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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Mar 21. 2017

'조지는' 기사

이 험한 단어의 딜레마

기사의 종류를 아주 러프하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면 아마 이런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조지는 기사/빨아주는 기사/화제성 기사.


전통적인인 기사 구분은 형식에 따라 스트레이트/르포/스케치/인터뷰/내러티브....식이다. 하지만 내용의 정체성을 놓고 구분한다면 약 80~90%의 지면기사들은 정말 거친 저 세 가지의 분류 안에 들어갈 수 있겠다. 여기에 잘 들어가지 않는 나머지의 대부분은 정보성, 소개성 기사들이다.


'조진다'는 것은

어감이 매우 좋지 않은 단어들이다. 하지만 괜히 입이 험한 이 바닥에서는 또한 매우 많이 쓰는 표현들이기도 하다. 각 분류의 유의어 후보들을 나열한다면 대략 이렇게 될 것이다. 각 단어들이 서로 같은 의미는 아니다.


-조지는 기사: 권력기관 또는 권력자나 갑질을 때리는, 새로운 사회 현상을 비판하는, 잘못을 저지른 개인을 지적하는, 무능력한 정부를 훈계하는

-빨아주는 기사: 정부 정책이나 기업 신제품(혹은 서비스)를 칭찬하는, 개인을 띄워주는, 돈 받고 쓰는, 뜬금없이 우호적인, 회사 사업주제와 관련된, 대체로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주는

-화제성 기사: 신기한, 처음 보는, 웃기거나 놀라운, 끔찍한, 감동적인 사연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 "야 이거 봤어"라고 이야기할 법한


그리고 각 단어들의 용례는 이런 식이다.


-조지는 기사

    "선배 제가 하나 알아보고 있는 아이템이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ㅇㅇㅇㅇ공단을 조지는 건데..."

    "야, 너 기사 야마가 뭐야? A를 조지는 거야? B를 조지는 거야? 둘 다 나쁘다는 거야?"

    "아니 사무관님, 팩트 틀린 건 없잖아요. 저희가 대놓고 ㅇ부를 엄청 조진 것도 아니고..."

    "내 말은, ㄱ사를 콕 집어 조지라는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ㄱ을 그냥 하나의 사례로 들라는 거지."

    "내일 조선에서 ㅇㅇ 조지는 기사 나온대는데 뭐 들은 거 없냐?"

-빨아주는 기사

    "니네 요즘 뭐 있어? 왜 그렇게 ㅇㅇ기업 빨아줘?"

    "알았어요, 발제는 하긴 하겠는데 아이 참 공무원 빨아주는 기사는 재미 없는데."

    "무작정 빨아주라는 게 아니라 이런이런 한계가 있다고 한 줄 정도 뒤에 걸쳐주라고."

    "우리가 무슨 보수꼴통신문도 아니고 여당만 빨아주는 기사를 쓰는건 아니라니까?"

-화제성 기사

    "야 저번에 내가 발제했다가 킬된 거... 한겨레에서 1톱으로 썼는데 네이버에 난리났다..."

    "별 생각없이 썼는데 사람들이 다 읽고 물어보더라구요."

    "통계나 이런게 뒷받침되는 건 아닌데, 그냥 편퇴족 이런거 워딩이 딱 재밌잖아~ 눈이 가잖아."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는데, 그 때 그 기사 때문에 지금 지자체마다 TF구성했대요."


그리고 각각의 기사가 나갔을 때 출입처에서의 반응은 이렇다

-조지는 기사: "A기자, 아니 이러면 어떻게 해..." "기자님, 이렇게 쓸거면 미리 알려라도 주시지ㅠㅠ" "다음번엔 좀 잘 좀 해줘 응?" "기자님 약간 저희가 설명을 좀 드리고 싶은데" "쓸 거면 똑바로 쓰시라고요! 편향 왜곡 보도 하지 말고!" "언론중재위에 제소할겁니다"

-빨아주는 기사: "감사합니다^^ 언제 저녁이라도 한 번"

-화제성 기사: "..."(특정 취재원이 없는 경우) "A기자, 이거 어쩌다 이렇게 커졌지?ㅎㅎ" "헐 기자님 이거 메인에 걸렸어요? 자꾸 사람들이 연락해요..." "감사합니다.." 혹은 "고맙긴 한데..."


당연히도, 자꾸만 명확한 것을 바란다

세 중 뭐가 더 파급력이 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최순실 사태와 관련된 대부분의 기사는 조지는 기사다. 빨아주는 기사는 대체로 덜 읽히는 편이지만 화제의 신제품을 소개하는 기사를 예로 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 새 스마트폰 모델같은 것 말이다. 내 기준에서는 각종 미담과 슬픈 사연도 화제성 기사에 들어간다. 화재 현장에서 한 몸 던진 소방관이나 송파 세모녀 사건같은 것을 포함해서다.


하지만 독자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정도와 상관없이 기자들은 대체로 조지는 기사들을 조금 더 높게 치려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의 치부를 들추는 것이기에 훨씬 취재하기 어렵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에 아이템 발굴 자체도 쉽지 않고, 기사가 나간 후의 영향력도 좀 더 눈에 띄는 편이다. 예를 들어 정부 부처를 조지는 기사라면 기사가 나간 뒤에 "~는 우리도 최선을 다해왔지만 이런이런 문제가 있었으며 향후 ##위원회를 만들어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음" 류의 내용이 담긴 해명자료가 나오는 식이다.


나는 최근에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기사를 하나 썼다. 정확히 말하면. '조지려다가 못 조진' 기사를 하나 썼다. 요약하자면 복지부의 복지부동한 태도 때문에 진작 진행됐어야 할 제도개선이 미적미적 이뤄지고 있어 서울시민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2월부터 준비하고 알아본 내용이었고 사례도 수집했다. 몇 번에 걸쳐서 담당자에게 팩트를 체크하고 혹시 놓친 측면은 없나 지속적으로 자료 검색도 했다.


의도와 달리 생각보다 기사는 늦어졌다. 취재가 거의 됐을때로부터 거의 2주가 미뤄졌고, 그 새 복지부는 최근 난 인사에 맞추어 일을 했다. 그동안 복지부동하며 미뤄뒀던 '그 일'도 갑자기 실무자 회의를 열어 논의하기 시작했다. 딱히 전혀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태도전환이 이뤄졌으니 누굴 조지는 결론을 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땐 딜레마에 빠진다. 기사를 킬하기도 아깝고, 의미가 제로가 된 것도 아닌데 뭐라고 결론을 내야하지? 참 이상한 일이다. 있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한 것이 문제라니. 결국 그냥 '현재 이런이런 상황입니다~~'라는 다소 맥 빠진(?) 기사를 일단 올리고 데스크가 손봐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회사어떤 기사든 명확하길 원한다. 확실히 조지거나, 확실히 빨아주거나, 확실히 눈길이 가거나.(빨아주는 기사는 겉보기엔 아니지만 내용을 잘 읽어보면 확실히 그런 내용으로 기술적으로 쓰길 원하는 경우다.) 이런 걸 충족시키지 못한 경우에는 "그래, 잘 읽었는데....그래서 어쩌라는 내용인 거야?"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번에도 전화기 너머에서 어김없이 "그래서 누가 잘못을 했다는 거야? 누가 뭘 어떻게 고쳐야한다는 거야?"라는 질문이 날아왔다. 할 수 없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이 그렇다구요"라는 얘기밖에 더 있나.


몇 번의 수정 끝에 그렇게 '애매모호한' 기사가 나갔다. 네이버에서는 딱히 반응이 없었고, 다음에서는 좀 읽힌 것 같았다. 댓글을 보니 내 의도를 정 반대로 이해한 독자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여튼 그렇게 조용히 넘어갔다. 한편으로는 '아 좀만 더 일찍 내보냈으면 기사에 훨씬 힘이 실렸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조금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누굴 조진다는 건 언제나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다. 펜은 생각보다 강한 권력이니까.


이유야 어찌됐건 누군가의 상사이고 후배일 공무원이 기사 때문에 해명하느라 진땀빼고 윗사람에게 겁나게 깨지지는 않았을테니까. 그가 물론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든데 꽤 책임이 있지만 최소한 사람 하나를 죽이지는 않았잖아?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아주 약간의 안도감도 느끼는 내 자신을 보면서 '도대체 나는 얼마나 확실한 불의(?)를 봐야 불타는 열정으로 당당하게(??) 누군가를 조질 수 있을까' 결국 그날도 또 한숨이었다.


#커버: 2017/1/3 합정동 V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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