 한반도에는 BC 3∼4세기경에 철기가 들어왔다.

세계 철의 역사

철강은 철(鐵; iron)과 강(鋼; steel)을 아우르는 용어다. 철은 수철(水鐵) 또는 선철(銑鐵)이라 하는 무쇠로서 용광로에서 제선공정을 통해 생산된 철, 즉 쇳물을 일컫는다. 강은 무쇠를 전로에서 가공한 것이다. 정철(正鐵)이나 강철(鋼鐵)이라고도 하며, 순 우리말로는 참쇠라 부른다. 무쇠는 불순물을 함유하고 있어 쉽게 부서진다. 단단한 강철이 되려면 제강공정을 거쳐야 한다.

1970년대 중반 TV에서 방영된 만화영화 ‘마징가 Z’의 주제가 가사는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중략)…무쇠팔 무쇠다리 로케트 주먹…(후략)”로 되어 있다. 그러나 “무쇠로 만든 사람과 무쇠팔 무쇠다리”는 잘못된 표현이다. 쉽게 부서지는 무쇠팔과 무쇠다리로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 헬 박사를 물리칠 수 없기에 가사를 “강철로 만든 사람, 강철팔과 강철다리”로 바꿔야 한다.


제철은 산화철을 환원하는 과정이다

제철은 산화철인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하는 공정이다. 적철광(Fe2O3)이나 자철광(Fe3O4)을 1차 가공(소결)한 후 유연탄을 구운 코크스(탄소; C)와 함께 고로에 투입하여 가열하면 산화철에서 산소가 분리되어 이산화탄소(CO2)로 배출된다. 남은 것이 바로 철(Fe)이다. 이 쇳물을 전로에 넣어 가공하면 강이 되고, 연속주조(연주) 과정을 거쳐서 장방형의 철 덩어리인 슬래브(slab)가 생산된다. 슬래브를 가열한 후 눌러서 펴는 압연과정을 통해 두루마리 형태의 열연코일(hot coil)이 만들어진다.

열연코일을 다시 압연하거나 아연 등으로 도금하는 과정이 냉연공정이고, 여기서 최종제품인 냉연코일(cold coil)이 생산된다. 물론 열연코일이나 두꺼운 철판인 후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볼트, 나사, 와이어 등을 제조하기 위해 슬래브 대신 빌렛(billet)이나 블룸(bloom)이 중간제품으로 생산되기도 한다. 이것이 일반 제철방식인 용광로 또는 고로(高爐)법이다.

고로 제철법

고로 제철방식 외에 전기로에 고철을 녹여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전기로법도 있다. 고철을 원료로 사용하면 불순물이 완전하게 제거되지 않아 철강의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이 건설자재로 사용되는 철근이나 형강 등은 전기로법으로 생산된다.


철강은 거의 모든 산업의 중간재로 사용된다

철강제품은 크게 후판, 자동차강판 등 판재류와 형강, 철근 등의 봉형강류로 구분된다. 제강 공정에서 다양한 원소를 첨가하여 특수강을 생산하기도 한다. 쇳물에 니켈을 첨가하여 제강하면 스테인리스(stainless) 강이 되고, 실리콘을 투입하면 변압기나 전기모터의 철심에 사용되는 전기강판이 만들어진다. 크롬이나 망간을 섞으면 고강도 강이 생산된다. 철강제품별로 가격차도 크다. 스테인리스 봉강처럼 열연코일에 비해 가격이 10∼20배 비싼 제품도 있다.

철강제품의 종류

철강은 거의 모든 산업에서 중간재로 사용된다. 한국철강협회는 5년마다 우리나라의 철강 수요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2015년도 조사 결과를 보면 자동차, 조선, 전기전자, 일반기계, 조립금속 등 제조업 부문에서 전체 철강의 약 70% 수요되고, 건축과 토목 등 건설 부문에 30% 정도 소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부문에서는 자동차가 30.4%, 조선이 20.4%로 전체 철강소비에서 양대 산업이 차지한 비중은 50% 이상이다. 이들 산업에서 중간재로 사용되는 철강의 단위 소비량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철강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중형차 기준으로 엔진 등을 제외하고도 바디 제작에만 약 1톤의 자동차 강판이 소요된다. 유리창을 장착하는 부분 등을 절삭하면 절반 정도가 남게 되지만.

우리나라 철강제품의 출하구조(2015년)


우리나라는 1인당 기준 세계 최고의 철강소비국이다

국별 철강 생산 및 소비량을 비교할 때 일반적으로 슬래브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를 조강(粗鋼) 기준이라 한다. 2019년 세계 철강 생산량은 18억7,516만톤이었고, 중국이 9억9,634만톤으로 전체의 53.1%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7,140만톤을 생산하여 세계 6위에 올랐다. 우리나라의 철강 생산량은 2018년 7,220만톤을 기록한 후 감소 추세를 보였다. 특히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세계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6% 감소한 6,710만톤에 그쳤다.

철강소비량 역시 중국이 압도적인 1위를 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5위의 철강 소비국이고, 1인당 소비량은 1,082kg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1인당 연간 소비량이 1톤을 상회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철강을 중간재로 사용하는 후방산업(수요산업)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국별 철강생산 순위(2019년) 국별 철강소비 순위(2019년)

자료 : 세계철강협회


포항제철소는 대일청구권자금을 종자돈으로 설립됐다

포항제철소를 건설하기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철강산업은 외국에서 슬래브나 열연코일 등 중간재를 수입하여 가공하거나 고철을 원료로 제품을 생산하는 형태였다. 그래서 1950년대 후반부터 연산 20만∼60만톤 규모의 종합제철소 건설을 수차례 계획했으나 자금과 기술 부족으로 실패를 거듭했다.

1962∼66년이 계획기간인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서 일관제철소 건설은 핵심 사업으로 추진됐다. 1966년 12월에는 일관제철소의 건설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대(對)한 국제 제철차관단(KISA; Korea Inter- national Steel Associates)이 발족됐다. 미국, 영국, 서독, 이탈리아, 프랑스 등 5개국의 8개사가 KISA에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1968년 4월 박태준 사장 등 34명의 창설 요원이 참여한 가운데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포항제철)가 설립됐다. 포항제철은 민영화를 완료한 후 2002년 3월 포스코(POSCO)로 사명을 변경했다.

1969년 3월 세계은행은 “한국의 재정상황으로 볼 때 원리금 상환이 불가하며, 자본 및 기술집약적인 종합제철소 건설보다 기계공업 발전에 주력할 필요가 있고, 외환소요 규모에 비추어 보아 경제성이 의심이 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KISA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한국의 제철소 건설은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해체됐다. 포항제철이 성공한 이후인 1986년에 당초 보고서를 작성한 세계은행의 이코노미스트 자페(Jaffe)는 “포항제철의 성공은 믿을 수 없는 일이며, 한국이 지금도 그때와 같은 상황이라면 동일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우여곡절 끝에 당초 대일청구권자금 5억달러(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중 1억2천만달러를 초기의 종자돈(seed money)으로 삼아 연산 103만톤 규모의 포항제철소 1기 설비를 건설하고, 1973년 7월부터 쇳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81년까지 4기의 고로가 완공됐으며, 현재 포항제철소에는 260만평 부지에 용광로 5기가 가동되고 있다.


건설과정은 결연한 의지로 점철됐다

포항에 소재한 포스코역사관에는 1기 고로를 건설할 당시의 사진과 사료들이 전시돼 있다. ‘특별한 자본으로 건설하는 제철소인데 실패하면 우향우(右向右)하여 모두 영일만에 빠져 죽자’는 결연한 의지에서 건설이 시작됐다고 한다. 이를 포스코 임직원들은 ‘우향우 정신’이라 부른다. 또한 사막과 같은 환경에서 전쟁을 치르는 듯 공사를 지휘한다는 의미에서 현장사무소를 ‘롬멜하우스’로 명명했다.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정신으로 돌관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완벽시공을 추구했다. 실제로 공정이 80% 정도 진행된 발전설비 공사를 부실시공을 이유로 폭파하고 재시공한 사례는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기도 했다.

‘종이마패’로 불리는 문서도 전해진다. “포항제철에 설비공급업체 선정 권한을 전적으로 부여하고, 정치헌금이나 정부개입을 배제하며, 정치인의 리베이트 요구를 불허”한다는 것이 골자다. 박정희 대통령 면전에서 박태준 사장이 작성하고 대통령이 서명한 1쪽 짜리 문건으로서 포항제철은 건설 과정에서 이를 근거로 각종 외압을 배제할 수 있었다.

롬멜하우스 종이마패

이러한 과정을 통해 포항제철 고로 1기는 건설공기를 단축하고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연산 조강생산 톤당 건설비는 287달러로 같은 시기 건설된 경쟁업체의 건설비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이로써 장치산업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가동 첫해부터 흑자를 시현하게 됐다.


광양제철소 건설로 포스코는 세계 5위 철강사로 도약했다

국내 철강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정부는 제2제철소 건설을 추진했다. 섬진강 하구의 광양만 일부를 매립하여 총 530만평 면적의 광양제철소를 건설한 것이다. 해안을 매립한 부지에 공장을 건설했기에 공장 설계를 완료한 후 부지를 조성했다. 그래서 코크스공장→소결공장→고로→전로→연주→압연 등의 설비를 직선으로 배치하는 등 생산효율이 극대화될 수 있는 설계가 가능했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제철소가 됐다.

광양제철소는 1982년에 착공하여 1985년에 부지조성을 완료한 후 1992년까지 4기의 고로를 준공했다. 현재 5기의 고로가 가동 중이다. 해안 매립으로 조성된 부지가 침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립토(埋立土)에 모래 기둥을 심어 배수하는 샌드 드레인(sand drain) 공법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이 공법은 인천국제공항 공사에도 활용됐다.

포스코는 2019년 4,312만톤의 철강을 생산했다. 생산량 기준으로 룩셈부르크의 Arcellor Mittal(9,731만톤), 중국의 China Baowu Group(9,547만톤), 일본의 Nippon Steel Corp(5,168만톤), 중국의 HBIS Group(4,656만톤)에 이은 세계 5위의 철강사다. 또한 WSD(World Steel Dynamics)에서 매년 평가하는 철강사 경쟁력 순위에서도 2010년 이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0년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충남 당진에 소재한 (구)한보철강 부지에 일관제철소를 건설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일관제철기업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양사(兩社) 체제로 구축됐다. 현대제철은 2019년 2,156만톤의 조강을 생산하여 세계 15위의 철강회사로 부상했다. 이밖에 고철을 이용하여 철근과 형강 등을 생산하는 전기로 업체로는 동국제강, 대한제강, 한국철강 등이 있다. 또한 세아제강 등이 강관과 선재, 냉연강판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철소가 해안에 위치한 이유는 물류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일관제철소들은 하나같이 포항과 광양, 당진 등 해안에 소재하고 있다. 전기로 업체들도 부산이나 인천 등에 생산설비를 두고 있다. 철강 1톤을 생산하는데 철광석 1.5∼1.6톤, 코크스 제조용 원료탄(유연탄) 0.8톤 등 2톤 이상의 원료가 소요된다. 우리나라는 철광석과 원료탄의 거의 전량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해안에 제철소를 건설하여 생산하야 물류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제품 수출에 따른 물류비도 절감이 가능하다.

시멘트 산업 경우는 약 2톤의 석회석을 사용하여 시멘트 1톤을 생산하기에 석회석 광산 인근에 공장을 가동하고 것이 유리하다. 음료나 맥주 등 주류의 생산설비가 소비지 인근에 소재하는 이유도 물류비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의류 등 중량에 비해 가격이 비싼 제품의 경우는 물류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 노동력 확보가 용이한 대도시 인근에 공장을 둔다. 이처럼 산업별 특성에 따라 생산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공장의 입지가 달라진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입지이론(location theory)이라고 한다.


환경문제 대응이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철강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인데다 제철 시 환원제로 코크스(탄소)를 사용하고 있어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다. 2018년 우리나라 전체 산업부문에서 CO2, CH4, N2O 등 3종의 온실가스를 합산한 배출량은 3억4,979만CO2eq톤(이산화탄소환산톤)이었다. 이 중 38.2%에 해당하는 1억3,367만CO2eq톤이 철강이 주종인 1차금속 산업에서 배출됐다.

포스코는 2019년 중 8,148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여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 7억280만톤의 10%를 훨씬 넘는 국내 1위의 온실가스 배출기업이다, 2위도 2,224만톤을 배출한 제철기업인 현대제철이다. 철강산업은 온실가스 뿐만 아니라 용수사용량도 많아 자원과 에너지 순환형 생산체제 구축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제철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를 최대한 활용하여 에너지를 회수하고, 용수는 98% 재이용하고 있다. 철강슬래그, 타르 등 부산물도 99% 이상 재이용하거나 타산업의 원료로 사용된다.

포스코는 소결 및 코크스 공정을 생략하고 원료를 직접 유동로에 투입하여 쇳물을 생산하는 친환경 제철방식인 FINEX 공법을 상용화했다. FINEX 공법을 사용하면 기존의 용광로 방식에 비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3%, SOx와 NOx의 경우는 배출량이80∼90% 감소하게 된다.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려면 궁극적으로 환원제로서 탄소 대신에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법을 개발하여 적용해야 한다. 탄소환원제철법으로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나 수소환원제철법에서는 물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수소를 경제성 있게 생산하는 기술 개발이 요체인데 현재로서는 원자력을 이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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