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지친 것도 아닌데, 모든 중간 과정을 건너뛰고 싶었다. 친구들은 정신 나간 소리라고 했다.
이미 결혼을 했고, 이미 한참 전에 낳은 애는 이미 훌륭하게 커서 제 몫을 하고 있고, 나는 직장에서 적당히 성공적인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은퇴를 눈앞에 뒀고, 이제 남은 일은 매일 무엇을 하고 지내면 행복할지 고민하는 것이길 바랐다. 더 이상 평일과 휴일을 구분하지 않고도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훌쩍 떠날 수 있길 바랐다.
그러니까, 정확히 짚자면 건강하고 넉넉한 은퇴자로 직행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젊음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거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하루하루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네가 젊기 때문에 젊음이 소중한 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누구든 거기에 영원의 표지석을 세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젊음이 장래희망일 수 없다.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내게 젊음은 짐, 땡겨쓴 빚, 종신할부금만 남은 새 상품 같았다. 모든 것이 유예된 상태 같았다.
길고 지난할 삶의 중간에 서서 앞을 바라보면, 빚쟁이들이 줄지어 손을 내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성취보다는 괴로움에 가까울 것 같았다.
결혼한 사람은 미혼을 부러워한다. 아이를 낳은 사람은 애 생기기 전에 놀아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학부모들은 이 입시 지옥이 언제 끝나느냐는 넋두리를 풀었다. 모두가 괴롭다고만 했다. 그들은 한숨을 쉬며 내가 부럽다고 했다. 나는 불행으로부터 오래도록 벗어나지 못할 미래를 본 것만 같았다.
마침내 자녀까지 결혼시킨 사람만이 정말 오랜만에 무언가로부터 조금은, 조금은 해방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앞으로 남은 나의 시간은, 적어도 그때까진 모두 구속과 속박의 반복일 것만 같았다.
그 과정을 모두 건너뛰고 싶어서, 나는 눈을 감았다 뜨면 이미 은퇴한 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 사람들은 말했다, 네가 젊어서 좋은 게 좋은 줄 모르는구나. 여전히 불행한 얼굴을 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