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생각하는 무색, 무취, 무미의 술이 있다. 보리, 호밀, 감자 등을 베이스로 깨끗한 맛을 강조하는 술, 주로 칵테일의 베이스가 되는 보드카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인들의 대부분이 보드카는 러시아의 술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물론 맞는 부분도 있지만, 러시아만의 술은 아니다. 소비는 미국이 제일 많이 하며, 한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보드카는 스웨덴산이다. 그렇다면 보드카는 어느 나라 술일까? 그리고 왜 무색, 무취, 무미를 추구했을까?
보드카에 대한 제조과정은 이렇다. 먼저 곡물 등을 가지고 발효주를 만들고, 이후 연속식 증류기란 것을 200여 번을 증류, 순도 높은 알코올을 뽑아낸다. 그리고 활성탄 여과를 통해 맛과 향을 모두 제거해 버린다. 그래서 무색, 무취, 무미의 술이 나온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알코올에 물을 넣고 희석을 한다. 한마디로 알코올에 물만 탄 순수한 술(?) 일 수 있다. (우리의 소주는 보드카와 달리 감미료를 넣는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보드카의 정의다. 하지만 보드카의 모습은 이것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보드카의 어원은' Water'?
보드카의 원조는 러시아보다는 폴란드라고 보는 경향이 많다. 1405년, 폴란드의 산도메슈(Sandomierz)란 지역의 법원 공문서에 최초로 보드카를 언급한 단어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보드카는 음료보다는 주로 약용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중세 유럽의 흑사병이 유행할 때, 이 보드카가 많이 사용되는데, 그래서 당시 보드카는 생명의 물이라고 불렸고, 여기서 폴란드어로 물을 뜻하는 보다(woda)라는 단어가 변하여 지금의 보드카(Vodka)라는 단어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스웨덴에서 만드는 엡솔루트 보드카. 원래 소독약으로 출발한 보드카의 원형을 나타내기 위해 약병 모양으로 디자인을 추구했다.
러시아에서의 보드카 어원도 실은 맥락을 같이 한다. 러시아어로 생명의 물은 지즈데냐 보다(Zhizenennia Voda). 여기서 보다(Vоda)만 따온 것이 보드카가 되었다. 즉, 폴란드나 러시아 모두 보드카의 어원은 물인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 보드카라는 단어는 언어학적으로도 워터(Water)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부분이다.
워터(Water)는 옛 인도유럽어족으로, '적시다', '흐르다'는 의미의 'awed'에서 유래를 한다. 여기서 'wedor'가 왔고, 폴란드어로 'woda'가, 러시아어로 'voda'가 온 것이다. 즉, 보드카(Vodka)의 어원은 워터(Water)로도 이어지는 것이다.
러시아가 보드카의 종주국이 된 이유
러시아가 보드카의 대표적인 종주국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 최초로 목탄을 이용해서 보다 깨끗한 증류주를 여과하는 기술을 개발해 냈기 때문이다. 이때가 바로 1870년, 그리고 1886년, 이 보드카는 러시아 황실 전용의 보드카가 되면서 러시아 전역에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보드카인'스미노프'라는 제품이다. 다만, 황실에 납품한다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바로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고, 스미노프 관계자는 황실과 관계가 좋다는 이유로 한 명씩 처형을 당한다. 이에 당시 오너였던 우라지미르 스미노프가 프랑스에 망명하게 되었고, 파리에서 목탄을 사용한 깨끗한 보드카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1933년 미국에 망명하고 있던 루돌프 퀴넷이라는 러시아계 미국인에게 팔리면서 날개를 피게 된다. 미국 시장에서 칵테일 제조용으로 어마어마하게 팔린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은 세계 최대의 보드카 시장을 가지게 되고, 무색, 무취, 무미라는 보드카의 개념을 정리했다. 이러한 개성으로 칵테일 제조에 가장 적합한 술이라는 콘셉트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다.
스미노프. 한국에서는 이천 공장에서 만든다.
참고로 현재 스미노프 브랜드는 영국이 가지고 있다. 1987년, 영국의 그랜드 메트로폴리탄이라는 회사가 스미노프를 인수를 하고, 1997년 흑맥주로 유명한 기네스사와 합병, 디아지오라는 거대 주류회사가 탄생을 하게 된다. 다만, 한국에서 판매되는 것은 경기도 이천 디아지오 코리아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보드카의 원조와 원료 논쟁
1977년 폴란드에서 보드카의 기원과 보드카라는 명칭의 독점적 사용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법정투쟁의 대상국은 소련. 당시 소련에서는 '보드카의 역사'라를 책을 서술, 보드카의 기원을 15세기의 러시아라고 주장한 것이다. 폴란드는 최초의 보드카 기록이 러시아보다 앞서다는 정확한 증명에 실패, 1982년에 국제조정 재판소에서는 보드카의 기원을 러시아로 인정해버린다. 그래서 러시아가 보드카의 원조이며, 선전의 권리를 가져가게 된 것이다.
보드카 원조의 논쟁도 있었지만, 원료에 대한 논쟁도 이어졌다. 폴란드, 스웨덴 등은 곡물 및 감자 원료 이외에는 보드카라고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고, 영국과 네덜란드 등은 사탕수수, 포도로 만든 것도 보드카라고 주장했다.
약 5년간의 논쟁이 이어졌는데, 2007년 12월 17일, 원재료를 명기하는 것에 의해 보드카로 인정한다라는 결론에 합의가 되었다. 이로써 포도 보드카, 사과 보드카 등 주원료를 기입한 보드카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꼭 활성탄 등을 사용해서 여과하지 않아도 된다. 국가에 따라서는 이러한 여과도 기준에 넣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그냥 증류주를 뜻하는 것이 보드카인 것이다.
보드카를 만드는 나라, 보드카 벨트
현재 러시아와 폴란드를 중심으로 보드카를 만드는 나라 그룹을 보드카 벨트라고 부른다. 발트해 주변의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과 구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최근에는 미국, 프랑스, 캐나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몽골과 일본에서도 만들어진다. 몽골의 경우 마유(馬乳)를 가지고 만들어서 마유 보드카라고 불리고 있다. 한편 1975년 미국의 보드카 소비량이 위스키 소비량을 웃돌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증류주로 자리매김한다. 다만 다른 것은 미국은 칵테일용, 러시아는 여전히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문화였다.
보드카를 얼리는 이유는?
러시아에서는 냉장고에 보드카를 얼려 마시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단순히 맛이 좋아진다는 것보다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실은 알코올은 수분에 비해 -114도로 어마어마하게 낮다. 한마디로 알코올 도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술이 잘 얼지 않는다. 쉽게 어는 제품을 수록 알코올 도수가 낮고 가격도 낮다. 즉, 불량품을 구분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얼려벼린 보드카. 하지만 술 자체는 얼지 않는다. 거의 젤리와 같은 수준 정도
소련을 무너트린 것은 보드카 금주령?
구소련연방 시대, 경제의 정체와 정치, 언론활동의 부자유에 따른 불만으로부터 다수의 국민이 보드카 중독에 빠진 일이 발행한다. 그래서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일환으로 보드카의 제조를 줄인다. 하지만 국민은 보드카를 더욱 원했고, 자택에서 밀조를 한 보드카를 만들기 시작, 결과적으로 효과도 못 내고 귀중한 국가 세금마저도 떨어져, 구소련은 재정난에 휩싸이게 된다. 한마디로, 구 소련을 무너트린 것은 보드카를 일시적으로 못 마시게 한 부분도 큰 요인이었다.
보드카를 즐기는 러시아인의 평균 수명은?
미국인의 경우 보드카를 다양한 향료와 탄산수와 희석한 칵테일 형태로 즐겼지만 러시아인의 경우 무작정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러시아에서는 보드카의 섭취가 사회문제가 될 정도였다. 한때 보드카 섭취한 한창일 때는 성인 남성의 평균 수명이 56세 전후였다. 이후 보드카 섭취를 줄이는 운동을 하며 최근에는 65세까지 올라간 상황. 그래도 우리나라에 비해 여전히 평균수명이 10세 이상 낮은 것이 바로 러시아다.
'서울 드라이 보드카'를 기대하며
결과적으로 보드카는 동유럽과 북유럽을 중심으로 한 증류주라고 볼 수 있다. 꼭 곡물로도 과일로도 만들 수 있는 술이다. 그리고 꼭 러시아 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도 보드카가 출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품명은 서울 드라이 보드카. 이 땅의 농산물로 우리만의 보드카를 만든다면 이 역시 멋진 일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