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타임캡슐 같은 그곳
대학로. 낙산공원 가는 길 숨은 듯, 드러난 듯한 5층 건물. 이곳은 10년 전이다. 1년 전이고. 어제다.
1층에는 지인들과 왔었다. 2층 입구 쪽 자리에는 연인과 함께, 창가에는 늘 혼자 앉는다. 1층에는 커피를 내리는 소리가 난다. 바깥으로 튼 공간은 늘 자연광의 밝기다. 늘 담요가 몇 개씩 있다. 추울 때에는 담요가 필요하다. 손님들이 들어오고, 머리가 늘 조금 긴 듯한 사장은 주방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거나 설거지하거나 자연광이 들어오는 곳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무언가를 보고 있다. 그는 말이 없어 보인다.
오전 11시에 문을 열면 가끔 2층은 불이 꺼져있다. 네 방향의 벽 중 두 군데에 창이 있다. 한쪽은 발코니가 있는 쪽이라 창틀 너머로 나무와 난간이 보인다. 아주 날씨가 좋을 때에는 발코니로 나가도 좋다. 두 명이 앉아있기에 적절한 크기의 조그만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옆에는 가끔 커다란 인형 같은 것이 서있다. 혼자 일하기 좋은 창가 자리에는 노트북 하나만 놓아도 꽉 차는, 폭이 좁은 나무 탁자가 길게 놓여 있다. 키보드를 칠 때에는 손목을 공중에 들어야 한다. 왼쪽에는 정리하려고 치워놓은 듯한 그림들과 옛날 앨범들, 오른쪽에는 눈이 조금 아픈 회색 금속 스탠드가 있다. 그 가운데에는 옛날에서 온 이야기들이 있다.
모베터블루스는 지난날의 이야기들을 많이 갖고 있다. 창가 자리에 있는 사진앨범에는 네 자리 숫자들이 쓰여있다. 2006, 2012, 2012-2013, 2010... 앨범들을 펼치면 손님들이 남기고 간 그때의 온기가 가득하다. 지금 이곳에서 펼칠 수 있는 가장 옛날의 이야기는 2006년이다. 앨범을 펼치면 쪽지가 담긴 비닐들이 끈기를 잃고 부스스 떨어져 나온다. 휴지에, 영수증에, 다이어리에, 메모지에, 대학로 영화티켓에, 남겨진 가장 따뜻한 온도는 가장 옛날이다. 가장 느린 속도도 그 시절 즈음이다.
그때의 손님들은 글씨체가 독특했다. 느낌표도 소리치는 고함 대신 귀여운 강조점이었다. 느리고 느린 말투의 일기들이 가득했다. 행복을, 사랑을, 꿈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시인들과 화가들이 이곳을 지나갔나 보다. 2006년의 몇 가지는 옮겨적고 싶기도 하다. 쪽지의 주인들은 자신의 과거가 현재의 손님들과 이곳에서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아마 잘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난 어디로 가야 할까?...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 다음에 이곳에 다시 올 땐 행복해져서 왔으면 좋겠다.
-사랑합니다. 내 심장에 당신이 새겨질 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원더랜드를 꿈꾸는 내 친구 앨리스... 원더랜드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꿈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란다.... 원더랜드가 있다고 믿는 그 순간만은 우리 모두가 앨리스가 아닐까. 첫눈이 온 다음날.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 이 공간 이 사람들에 감사합니다. 세상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는데 난 그것을 느끼지 못했나 봅니다 지금 이 순간을 느낍니다.
-스타카토 같은 요즈음. 조울증 같은 요즈음. what for? did? or do? 그냥 다 털어내 버리기엔 털어낼 것이 부족한 느낌
- 오늘.. 잘 한 거 같다. 무섭고 두려웠지만 비록 눈물 보였지만.. 그래 잘했어 이제 andantino같이 로맨틱하게 할게ㅎ I'll do~ or doing! 하자.
-왜 이리 가을이 하늘이 그립지. 내 사랑은 한때의 장난인가 쾌락에 눈먼 장님인가 고민 속에 늙는다. 웃음 속에 눈물 흘린다...
-11월 28일 나 오늘 wind 마짜써ㅎㅎ 어쩔꺼야 뉴_뉴 나 bird되땨...ㅎㅎ
두 시간 정도 있으면 이 곳에서 나오는 모든 음악을 알 수 있다. 지난달에도, 지난해에도 나오던 그 음악들이다. ebony and ivory, fly to the moon, luka... 뻔하고 즐거운 재즈가 있는 그곳. 타임캡슐 같은 그곳.
#커버: V10. 2016/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