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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Aug 26. 2019

조로(早老)하는 직업

궁금과 화가 바닥날 때

지금보다 더 막내였을 때, 한 선배가 내게 "기자는 조로(早老)하는 직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몸도 버리고 평균수명도 실제로 가장 짧은 직업군에 속하니, 중의적인 의미였을 것이다.


어쨌든 당시 그 선배의 말은 이랬다.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겠지만," 이라는 전제를 붙였던 것 같다.


"기자 생활 몇 년만 하다 보면 친구들이랑 점점 멀어질 거야. 우리가 하는 일이 그렇지. 우리는 하루 종일 정치가 어떻고 사회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만 해야 하고. 만나는 사람들도 물론 거지부터 대통령까지 다 만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어디 대표, 사장, 고위공무원 이런 사람들 만나는 게 일상이니까.
어떤 직업도 너 정도 나이에 그런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동등한 지위에서 만날 수 없어. 물론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우리랑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고, 그런 주제에 관심 갖는 사람들 별로 많지도 않고. 그러다 보면 얘기가 안 통하고. 그러다 보면 자꾸 멀어지게 되는 거지...
근데 그렇게 지내다가 10년 차쯤 넘어가면 어느 순간 모든 게 재미가 없어진다? 뭘 봐도 다 '늘 그랬던 거잖아'하는 생각이 들고. 흥미가 생기지를 않아. 직업적으로 확 늙어버리는 거야."


그 이야기를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하던 고민을, 먼저 묻지도 않았는데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우선 놀라웠다. 더구나 나는 아직 10년 차가 한참 멀었었다.




그때 난 국회를 출입했다. 함께 무리 지어 다녔던 예닐곱 명의 타사 기자들이 특히 각별했다. 처음에는 정보공유 차원에서 많이 의지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절친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아주 독특하고 끈끈한 관계로 변질됐다. 출입처가 모두 갈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계절마다 어딘가를 놀러 가고 누구네 집에서 술을 마시고 신변잡기를 나눈다. 친구의 자리를 그들이 급격하게 대신했다.


같은 물리적 공간에서 자주 마주치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매일 하는 고민들을 툭 터놓고 나눌 수 있었다는 게 무엇보다 컸다. 안이한 대학시절을 보낸 나는 입사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친구들과 사회적 이슈를 놓고 토론 같은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근황을 나누고, 누가 누구와 사귀고, 과제는 누구 것을 베낄 것이며, 어느 미용실이 머리를 잘하고, 어떤 화장품이 번지지 않는지, 대외활동은 무엇이 좋다는지 따위의 이야기를 나누는 친한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스물셋에 입사한 난 뒤, 난 그들로부터 심정적으로 너무나 급격히 떨어져 버렸다. 조금도 뜻하거나 원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취준생인데, 나는 '기자님'이었다. 내가 도대체 이 정국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누가 핵심 플레이어인지 따위를 고민하며 머리를 싸맬 때,  그들은 "우와 나 지금 티비에서 너 봤어!"하고 신기해할 뿐이었다. 내가 직장에서 사활을 걸고 고민하는 것들을 나눌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정치에 쥐뿔도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었고 그런 친구들과만 지내왔는데,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져야만 했던 관심이 내 생활을 통째로 바꿔버린 것이다.


기자 친구들과는 그런 얘기를 부담없이 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누구 의원이 어떻더라, 우리 회사는 논조를 이렇게 쓴다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이번에 여론조사 나온 것 어떻게 생각하냐, OO당도 그 이슈의 역사를 안다면 저렇게 반박하진 않을 것이다 따위의 이야기를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깔깔거리며 나눴다. 선거 결과를 놓고 내기를 할 수도 있었다. 밤중에 TV토론이나 중요한 시사프로그램을 보면서 카톡 수다도 떨 수 있었다. 그땐 정말 그게 전부처럼 느껴졌었다.




기존의 학창 시절 친구들과 있을 때 난 편안함을 느낀다. 그들과의 대화 주제는 8할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즐거움에 그친다. 다른 이야기는 잘 꺼내기 어렵다. 기자랍시고 아는 척, 잘난 척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을까, 취재 같아서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각자 일이 더 바빠서 여기에는 신경 못 써오지 않았을까 등등의 수많은 상념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딴의 이기적인 배려는, 종종 뒤돌아보면 벽돌 한 장 한 장이 되어 어느덧 높은 벽으로 쌓여있기도 했다. 그렇게 출입처를 둘러친 둥근 벽 안에 갇혀, 나는 반사되어 울리는 그저 그런 주장과 매일 되풀이되는 비슷한 사건들을 바라보며 질려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일 한지 만 6년을 눈 앞에 두고 있고, 그 선배의 이야기는 점점 현실적으로 상기된다. 올 초까지만 해도 나는 스스로에게 "자꾸 이렇게 게을러지지 말자, 출입처 사람들과 더 만나고 이야기하자"고만 되뇌었다. 지금 나의 목표는 바뀌었다. "기자 아닌 사람을 더 만나자. 기사 아닌 이야기를 더 듣자. 내 세상 밖의 삶을 더 보자"


무엇을 봐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고, 무엇을 들어도 궁금하지 않은 상태에 자꾸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나는 그 선배의 말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젖었던 것이다. 기자로서 늙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곧 인생이 통째로 염세에 빠진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알량하고 허술한 벽이 자꾸만 자라날 때마다 난 그의 말을 가지고 웅얼거린다. 조로하지 말자.




#커버: LG V30, 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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