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일 때가 좋았다고 말하고 싶은데...
2018년이 되고 나니, 제목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해 11월부로 입사 4주년을 맞았지만 모른척 하고 있었는데, 새해가 되고 나니 빼도박도 못하는 5년차가 되었다. 꽉 채워서 승진한 대리인 셈이다.
이쪽 바닥에는 승진 개념이 거의 없다. 1년을 일해도 5년을, 10년을 일해도 다 똑같은 '기자' 직함이다. 나보다 1년 선배여도 '선배', 10년 선배여도 '선배'라고 부른다. 사원 대리 과장 없이 누구나 (차장 달기 전인) 15년 안팎을 일하는 동안까지 '기자' 직함 하나만을 주는 건, 1년 더 먹고 덜 먹는다고 하는 일이 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입사하고 수습을 뗀 내게, 나보다 족히 10여년은 앞서 입사한 내 사수는 말했다. "네가 나이가 어리다고 막내라고 함부로 하는 취재원이 있으면 가만 두지 마라. 네가 회사 안에서는 막내지만, 네 취재원한테는 우리 신문을 대표하는 기자다. 네가 쓴 기사도 내가 쓴 기사도 지면에 똑같이 올라간다. 막내가 쓴 기사라고 따로 표시해주는 거 아니다. 네 책임감과 내 책임감이 다른 게 아니다."
실제로 다 맞는 말이다. 직함은 다 '기자'고, 아침마다 발제하고 발제 잡히면 기사쓰고, 일 터지면 뻗치기하는 건 선배고 후배고 할 거 없이 똑같다. 그래도 한 해 한 해가 지나가면서 역할은 조금씩 변한다. 5년차가 되기 전까지는 사건팀을 제외하면 어딜 가나 거의 무조건 막내다. 10년차부터는 슬슬 팀장을 맡게 된다.
그 중간, 5년차부터는 소위 '허리' 연차라고 불린다. 어느 부서에서나 본격적으로 제일 일 많이 하는 연차다. 웬만큼 겪어봤으니 가르칠 게 적어 손도 덜 가고, 어떤 곳에 던져놔도 금방 제 역할 하고, 아래 후배들 관리와 선배들 지시사항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말 그대로 허리다.
조금은 멍청해도 용서되는 막내 때와 달리, 이때부터는 책임감이 배가 된다. 슬슬 자기 전공을 찾아나서야 할 때다. 자기 출입처 하나 꽉 잡는 기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 동네에 물어보면 "아 ㅇㅇ신문 김 기자 잘 알지, 똑똑하지"라고 말하는 취재원들이 생겨야 한다. 선배들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밑에 있는 후배들한테 뭘 시켜야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큰 일이 터지면 이럴 때 어떤 포인트를 취재해 무엇을 발제해야 하는지도 감을 잡아야 한다. 아무거나 막 던지면 선배들이 돌인지 구슬인지 가린 다음 꿰어서 보배를 만들던 그 때가 지난 것이다.
회사에 아는 선배들이 많아지다보면 회사 안팎의 경영사정에 대해서도 슬슬 이런 저런 얘기들을 듣게 된다. 주변의 이직자들도 늘어난다. 가까운 주변에서만 벌써 5명이 기자직을 그만뒀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은 몸값을 높여 다른 회사의 기자가 됐다. 반대로 결혼하고 애엄마 애아빠가 된 몇몇 기자들은 "난 그냥 직장인처럼 열심히 다닐래" 선언해버리기도 한다.
입사 2년차에는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며 다같이 손잡고 그저 징징댔다면, 이젠 진지한 고민이다. 경력직을 찾는 이직 시장에서도 가장 몸값이 높을 때니까. 눈에 보이는 사례가 다양해지면서 선택지가 많아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정작 팔 뻗으면 손에 닿는 것은 없다.
주변에서 어떤 기대도 받지 않는 막내였을 때에는 선배들한테 혼나면 혼나나보다, 타사에 물먹으면 물 먹나보다, 하며 하루하루 큰 생각 없이 흘러가는 발생들만 챙기며 정신없이 살았다. 네 기수나 후배들이 생긴 지금은 벌써부터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신문의 미래가 없다는, 이제는 식상한 현상진단과 함께 '기자 개개인이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라는 주문이 들려온다. 기자로서의 역량은 '글쎄, 잘 모르겠는데'이지만 유튜브나 페이스북, 방송의 기명 코너 등을 통해 슬슬 인기를 쌓아가는 또래 기자들을 보면 '저것도 길이겠구나' 싶기도 하다.
최근에는 인사이동을 겪으면서 원치 않았던 부서에 배치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농반진반으로 "그만 둘까봐"하고 말해버렸다. 더 이상 머리쓰는 일용직 하고 싶지 않다고, (자영업자의 무덤이라는) 식당이나 차리겠다고. 몸 대신 진짜 머리를 써야 할 연차가 되니 머리를 그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게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다.
어느 직장에서나 5년차에 고민하는 것은 비슷할테다. 다만 승진포인트가 없고 업무차가 확연한 부서간의 인사이동, 그리고 동종업계간 이직도 활발한 이쪽 바닥의 특성상 좀 더 고민이 강화되는 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이번 인사발령을 받은 곳은 작년보다 '기레기'가 되기에도 좀 더 쉬운(?) 부서다. 한 달에 한 번 가량 썼던 작년 4년차 일기보다 분위기가 어두워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올해 기록의 목표.
#커버: V30 2018.1.12. 대학로 스타벅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