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명산과 함께 즐기는 양조장 투어
본격적인 단풍의 계절인 10월이 돌아왔다. 9월 27일 설악산의 첫 단풍을 시작으로 10월 초의 오대산과 치악산, 월악산과 속리산은 10월 중순에 시작을 하며, 10월 말의 한라산을 끝으로 붉게 물들었던 대부분의 단풍은 낙엽이 되어버리고 만다. 오직 10월에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계절감과 매력이 있는 가을의 단풍 여행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가을 단풍을 즐기는 곳곳마다 지역의 농산물로 술을 빚는 양조장이 있다. 그리고 다양한 체험도 함께 하는 곳이다.
해남 두륜산과 아름다운 정원의 해창 주조장
해남의 두륜산은 한국에서 가장 늦게까지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무려 10월 말에 시작, 11월 11일에 끝난다. 제주도의 한라산보다 10일이나 늦게 지는 것이다. 두륜산은 해발 700미터의 산으로 그리 높지는 않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가면 서해안과 남해안의 다도해의 경관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1000년 사찰 대흥사가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운 서산대사의 서산대사가 의발(衣鉢, 가사와 연우)등 유물이 있는 것부터 추사 김정희가 아직 추사체를 완성하기 이전의 그의 필체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매표소에서 절까지 이어지는 나무숲 사이로 가을 햇살을 만끽할 수 있는 매력도 있다. 두륜산 정상에 쉽게 올라가고 싶다면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된다. 1.6km 선로를 8분간(편도)로 이동하는데 정상에서 느끼는 쾌적함은 물론 가는 여정조차 아름답다.
해창 주조장은 이곳에서 약 차로 20분 거리의 해창리에 위치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양조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곳은 1927년 일본인 시바타 히코헤이라는 인물에 의해 지어졌고, 이후에 오병인, 박리아 부부가 서울에서 귀촌하면서 이곳에서 막걸리를 빚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40여 종의 수목이 사시사철 자태를 뽐내며 있는 곳이다. 600년이 넘는 배롱나무, 우물가에 있는 체리나무, 남도답게 석류도 이곳에서 열매를 맺는다.
정원 한가운데는 연못이 있으며, 가장 매력 있는 것은 사시사철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푸른 이끼들이다. 예약을 통해 방문하면 해창 주조장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양조장 견학을 함께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막걸리는 무인공감미료 막걸리인 해창 막걸리. 6도, 9도, 12도의 3종류로 분류되는 이 막걸리는 드라이한 맛으로 막걸리 마니아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기도 하다. 주변에 유명한 식당으로는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도 등장한 천일식당이 있다. 떡갈비와 불고기가 유명한 곳으로 남도 특유의 장맛이 있는 맛깔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장성 백암산과 청산녹수
한국에서 가장 단풍길이 아름답다고 불리는 곳이 있다. 입구에서부터 형형색색의 색을 가진 단풍나무를 만날 수 있는 곳, 바로 내장산이다. 내장산은 내장사까지 올라가는 약 3킬로의 길이 유명한데 이 시기에는 어마어마하게 사람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내장산은 같은 산임에도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름은 바로 백암산. 전북 정읍에서 출발해서 내장사로 들어가면 내장산, 그리고 전남 장성에서 출발하면 백암산이 되는 것이다.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듯하다는 평가를 할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며, 무엇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촬영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백양사가 유명하다.
특히 연못에 비친 가을 하늘과 웅장한 누각인 쌍계루, 멀리 보이는 백암산 정상의 하얀 암석은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입구에서 시작해 백양사까지 가는 도보 30분 거리의 백양사의 숲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가장 걷고 싶은 길'로 선정된 길로 어린아이의 조막손처럼 작고 색이 아름다운 애기단풍을 즐길 수 있는 최적지 중 하나다. 백암산의 최적의 단풍 시기는 10월 17일~11월3일까지다.
이곳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같은 장성의 청산녹수라는 양조장이 있다. 장성호가 선명하게 보이고 황룡강이 흐르는 이곳에 10년간 폐교로 방치된 장성군 농촌학교를 개조해 만든 양조장이다. 이곳에서 막걸리를 빚는 사람은 장인도 기술자도 아니다. 전남대학교 생명화학공학부 김진만 교수가 이곳에서 직접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학교의 복도는 견학로이며, 사무실은 마치 교무실 같은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양조장이 아닌 '학교'와 같은 느낌 그대로이다.
이곳에서 나오는 술은 특별하다. 정철의 사미인곡을 모티브로 장성의 유기농 쌀과 아카시아 꿀을 배합한 사미인주 막걸리, 그리고 장성의 편백나무 숲을 이미지화한 무감미료 막걸리 산소 막걸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체험은 가벼운 양조장 체험부터 술 거르기, 술 빚기 등 다양하게 할 수 있다. 특히 체험 중심의 다른 양조장과 달리 심도 깊은 교육을 진행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론과 실습을 병행한 것은 물론 다양한 전통 누룩에 대한 교육, 최고급 청주 빚기 및 증류식 소주 만들기까지 다양한 카리큘럼이 준비된 곳이기도 하다.
단양 소백산과 대강 양조장
조선 후기 천문 지리학자 남사고는 소백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웅장하고 살기가 없으며 사람을 살릴 산이다". 요즘 말로 힐링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겨울이 되면 흰 눈으로 하얀 머리를 올린 듯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의 소백산은 상당히 높은 해발고도(1439m)에도 불구하고 능선이 부드러워 트래킹 코스로도 유명하다. 특히 이 능선으로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초원, 가을에는 단풍과 겨울에는 눈 구경으로 사시사철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최적 단풍시기는 10월 10일~20일 사이다.
단양의 소백산 입구에서 30분 정도 차로 떨어진 곳이 바로 대강 양조장이다. 4대째 100년의 역사로 이어지는 이 양조장은 오직 항아리만 사용해서 막걸리를 빚는 곳으로 유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단양을 방문했을 때, 이곳의 막걸리를 6잔 연속 마셨다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다. 이곳에서 가장 흥미로운 콘텐츠는 막걸리 밀주 금지 영상. 1970년대로 보이는 이 영상에는 50년 전의 서민적인 막걸리 문화 및 당시 막걸리가 주는 사회적 역할에 대해 그대로 나와 있다. 그 외 1930년대 사용했던 오래된 책상과 현미경, 80년대 초반에 나온 막걸리 전용 유리병과 막걸리 전용 플라스틱 말통, 그리고 막걸리 홀더는 2030 세대에는 레트로 감성을 4050 세대에는 추억을 느낄 수 있는 매력 그대로를 가지고 있다. 체험은 단순한 양조장 견학부터 누룩 밟기, 막걸리 짜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단양 팔경 제5경 사인남과 차로 겨우 5분 거리에 있으며, 이곳 특유의 음식인 마늘정식 및 쏘가리 매운탕 등과 함께 맛보는 것도 추천해본다.
이번 가을에는 특별한 양조장 투어를
한국의 여행 패턴이 세분화되고 있다. 예전에는 단순한 등산, 단풍이었다면 특별한 체험 및 음식이 주요 여행 콘텐츠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지역별로 다른 막걸리 및 전통주 양조장 투어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늘 와인과 위스키 등 서양의 술에만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우리 술에도 경험치로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기회되면 이번 단풍과 더불어 이런 양조장 여행을 진행해보기를 추천해 보고 싶다. 단언하건데 양조장은 이시대와 정말 잘 맞는 콘텐츠다. 바로 레트로가 있고, 워라벨, 소확행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