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1-자전거로 따라가는 발트해안선

에스토니아 탈린 첫 번째.

by 홍정수

헬싱키에 연계 구경하기 좋은 대표적인 외국 도시가 세 개 있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의 탈린, 스웨덴의 스톡홀름이다. 상트는 고속열차(알레그로)로 3시간 30분. 탈린은 페리(여객선)로 2시간 30분, 스톡홀름 은 비행기로 1시간(배편으로는 17시간) 걸린다.


가장 만만한 게 탈린이라 많은 사람들이 당일치기로 탈린을 다녀온다. 여객선이 많아 티켓 구하기가 쉽고, 물가가 싸고, 무엇보다 매력적인 구시가지가 있기 때문에 사진 찍을 곳이 많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탈린의 올드타운은 14세기의 오래된 건물과 도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역사가 짧은 헬싱키에 비해 중세 유럽의 진한 분위기를 풍긴다.


나는 급하게 다니기가 싫었던 데다 시간도 좀 남아서 1박 2일로 다녀왔다. 시간이 남아서 자전거를 탔더니 결과적으로는 더 만족스러웠다. 관광객들이 바글거리는 구시가지의 정보는 이미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구시가지를 약간 벗어나고 싶은 사람을 위해 내 임의대로 다녀온 북쪽 해안선 자전거 트립을 중심으로 간단히 메모했다.




사이클리스트의 천국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자국을 "사이클리스트의 천국(paradise for cyclists)"라고 자평할 정도로 자전거 타기에 어렵잖은 나라다. (by 타르투 시의 자전거클럽인 Vanta Aga의 회장 Rein Lepik 씨의 자랑스러운 표현) 지형이 평탄하고 도로가 비교적 잘 닦여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대여하기에는 구시가지 안에 있는 '시티바이크'가 가장 유명한 업체다. 자전거 대수와 종류가 상당히 많은 데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일반적인 시티바이크/MTB/트레킹 바이크는 3시간에 7유로, 24시간에 15유로로 빌릴 수 있어 핀란드에 비하면 헐값 수준. 전기자전거와 로드바이크, 픽시, 탄뎀(2인용) 등 다른 종류도 다양하다.

시티바이크 입구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사과바구니가 있었다.

시티바이크 홈페이지에서는 탈린 시내를 중심으로 한 가벼운 루트, 주변 지역까지 다녀오는 하루짜리 일정, 사나흘에서 일주일까지 에스토니아 전역으로 넓힌 일정 등 다양한 코스 정보를 웬만큼 다 얻을 수 있다. 나는 시티바이크 홈페이지에서 찾은 코스들을 구글맵으로 옮겨 저장한 뒤, GPS로 위성신호만 받으며 위치를 확인하며 다녔다. 데이터로밍을 끄고도 다닐 수 있어서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해안선 따라 국토 북쪽 끝까지

Tallinn~Viimsi 왕복 40km 5시간

수도 없이 멈추면서 아주 천천히 다녀왔다. 오후 5시경 출발해 오후 10시경 마쳤다. 정직하게 쉬지 않고 다녀온다면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할 듯. 세계 각국의 관광객으로 복작거리는 옛 도시에서 벗어나, 싱거운 발트해 냄새를 맡으며 힐링하고 싶다면 추천할만한 코스.


매력포인트가 많지만, 저녁시간에 다녀온다는 가정 하에 굳이 세 가지를 고르라면

1. 왼쪽에 해변, 오른쪽에는 빽빽한 소나무 숲을 두고 피리타 공원(Pirita Rand)을 가로지르는 구간

2. 염도 낮은 발트해에서 자라는 갈대들 너머로 보이는 해넘이

3. 돌아오는 길에 바다 건너 보이는 탈린 도심의 예쁜 야경이다.


피리타공원은 구글맵으로 최단경로 혹은 최적경로를 찾았을 때에는 지나가지 않는다. 다리를 건너 피리타시로 진입하면 거의 바로 왼편에 공원 진입하는 입구가 있는데 지도가 알려주는 경로 말고 그쪽으로 들어가면 한결 바다와 가까운, 자연 속으로 들어간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공원이라고는 하지만 길이 꽤 좋다. 중간중간 해변에서 수영을 즐기는 가족들이나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


헬싱키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북쪽의 바다는 소금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다. 절반쯤 민물인 발트해의 바다에서는 연못처럼 갈대가 자란다. 서쪽에 바다를 두고 달리는 도로이기 때문에 오후 해질녘을 택해서 라이딩을 한다면 아름다운 노을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다. 해가 넘어간 뒤에는 구도심까지 비추는 야경을 멀리서 볼 수 있다. 밤 여객선들이 들어오는 모습조차 예쁘다.


곶의 가장 끝까지 가보려고 했지만, 사유지라서 들어갈 수가 없었던 점이 아쉽다. 신축 빌라(펜션)로 보이는 예쁜 집들이 초록색 못난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었다. 어디든 가장 아름다운 곳은 독점되어있다. 타국에서 그걸 또 느끼고 살짝 서글펐다.


절반쯤 가면 갑자기 커다란 아웃렛들이 모여있는 곳이 나온다. 오후 10시 정도까지 하는 쇼핑몰이 있으니, 배가 고프거나 화장실에 가야 할 경우 거길 이용하면 편리하다.

가는 길에 박물관들도 꽤 볼 수 있다. 에스토니아 역사박물관이 겉에서 봤을 때에는 규모가 상당하다. viimsi 오픈 에어 뮤지엄이라고, 1820년대 어부의 농가를 그대로 보존한 미니 사이즈 역사의 현장도 중간에 만날 수 있다. 에스토니아 오픈 에어 뮤지엄보다는 훨씬 작아 보이지만 지나가는 길에 들러볼 만하다.




가볍게 다녀오기 좋은 미니 반도

바다 구경 코스. Paljassaare, 탈린 도심에서 왕복 15km

여기도 역시 슬렁슬렁 가서 30분쯤 놀다가 슬렁슬렁 돌아오는 바람에 2시간 조금 덜 걸렸다. 탈린 서북쪽의 작은 반도인 Paljassaare의 아름다운 해변을 구경 가는 여정이다.


이쪽 루트는 약간 교외의 주택가를 한참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바다를 보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하지만 주택가의 예쁜 집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탈린의 집들은 문이 매력포인트다. 결코 어색하게 튀지는 않지만 신경 써서 만든 아담하고 예쁜 문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상업시설들만 잔뜩 보기보다는 사람 사는 동네를 조용히 구경하며 다니는 것도 나름의 재미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써클K 주유소가 보이는 교차로에서 가장 오른쪽 도로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다소 울퉁불퉁하지만 거기만 지나면 곳 길이 좋아진다. 굉장한 바다가 있는 건 아니지만 길과 해변이 아주 조용한 데다 북쪽의 거대하고 깊은 발트해를 보러 가기 아주 가까운 경로라는 점에서 여기도 나름의 힐링 여행지다. 해변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좋다. 모래가 곱고, 근처에 작은 놀이터도 있다. 주차장이 있어 차를 가져가기도 편하고, 그냥 소풍을 가기에도 적합한 사이즈와 거리다. 나는 아침에 챙겨간 사과를 어딘가 해변가에 주저앉아서 베어 먹었다.




탈린 자전거 구경 팁

탈린은 중세 유럽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중세 유럽 스타일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조금은 질릴 수 있는 도시다. 반나절이 남는다면 서쪽, 한나절이 남는다면 동쪽의 해안선 루트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다녀온다면 이 아름다운 발틱 국가의 매력을 조금 더 농도 짙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탈린에서 자전거를 탈 경우 주의해야 할 점들, 또는 기억하면 좋을 것들은 이런 것이 있다.


탈린 구시가지를 자전거로 돌아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 것이 좋다. 커다란 돌로 닦아놓은 옛날식 도로이기 때문에 1분만 타봐도 온 몸의 관절이 요동치고 실시간 뇌진탕을 느낄 수 있다. 길도 좁고 관광객도 많다. 실제로 거기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시티바이크 가게에서 자전거를 빌려 나오는 길이거나 반납하러 가는 길인 사람들밖에 없다. 자전거와 구두는 구시가지 구경할 때 절대 금지다.


탈린 중심가 말고 외곽지역으로 조금 나갈 경우, 자전거도로/인도(보통 전용도로가 아니라 겸용으로 표시되어있음)가 언제 끝나는지 반드시 주의하며 다녀야 한다! 대부분 도로가 좁아서 그런지, 길을 가다 보면 보도가 뚝 끊기는 경우가 있다. 그럼 의도치 않게 차도로 급 진입해 역주행을 하게 될 수도 있어 매우 조심해야 한다. 자전거길을 타다가 횡단보도 표시가 나온다면 거의 셋 중 하나다. 버스정류장 근처 거나, 주변에 차가 진입해야 하는 건물이 있거나, 아니면 도로가 여기에서 끝나니 저쪽으로 건너가라는 의미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지 말고 꼭 이걸 기억하며 다녀야 한다. 횡단보도가 보일 경우 십중팔구는 거기에서 건너야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구글맵 자전거 도로 지도가 지원이 안 된다. 다니는데 큰 지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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