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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Sep 24. 2019

막걸리, 디자인을 입다

크래프트 막걸리의 세계

수년 전, 이태원, 경리단길을 중심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주종이 있다. 기존의 대기업이 가진 획일성과 대규모 자본이라는 권위를 탈피한 술, 그리고 지역의 문화와 개성 있는 모습을 담은 크래프트 맥주가 그 주인공이었다.

초기에 3,4곳으로 출발한 크래프트 맥주는 이제는 전국구로 확산, 전국에 120여 곳의 맥주 양조장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 내고 있다. 여기에 외국계 맥주 제조사와의 제휴 및 대기업 자본 등의 투자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도 현재 크래프트 맥주 업계의 상황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권위와 자본을 탈피한 독특한 제품이 크래프트 맥주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바로 전통의 막걸리 산업에도 퍼지고 있다는 부분이다. 막걸리에 대한 대중적인 이미지는 고착화되어 있다. 농촌에서 사발에 페트병이나 말통으로 마시던 술. 파전과 두부김치 등으로 대변되는 모습이 우리가 아는 막걸리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막걸리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가족애를 품은 도깨비 막걸리

지난 7월, 인스타에는 독특한 막걸리 제품이 하나 올라왔다. 제품명은 도깨비 막걸리. 기존의 막걸리가 가진 묵직한 모습보다는 밝고 화사하며 깜찍한 디자인의 제품이었다. 아직은 출시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문이 쇄도했다. 사진만 보고도 맛을 보고 싶게 하는 도깨비와 같은 마성이 있었던 것일까?

이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김정대와 김진경 부부. 원래 순수미술과 서양화를 전공하던 예술가 겸 디자이너였다. 10년 전부터 취미로 막걸리와 맥주를 만들다가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 단양으로 귀촌을 하여 술을 빚게 된 독특한 케이스다.


부부가 꼭 막걸리를 빚기 위해 귀촌한 것은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자녀들의 교육이었다. 늘 획일적인 도시의 교육에 가치관이 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 결국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귀촌을 결심했다. 때마침 단양에서 초등학생을 위한 농촌유학 학교가 열렸다. 약 2주간의 교육을 진행했는데, 아이가 농촌이 좋다고 서울로 올라오기 싫다고 한 것이다. 이에 부부는 귀촌을 결심하고 3년 전부터 서울에서 단양에서 거주하기로 하고, 5년 전부터 작은 집을 짓과 왕래를 하게 된다.


도깨비 양조장의 김정대 이사. 원래 순수미술을 전공한 예술가 출신이다.


하지만 자녀교육을 위해 귀촌은 결정했지만, 문제는 생활이었다. 도시에서만큼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부부는 늘 즐겨 만들던 막걸리가 생각이 났다. 5년 전부터 단양에서 작은 농지로 농사를 진행하다 보니 어느덧 농민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농민이 되다 보니 지역의 농산물로 직접 빚은 전통주는 통신판매가 가능하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오게 된 술이 바로 도깨비 막걸리였다.


부부가 모두 화가 출신인 만큼 자연스럽게 제품 디자인은 외주를 줄 필요가 없었다. 100% 가족들의 모든 생각을 담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막걸리의 변화무쌍한 모습에 착안, 전통문화인 도깨비를 회화한 제품을 만들었다.

다만, 전통적인 위엄 있고 공포스러운 도깨비 모습은 싫었다. 막걸리는 권위가 아닌 친근하다는 것이 중요 포인트였다. 그래서 귀엽고 다가갈 수 있는 디자인에 착안했다. 마치 도깨비지만 도깨비가 아닌 듯한 모습으로 말이다. 그래서 디자인에는 실크 스크린 판화 로제 작했다.


100% 무감미료 제천의 쌀로 빚어지는 막걸리 도깨비 막걸리

도깨비 막걸리는 100% 무감미료에 전통 누룩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발효 및 숙성기간은 15일 정도로, 제품에 따라 신선함과 묵직함 모두를 추구한다. 주요 원료인 쌀은 단양이 아닌 제천 쌀을 사용한다. 단양이 소백산이 지나가는 산촌이어서 농지가 부족, 옆 마을 제천의 재료를 이용하는 것이다. 제품 자체는 7도, 9도, 11도 세종류다. 가볍게 맥주처럼 청량감을 추구하는 7도 제품과 막걸리 본연의 맛을 담은 9도, 그리고 묵직하며 드라이한 맛을 추구하는 11도다.

앞으로는 이러한 막걸리에 맑은 술 약주와 이러한 원액을 증류한 증류주도 준비 중이다. 아직 양조장 개방은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찾아오는 고객들에게는 간단한 설명은 진행한다. 본격적인 양조장 체험 개방은 연말이나 내년 초쯤 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강 주조 팀원


진정한 서울 술 '나루 생막걸리'

쌀 하면 주로 전라북도의 호남평야, 경기도의 김포평야 등을 생각하지만 의외로 서울에서도 쌀이 나온다. 그리고 그 쌀만을 고집하며 술을 만드는 곳이 있는데 바로 한강 주조다. 고성용 대표(37)를 비롯, 이상욱(37), 정덕영(31), 이한순(30) 등 30대의 젊은 피가 4명이 모여 만드는 막걸리다. 서울 쌀은 강서구에서 재배되는 경복궁 쌀.  사용하는 이유는 오직 서울의 술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쌀의 품질이 정말 좋다. 알고 보면 김포평야에서 재배되는 쌀이기 때문이다. 제품 이름이 나루인 이유는 바로 전통과 트렌디를 나루터를 통해 잇고 싶기 때문. 그래서 양조장도 최근 서울의 핫플레이스인 성수동에 마련했다. 한강 주조라는 사명도 한강이 서울을 상징하기에 지은 이름이다. 나루 생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6도로 일반 막걸리와 비슷하다. 막걸리 풍미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일반 막걸리에 비해 쌀량을 2배로 했다. 덕분에 이러한 맛으로 인공 감미료를 넣치않고도 풍부한 맛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술아 핸드메이드 막걸리

술아 핸드메이드 막걸리

디자인적으로는 거의 크래프트 막걸리의 원조라고 말할 수 있는 제품이다. 디자인 자체가 화장품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여주의 최고급 햇찹쌀만을 사용해서 빚는 제품으로 알코올 도수는 8도다. 해당 제품의 주인공은 강진희 대표. 서울 가양주 연구소에서 전통주 빚기에 매진한 그녀는 5년 전, 여주에 술아원이라는 작은 양조장을 세웠다. 그리고 여주의 가치와 맛을 알리기 위해 여주의 쌀로만 빚은 핸드메이드 제품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양조장 출하 날에 따라 다른 맛을 가지는 것을 아예 슬로건으로 내놓는다. 출아 10일까지는 달콤한 술맛을 즐길 수 있으며, 20일까지는 탄산의 청량감과 새콤함과 달콤함을, 30일까지는 단맛이 사라진 드라이한 맛을 즐길 수 있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발효의 과정을 그대로 설명한 셈. 당분이 알코올로 바뀌면서 탄산이 나오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단맛이 사라지는데, 그것을 제품의 콘텐츠로 만들어 낸 것이다.

가양주 연구소의 류인수 소장은 다양한 주류의 트렌드 중에서 이제 우리 전통주로 오고 있는 모습이라며, 이렇게 독특한 우리 술 산업이 창업과 고용으로 이어지며 그리고 전체적인 우리 술 산업의 주요 콘텐츠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였다.








딸기 스파클링 산소 막걸리

딸기 스파클링 산소 막걸리

전남 장성의 특산품인 딸기를 이용한 막걸리다. 장성의 대표 딸기 품종인 설향을  저온에서 쌀과 함께 저온 발효한 제품으로 짜릿한 탄산감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품명이 산소인 이유는 바로 이 장성에 편백나무 숲이 있기 때문. 이 편백숲의 맑은 공기를 담았다는 의미로 산소 막걸리로 지어졌다. 역시 장성산 찹쌀과 멥쌀을 블랜딩 하여 빚어지며, 짜릿한 탄산감은 병내 2차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다. 스파클링 와인과 유사한 개념이다. 전 과정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진행하며, 1주일에 100병 정도만 한정 생산하고 있으며 알코올 도수는 6.8%다.







멈추지 않는 전통, 그것이 크래프트 막걸리

혹자는 전통은 옛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것이 소중하다고 하며, 때로는 맹목적으로 강요하는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전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현재로도 이어저야 하는 부분이다. 그래야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것이며, 그렇게 전통은 발전을 한다.


이번에 소개한 크래프트 막걸리는 내용물은 모두 무인공감미료 제품과 지역의 쌀만을 사용한 제품으로 오히려 기존의 막걸리보다 더욱 지역성을 가지고 있으며, 농업이 근간이 되는 전통주의 모습을 더욱 드러내는 술이다. 겉모습만 현대로 이어질 뿐, 내용물은 오히려  더 전통에 가깝다. 한마디로 전통을 더욱 발전시킨 우리 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을 깨고, 그 안에 농업의 가치를 넣은 이러한 크래프트 막걸리가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소통도 활발해지고, 저렴하고 획일적이라는 우리 술에 대한 인식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까지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전통은 강요해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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