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정수 Jul 04. 2017

크로스체크는 '진짜' 어려운 것

그리고 진짜 잘 안 되는 것ㅠㅠ

크로스체크(cross-check)는 더블체크(double check)와 어감이 다르다.

실제 용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서의 용례는 확실히 다르다.


"더블 체크해"는 내게는 "꼼꼼히 다시 한번 잘 봐봐" 정도로 느껴진다. 이를테면

"사람 이름 틀린 거 없나 꼼꼼하게 다시 봐"

"나이 똑바로 썼는지, 기관명 똑바로 썼는지 다시 봐"

"날짜, 영문명, 시간, 숫자, 금액, 다 맞는 것 같아도 다시 봐야 돼. 본문 말고 표도 다시 보고. 이거 잘못 나가면 우리 개망신이야"... 같은 경우에 주로 쓰이는 반면


"크로스체크했어?"는 내 생각에 이런 모든 말들의 집합체다.

="이쪽에서도 맞다고 했고 저쪽에서도 맞다고 했어?"

+"떨거지들, 곁가지들 아니지? 기사 내용 관련된 핵심 관계자야?"

+"니 멋대로 전달한 게 아니라 이 쪽에서 한 말을 저쪽에도 정확한 워딩으로 전달해서 나온 반응인 거지?"

+"어쨌든 모든 쪽이 다 이 보도가 나갈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거지?"

+"저 쪽에 꼬투리 잡힐(혹은 소송당할) 일 없는 거지?"

+"확실해? 책임질 수 있어?"

...한 마디로 "문제없는 팩트냐"라는 것이다.


기자생활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

을 두 가지 꼽으라면 내 입장에서 하나는 발제, 하나는 크로스체크다. 두 가지가 당연히 별개가 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각각이 정말 최고로 어려운 일들이다. 기사거리를 찾는 것, 그것도 재미있고 그럴듯하거나 아주 새로운 단독이거나 심각한 주제를 찾는 것도 정말 어렵다. 하지만 "연합에 뭐 떴는데 내용 맞는지 확인해 봐", "어디 어디에 있는 사람한테 들은 내용인데 네가 잘 확인해서 기사로 만들어봐"와 같은 지시를 내릴 때 가장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크로스체크가 안 된다'는 것이다.


전자야 모든 직장인이 겪는 어려움이다. 후자가 어려운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반드시 얘기를 들어야만 기사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가장 쉬운 상황은 어떤 사안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양쪽이 서로 우위를 선점하려고 싸우며 서로 상대방이 틀렸다고 선전하고 싶어 한다. 접촉만 할 수 있다면 그냥 물어보면 나온다. 물론 그 접촉이 쉽지 않을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가장 일반적인 상황은, 누군가가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을 때다. 억울한 사람, 자기는 잘못 없다는 사람, 뻔뻔한 사람은 목소리를 높인다. 기자를 접촉하고 싶어 한다. 하고 싶은 말도 정말 많고, 물어보면 대답도 장황하게 해준다.


문제는 이 사람들 대부분이 '피해자'이거나 '제보자'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 상대방은 드러나기 싫어하는 가해자이거나, 제보할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의 당사자다. 당연히 자기 얘기를 할리가 없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당사자들의 해명을 넣지 않고 기사를 쓴다면 무조건 '일방적이고 문제 있는 왜곡 편파보도'가 되어버리고 만다. 가해자나 당사자들만 반발하는 게 아니라, 잘 드러나지 않는 '그 사람들의 편에 선 사람들' 역시 반발한다.

또, 실제로 일방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거짓을 말할 때도, 또는 흥분된 상태에서 과장된 제보를 할 때도 꽤 많다. 무조건 팩트만 말하고 있다고 믿던 취재원에 발등 찍히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본다.


가장 어려운 것은 누구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상황이다. 제보자가 없거나 아주 몸을 사리고, 당사자는 아주 크거나 아주 탄탄한 논리로 자신의 거짓을 감싸거나 아주 찾기가 힘들다. 아직 이런 경우를 끝까지 제대로 취재해보지 못해서 노코멘트...


"개인 정보라 밝힐 수 없습니다"

오후 3시경, 데스크에게서 통신에 뜬 내용 좀 확인해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사실인지 아닌지 정도만 확인하면 될 것 같아서 담당 부서 과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팀장을 바꿔주고, 팀장은 다시 담당 조사관에게 전화를 돌려줬는데 꽤나 재밌는 얘기를 들었다. 한 스포츠 스타(?)의 아버지가 보인, 매우 위헌(??)적이고 아주 치졸하고 조금 폭력적인 모습들이었다. 세금 체납 관련된 내용이다 보니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고, 유명인이다 보니 가십성도 컸다. 단순 이슈거리에 불과하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최소한 '팔릴' 기사였다. 문제는 확인이 안 된다는 것.


해당 조사관은 아주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줬다. 정확한 일시와 기간, 정확한 액수, 과거 정확한 담당 부서, 정확한 워딩. 공무원인 데다 아주 꼼꼼해야 하는 부서에 있던 사람이라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대부분 그랬다. 하지만 관련자들에게 크로스체크를 하는 일은 너무 어려웠다.


어떤 사실을 확인할 때에 가장 뚫기 어려운 것은 "개인 정보라 알려드릴 수가 없어요"다. 옛날에야 경찰서 발로 뻥 차고 들어가 피의자, 피해자, 이름, 나이, 사건 개요, 주소, 전화번호 다 나와 있는 사건기록 다 훑어봐도 아무도 뭐라고 안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새는 '개인정보'라는 방패 하나면 기자들의 대부분의 질문을 다 막을 수 있다.

"민원 내용을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이름을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 민원이 접수된 게 맞는지 자체만 좀 확인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공문 없이는 안 됩니다)

"이 사람이 선의의 피해자도 아니고, 악질 중의 악질 이라니깐요"(국회 인사청문회라고 해도 안됩니다)

"이게 이미 다른 매체에 기사 다 뜬 건데, 저희는 그래도 한번 확인은 해봐야 할 것 같아서 전화드린 거예요. 이미 다 알려진 건데 아니면 아니라고 다시 써야 되잖아요"(가타부타 아무 말씀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모두 개인정보다. 릴레이다 릴레이.


결국 시간이 다 가서 "뒷이야기는 내일 확인하고 오늘은 팩트로만 짧게 쓰자"고 하고 넘어갔는데 잠시 뒤 타지에서 '단독'을 달고 온라인으로 쏴버렸다. 본인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직접 걸어버린 것이다. 휴, 개중에 저 한 마디는 맞나 보다 하고 아까 취재했던 내용 결국 절반은 버리고 '타지가 확인해준' 그 부분만 한 줄 걸쳐서 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진짜 재미있고 의미 있고 알려져야 하는 건 그 조사관이 해줬던 말인데!!


데스크는 아주 친절하게도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좀 더 확인해봐라" 하는데, 오늘 안된 게 내일은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 단독 달고 쓴 타지도 결국 내가 확인을 못해낸 유관(?) 기관과 담당자들에게는 아무 멘트도 얻어내지 못한 것 같았다. 기사 본문에 아무 언급이 없는 걸 보면 말이다. 아 답답하다. 진짜 어렵다. 개인정보 소중한 건 알겠고, 나도 내 개인정보가 어디 가서 마구 팔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주 하지만, 최소한 웬만큼의 모꼬지를 물고 들어가면 긴지 아닌지 정도까지는 알려줄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답답함이 솟구치고 그런다.


아 정말 어렵다. 하루 종일 전화만 하다가 크로스체크 못해서 결국 남들 다 쓴 얘기만 거의 똑같이 쓴 기사만 되고 말았다. 언제쯤이면 필요한 기관, 필요한 사람들에게 팩트체크 척척 해내서 누구도 함부로 반박 못할 기사 깔끔하게 딱 써낼 수 있을까. 크로스체크는 진짜 중요한 일이지만, 진짜 어렵다. 한쪽 얘기냐 아니냐, 는 기사를 지라시(일명 '받은 글')와 구별하는 가장 큰 핵심 요소이지만 그 점이 바로 기사 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핵심 요소이기도하다.


#커버: v10. 2017.04.30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 얘기하면 아마추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