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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Jan 30. 2020

90년대생스럽지 않은 90년대생이 좋겠죠

직장의 나이 많은 선배들이 정확히 원하는 것은, 90년대생 같지 않은 90년대생과 일하는 것이다.




그 후배는 90년대생스럽지 않으므로, 나는 견디기 힘든 90년대생스러움에 맞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 후배는 90년대생이므로, 나는 90년대생과도 잘 지내는 '꼰대 아닌 쿨한 선배'라고 자위할 수 있다.


그렇지. 주변에 자랑할 수도 있다. 내 동년배들 모두 자기 회사의 개념 없고 정신 나간 90년대생 후배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고생하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스스럼없이 90년대생 후배와 문제없이 일하고 있으니. 남들은 다 "요즘 애들한테 욕 안 먹으려면 이거 읽어야 한다더라"라고 푸념하며 <90년생이 온다>를 입에 올릴 때, 나는 그딴 책 없이도 이미 자연스럽게 밀레니얼 세대 팀원을 잘 아우르는, 이미 능력 있고 깨어있는 관리자라고.




당신의 생각이 아직 유효하다고, 당신이 이대로 계속 방향키를 잡아도 된다고, 당신의 감은 아직 "살아있다"라고,

그런 이야기를 90년대생 후배의 입을 통해서 들으면, 매우 위안이 되기는 할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우 제대로 이해해주는, 개념이 로 박힌, 말이 통하는 90년대생일 것이다.


나머지는 젊음이 벼슬인양 떠들어대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채 위아래 말아먹은 놈들일 것이다.





"당신의 방향이 옳지 않다, 당신의 지시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을 때

화를 내기 위한 예열 단계의 "왜"나

단지 "난 한 번은 들어줬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왜"가 아닌

정말 궁금해서 묻는 "왜"를 내놓는 선배가 나는 필요했다.


"당신이 싫다"고 말한 적 없는 나는,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는다"와 "당신이 싫다"를 구별할 수 있는 선배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여차저차 지난한 과정을 거쳐, 처음에는 싫어하지 않았던 선배 몇몇을 결국 싫어하게 되기도 했다.



물론 더 좋아하게 된 선배들도 많다. @마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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