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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Dec 10. 2017

'인사이동=이직'

사람, 환경, 모든 게 다 바뀐다

일반 기업에서의 인사이동은 어떤 의미일까.

언론사에서의 인사이동 스트레스는 이직과 비슷한 수준이다. 내 생각엔.


우리는 회사로 출근을 안 하거든요...

언론사라고 뭐 대단히 다른 회사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엔' 그렇다.

평기자들은 회사로 잘 출근을 안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일하는 방식을 잘 모르는 지인들이 회사 근처를 지날 때 가끔 연락을 한다.

"ㅇㅇ야! 나 지금 광화문 지나는 중인데 너 바빠?"

"ㅇㅇ야, 나 이따 상암동 가는데 커피나 하자"

"오전에 충정로 지나는데 너 생각나더라ㅎㅎ"

슬쩍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나를 생각해준다니 너무나 고마운 일이지만, 슬프게도 난 회사에 없다. 아니, 회사에는 내 자리도 없다. 우리는 회사가 아닌 출입처로 출근을 하는 것이 일상이다.


경찰기자들은 경찰서마다 있는 조그마한 기자실을 자주 이용한다. 국회를 출입하면 국회 1층에 있는 기자실이 베이스캠프다. 부처나 기업 출입기자들은 그 건물 출입증을 찍고 안에 있는 기자실로 간다. 체육부 기자들은 당연히 경기가 열리는 곳으로 간다.

딱히 갈만한 곳이 없는 국제부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문화부, 회사 안에 있는 게 훨씬 효율적인 사설/오피니언면 담당기자들을 제외하면 우리는 모두

1. 그날 취재할 거리가 있는 현장으로 가거나

2. 별 일 없으면 출입처 기자실로 가거나

3. 그도 아니라면 그냥 전기를 쓰고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지구 상 어디든지 상관없다.


확실한 건 누구도 회사에 굳이 자주 들어가려 하지는 않는다.

물론 회사 안에 있는 공용 테이블을 써도 기사를 쓰는데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회사 사람 인터뷰할 것도 아니고, 사내 단독 취재를 할 것도 아니라면 '굳이...?'라는 생각이다.


출입처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다. 그냥 내가 담당하는 곳이다.

출입처에는 내가 앉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만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친해지거나 취재해야 하는 사람들, 알아내야 하는 자료들, 가봐야 느낄 수 있는 그곳의 분위기가 모두 출입처에 있다.

우리는 회사 사람을 거의 안 만난다. '낮 시간대에' 회사 선후배들은 대체로 사이버 공간 어디에 있다. 카톡방에 있거나 전화선 너머에 있거나 메신저에 있거나.

근무시간에 만나는 것은 출입처 사람들과 타사 기자들이 8할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한 출입처를 오래 있다 보면 점점 그 출입처와 동화되는 일도 많다.


모든 전환은 하루 안에

그렇기 때문에 출입처를 바꾸면

-일단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곳이 달라지고

-아침에 봐야 하는 뉴스도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들도 당연히 달라지고

-하루 종일 알아봐야 하는 것들도 달라지고

-자기 전에 고민해야 하는 다음날 발제도 달라지고

-써야 하는 기사, 공부해야 하는 내용도 당연히 달라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삼성 임원들을 만나며 이번 부회장단 인사 구성이 어떻게 될지, 이번 새 사업부 주가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회장이 야구단에 무슨 지원을 했는지 등등을 고민하던 사람이 당장 오늘부터 누리과정 예산 삭감 때문에 학부모들을 만나러 다녀야 하고, 관심도 없던 야구경기를 저녁마다 꼼짝도 못 하고 거대한 표에 하나하나 펜으로 점수를 체크하며 당번 서듯 봐야 하는 것이다. 사실상 이직이나 크게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더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것은 이런 인사이동이 천천히 예고하며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론사마다 인사 시즌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공통점은

"예고 없이" "어느 날 오후 회사 인트라넷에 갑자기 사령이 뜨면" "즉시 짐을 싸고" "당장 다음날부터 새 출입처로 가서" "바로 뭐 쓸지를 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대전환이 하루 안에 일어나야 한다. 다른 조직들은 한 사나흘 정도 미리 예고를 하고, 인수인계 과정을 거친 뒤, 약간의 준비가 되면 그제야 책상을 옮기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여기는 인사발령의 기준은 '바로 다음 날'일뿐더러, 자신의 인사가 어떻게 될지 사령이 뜨는 그 순간까지 누구도 확신을 할 수가 없다. 평기자뿐 아니라 차장 부장급에서도 완전히 예측불허의 인사가 날 때도 많다.


하루 단위, 한 시간 단위로 사는 조직이니 그러려니 하긴 한다. 당장 내일 기사 쓸 사람이 필요한데, 이별하고 정리할 시간을 일주일씩 주면 내일 지면은 누가 메꾸겠는가. 사정은 알지만, 그 갑작스러운 인사가 내 몫이 되면 스트레스를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다. 첫인상이라는 게 중요하듯, 막 발령받은 부서에서 취재원들에게 쉽게 보였다간 "물렁물렁, 막 다뤄도 되는 멍청이 기자" 취급받기 십상이다. 인사 초기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정말 아등바등 다들 애를 쓴다. 그래야 당장 다음날 기사를 쓰니까.


이 팀은 이슈가 뭐지,

키맨이 누구지,

누구한테 취재를 해야 하지,

이 주제 관심 없어서 평소에 기사 읽지도 않았는데,부터 시작해서,

이 팀장은 발제 취합을 어떻게 하지,

예전 부서에선 안 그랬는데 여기선 왜 부장이 차장 팀장 안 거치고 나한테 지시를 다이렉트로 꽂는 거지,

추가 근무수당은 안 받는 분위기인가, 와 같은 각종 행정적이 문제들까지...

뭐 하나 제대로 잡히는 게 없는 이 모든 것들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최대한 잽싸게 캐치해야 한다.


물론 인수인계라는 게 있긴 하다. 하지만 내 전임자도 다른 부서에서 뺑이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급한 대로 연락망 같은 건 넘겨주고 가지만, 자세한 건 그냥 그 팀 잔류멤버에게 물어보는 게 빠르다. 당장 취재원 넘겨받길 기대할 수도 없다.


확실히 기자들은 기동력이 참 뛰어나다. 뭐든지 빨리빨리, 처음엔 이 보다 더 할 수 없는 스트레스 중 하나다. 하지만 연차가 쌓여 몇 번의 인사이동을 겪고 나면 나중엔 아무 데나 꽂아놔도 금세 적응한다고 한다. 별 수 있나, 이렇게 굴리는데.


#커버: 2017. 여름 어느 날 청계천. V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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