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500원권 지폐 제시에서 출발했다
조선은 선박을 만드는 산업이다. 영어로는 shipbuilding인데 배를 건설한다는 뜻이다. 우리도 선박에 대해서는 생산한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 또는 건조(建造)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제품이 대형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품이 토지에 부착되어 있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건설산업과 특성이 유사할 수밖에 없다.
조선은 제품이 고가이고, 수요자의 주문에 의해 생산된다. 생산기간이 장기여서 불확실성이 크기에 생산기간 동안 금융, 보증, 보험 등이 요구된다. 또한 기계, 금속, 철강, 화학, 전기, 전자 등 거의 전 제조업이 후방산업인 종합 조립산업이다. 대형 구조물이고 건조 공정이 다양하여 다공종에 걸친 기능 인력이 요구되면서도 고도의 생산기술이 필요한 기술집약적 산업이다.
도크, 크레인, 중장비 등 설비와 자본이 요구되는 자본집약적 산업으로서 자본회전율이 낮다. 상선의 경우 교역량에 따른 해운업 경기에 의해 수요가 결정되며, 해양플랜트 수요는 유가와 상관관계가 높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경향을 보인다. 제품의 내구기간이 장기여서 수리조선 시장도 크게 형성돼 있다.
선박의 종류는 상선, 어선, 특수선, 군함, 해양플랜트로 대별되나 조선산업은 대부분 여객이나 화물을 운송하는 상선과 해양플랜트를 대상으로 수주 활동이 이루어진다. 어선과 군함은 대부분 자국 내에서 건조되며, 특수선 수요는 상선 등에 비해 크지 않다.
선박의 종류
선박은 종류별로 크기(톤수)에 따라 별칭이 있다. 원유 등을 운반하는 탱커의 경우 VLCC, 수에즈맥스, 아프라맥스, 파나맥스 등으로 구분한다. 수에즈맥스와 파나맥스는 각각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선박을 의미한다. 아프라맥스는 유조선의 운임지수(AFRA; average freight rate assess- ment)를 산정하는 기준 선박인 8만톤을 지칭했으나 현재는 8∼12만톤 정도로 파나맥스보다는 크고 수에즈맥스보다는 작은 크기의 유조선을 의미한다.
건화물을 수송하는 벌크선은 케이프사이즈, 파나맥스, 핸디맥스, 핸디사이즈 등으로 구분한다. 케이프사이즈는 탱커의 수에즈맥스 이상 크기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없어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우회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핸디사이즈는 비교적 소형의 벌크선이다.
선박의 대형화가 진전됨에 따라 30만톤 이상 규모의 유조선을 ULCC(ultra large crude oil carrier)라 하고, 25만톤 내외의 벌크선을 VLBC(very large bulk carrier)로 지칭한다. 특히 광물운반선의 경우 40만톤급 선박도 출현함에 따라 ULBC(ultra large bulk carrier) 또는 ULOC(ultra large ore carrier)도 등장했다. 파나마 운하가 확장됨에 따라 12만톤까지의 선박도 통과가 가능해졌는데 이 규모를 네오파나맥스(neo-panamax)로 부른다.
선박 크기별 별칭
선박의 크기를 표시하는 톤수는 여러 가지가 있다. 화물선의 경우 주로 재화중량톤수(DWT; dead weight tonnage)가 적용된다. DWT는 선박의 만재흘수선(滿載吃水線), 즉 선박이 최대한 잠길 수 있는 선까지 적재 가능한 화물의 중량을 나타낸다. 만재배수량(만재흘수선까지의 선박내부 용량)과 경하배수량(輕荷排水量; 고정된 기본적인 선체중량)과의 차이를 계산하여 산정하되 용적에 바닷물의 비중인 1.025를 곱하여 산출한다.
총톤수(GT; gross tonnage)는 선박의 밀폐된 공간 총면적에서 상갑판 상부의 공간을 차감한 용적을 톤수로 환산한 값이다. 용적 1.133m3를 1톤으로 계산한다. 선박 수주량이나 건조량을 표기할 때는 선박의 종류 및 형태별로 건조 시의 난이도를 반영한 표준선환산톤수(CGT; compensated gross tonnage)를 사용한다. CGT는 GT에 환산계수를 곱해 산출한다. 선박이 커질수록 작은 수치의 환산계수가 적용된다. 2019년 중 세계 전체의 선박 건조량이 GT 기준으로는 6,541만톤이었으나 CGT로는 3,366만톤이었다.
컨테이너선은 컨테이너 적재량 개수를 기준으로 삼는다. 길이 20피트(6.1m) 컨테이너 단위로는 TEU (twenty-feet equivalent units)로, 40피트(12.2m)의 경우는 FEU(forty-feet equivalent units)로 표시된다. 컨테이너선이 대형화됨에 따라 현재 최대 컨테이너선의 규모는 2만TEU를 상회한다.
2019년 세계 해상물동량은 118억8,700만톤으로 2000년의 63억4,700만톤 대비 1.87배 증가했다. 화물 종류별로는 철광석, 석탄 등 광물과 쌀, 밀, 옥수수와 같은 곡물이 주종인 건화물(dry bulk)의 물동량이 52억6,900만톤으로 전체의 44.3%을 점했다. 그 다음으로 석유 30억1,900만톤(25.4%), 컨테이너 18억8,200만톤(15.8%)의 순이었다. LNG와 LPG를 합한 가스 물동량은 4억6,000만톤으로 전체의 3.9%에 불과하나 2000년의 1억4,700만톤에 비해 3.1배나 급증했다. 건화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철광석의 경우 2019년 기준 전 세계 물동량이 14억5,550만톤이었는데 그 중 86.4%인 12억5,810만톤이 한・중・일 3국으로 운송됐다.
해상 물동량이 늘어나면 당연히 선박 수요는 증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운송 거리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우리나라가 중국으로부터 석탄을 수입했으나 중국이 자국 수요의 증가로 이후 수출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수입선을 호주로 변경했다.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1항차(왕복 수송기간)는 7일인데 비해 호주와는 4주가 소요된다. 그러면 선박은 4배 더 필요하게 된다. 또한 호주 석탄터미널를 이용하는 선박 수가 증가함에 따라 체선으로 인한 지연도 선박 수요의 증가 요인이 된다.
활황기에는 선박 수요의 증가로 해운 운임이 급등하게 되나 불경기에는 급락하는 현상을 보인다. 건화물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BDI(Baltic Dry Index) 지수가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한 2008∼09년의 6개월 동안 12,000에서 600으로 95%나 하락하기도 했다. 또한 2019년 말과 2020년 초에도 2400 수준에서 500 미만으로 하락했다가 2021년 9월 현재 4000 선으로 상승했다.
우스개 소리로 가격이 절반으로 하락하면 반으로 자른 고등어자반과 같다고 해서 고등어라 하고, 1/4 수준이면 갈치(구이나 조림을 위해 통상 네 토막으로 자름)로 부르는데 2008년 말의 BDI 지수처럼 1/20로 떨어지면 무엇으로 불러야할까? 필자는 생선회의 일본말인 ‘사시미’로 명명했다. 해운 운임이 단기간 동안에 고등어는 물론 갈치 수준을 넘나드는 급등락을 보이는 현상은 다반사로 발생한다.
건화물 운임지수(BDI) 변동 추이(2016.9.1∼2021.8.31)
자료 : Bloomberg Home Page
선가가 운임의 움직임에 따라 변동되는 것은 당연하다. 수익성이 달라지는 까닭에서다. 2007년 브라질에서 한국까지의 철광석 운송비가 평소의 톤당 10달러 내외에서 100달러 수준으로 크게 치솟자 벌크선 新조선가(선박 발주가격)가 상승했다. 뿐만 아니라 선령 5년의 중고 벌크선 가격이 신조선가보다도 50% 이상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기현상을 보였다. 대형 선박이라도 건조기간은 통상 1년 미만이나 당시 건조 주문이 쇄도하여 계약 후 3∼4년이 지나서야 인도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2019년의 평균 신조선가는 VLCC(32만DWT) 9,200만달러, LNG선(17.4만m3) 1억8,600만달러, 컨테이너선(13,000TEU) 1억900만달러, 벌크선(18만DWT) 4,950만달러였다. 이는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7년에 비해서는 35∼50% 하락한 수준이나 2009년 이후 약 10년 동안 신조선가는 큰 변동 없이 안정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2021년 들어서는 운임의 급상승으로 선박 수요와 가격도 상승하는 추세다.
역사적으로 세계 조선산업의 흐름을 보면 주도국이 영국에서 유럽으로, 이어서 일본을 거쳐 한국과 중국으로 이동하는 형세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에는 미국이 세계 1위를 점하기도 했다. 일본은 1956년 세계 1위의 조선국에 등극한 후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95년 이후 엔고와 함께 한국의 부상으로 상대적인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세계 조선산업에서의 한・중・일 비중
자료 :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현재 세계 주요 조선국은 한・중・일의 3국으로 이들 국가들이 세계 전체 선박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조선산업 지표로 수주량, 건조량, 수주잔량이 사용되는데 2019년 기준 세계 시장에서의 우리나라 점유율은 각각 44%, 33%, 31%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조선시장의 흐름을 보면 석유사태가 발발한 1970년대에 선박 발주가 대량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1980년대에는 선복 과잉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다가 20년 주기의 선박 대체 수요가 발생함으로써 1990년대부터 다시 호황을 구가하게 됐다. 특히, 2000년대 들어와서는 물동량 증가로 인해 선박 수요가 급증하는 현상을 보였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선박 수요는 감소된 채 2020년까지 정체 현상을 보이다가 최근 들어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960년대까지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수리조선소인 조선중공업을 인수한 한국조선공사가 소형선박을 건조해 왔다. 이 회사가 현재의 한진중공업이다. 1967년에 바지선 30척을 베트남에 수출했고, 1969년에는 참치잡이 어선 20척을 대만으로부터 수주하여 건조했다.
1970년대 들어 수출물동량이 늘어나자 계획조선의 시행과 함께 조선을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이 시기 정부는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에게 조선소 건설을 요청했다. 현대는 조선소와 유조선 2척 건조를 동시해 추진했다. 1973년 도크 완공 이전에, 그리고 건조를 시작한 지 1년 8개월 만에 1호 선박을 진수함으로써 세계 조선사에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현대조선소 건설을 위한 차관 도입과 선박 수주와 관련된 일화는 기업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다. 정주영 회장은 황량한 백사장 사진과 50만분의 1 지도만 지참하고서 우여곡절 끝에 영국 바클레이즈(Barclays) 은행으로부터 조선소 건설자금으로 4,300만달러의 차관을 도입하는데 성공했다. 현지에서 차관을 주선한 A&P 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톰 회장에게 당시 500원권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 도안을 보여주며 “우리는 이미 16세기에 이런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낸 민족이오”라고 설득했던 것이다.
또한 영국 정부의 차관공여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신조선 공급증명서가 필요했기에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도면을 가지고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 리바노스가 운영하는 생면부지의 그리스 선사로부터 26만톤급 VLCC 2척을 수주 받아 제출했다.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하여 성공한 셈이다.
이어 1976년에 미포조선,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이 설립됐으며, 1979년에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이은 세계 2위의 수주량을 달성했다. 1999∼2002년의 4년 동안 수주량 세계 1위를 기록한데 이어 2002년에는 건조량 1위국이 됐다. 조선시황이 호황으로 반전됨에 따라 1980년대 중 해운 불황으로 억제되었던 도크의 신증설이 재추진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세계 물동량 증가로 호황이 지속되고, 우리 기업들은 고부가가치화와 LNG선 등 고기술선박 건조에 주력했다. 이로써 2000년대 중후반에는 한국 업체들이 세계 1위부터 7위까지의 조선사로 등극하는 등 세계 조선시장을 석권했다. 이후 2011년까지 선박 및 해양구조물은 우리나라의 1∼2위의 수출품목이 됐다. 당시 대우해양조선, 삼성중공업 등 조선소가 소재하고 있는 거제시가 우리나라에서 1인당 지역총생산(GRDP)이 최고인 기초자치단체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함께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물동량 증가세가 둔화되고 저유가로 선박과 해양구조물 발주량이 급감함에 따라 우리나라 조선업체들은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더욱이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조선산업의 침체는 심화되다가 2021년 들어 해운 운임의 급상승과 더불어 회복세로 반전됐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경쟁력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1985년 플라자 합의에 따른 엔고 지속이 일본과의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표준도면을 사용하여 설계비를 절감하고, 대형 고효율 엔진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등 기술 향상에 힘쓴 것도 성공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대중공업이 생산하는 힘센(HiMSEN)엔진은 대표적인 선박엔진으로서 세계시장의 25%를 점한다.
도크의 회전율은 선박 건조능력을 좌우하는 요소다. 이를 세계 최고 수준인 연간 11회로 높이는 등 설비 가동률의 극대화도 추진했다. 선박 건조 시 육상에서 조립하는 블록크기를 mega에서 giga로 대형화하고, 1,000∼3,000톤 규모로 모듈화를 추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울러 floating dock의 활용과 육상 건조의 비중도 확대해 나갔다.
조선학과와 조선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전문대를 육성하여 선박 설계 및 고급 기술 인력을 적기에 공급한 점도 성공 요인의 하나다. 일본의 경우 조선산업 부진이 지속되자 조선학과를 폐지함으로써 경쟁력 약화가 가속화된 사실과 비교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또한 꾸준한 고부가가치화 추진을 통해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왔다. 일반적으로 선종별 부가가치는 크루즈선이 가장 크고, LNG선과 FPSO가 그 다음이며, 컨테이너선, 탱커, 벌크선 순이다. 우리나라는 주력 선종을 탱커와 벌크선으로부터 시작하여 컨테이너선, LNG선 및 FPSO 등 해양구조물 순으로 전환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