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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Oct 08. 2019

나 지금, 조금 더 어른

당신에게도 옷걸이같은 게 있을지

어른이 되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 가끔 뜬금없을 때 온다.


이를테면 전엔 못 견뎠던 사소한 짜증의 순간들.


이를테면 복잡한 행거에서 옷걸이 하나를 들었는데 엉켜 있던 다른 옷걸이 두어 개가 줄줄이 딸려 나오며 난장판이 될 때.

간신히 옷걸이 어깨에 몸을 걸치고 있던 옷들이 속절없이 흘러내려 바닥에 널브러질 때.

종으로 횡으로 갈고리를 서로 얽은 채 꼬인 옷걸이들을 붙잡아 풀자니 내 복장도 뒤엉킬 때.

이젠 하다못해 옷걸이까지 날 배신해서 세상만사 내뜻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는, 지극히 과장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 모든 것을 지배할 때.

때로 화가 나서 눈물까지 터져나왔다. 옷걸이 따위에 감정을 지배당하는 나 자신에 더 화가 나서.




어느날 저녁부터, 갑자기 그 순간 인지할 수 있었다.

옷걸이를 들어 올리는 순간,

무언가가 걸린 느낌이 들면, 나는 중얼중얼 댄다.


원래의 나였다면, 바로 이 상황에 짜증이 날 거란 걸 알고 있지. 이 엉킨 옷걸이에서 옷은 몽땅 떨어질 거야.

그러나 그냥 다시 걸면 될 일이지. 이건 그냥 옷걸이니까.

꼬인 옷걸이 때문에 인생이 꼬인다고 생각하기는 조금 억울하잖아.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그렇지? 중얼중얼 댄다.


봐봐 생각보다 짜증 나지 않지? 옷걸이에 질 순 없잖아. 원래 하려 했던 다음 일을 하자. 넘어가자. 넘어가자.


<사소한 것에 자꾸만 목숨 거는 한심함이 1 감소했습니다>






옷걸이라니, 우스꽝스럽다. 그래도 누구나 각자의 옷걸이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다.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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