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재채기나 콧물이 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먹으면 낫는다는 이야기다. 도수가 높은 소주는 몸을 따듯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화끈거리는 고춧가루 역시 후끈거리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면 정말로 감기가 나을까? 아쉽게도 이 민간요법은 틀렸다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대부분이다. 순간적으로 체온은 오를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오히려 몸을 차갑게 한다는 것이다.
혈액순환은 좋게 하는 알코올, 순간적으로 몸은 따뜻해지나 이내 더 낮아져
알코올은 체내에 들어가면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 이때 혈액이 내부 기관에서 피부 표면으로 올라오며 일시적으로 체온이 높아지는 현상은 확실히 있다. 하지만 이렇게 올라온 몸의 열기는 피부를 통해 바로 빠져나가고, 수분과 함께 빠져나간 몸의 체온은 오히려 더 낮아진다. 몸을 따뜻하게 하자고 마신 술이 결국 더욱 차갑게 만드는 것이다. 또 알코올은 간에서 분해(산화)가 되는데, 이때 간의 피로가 축척되어 체력 조차 떨어진다. 감기는 면역체계를 회복시켜줘야 낫는 병인데 오히려 음주는 역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또 알코올 섭취는 일시적으로는 잠이 들게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잠을 방해한다. 이뇨작용을 도와 화장실에도 자주 가게 만들며, 뇌파를 수면 중에 증가시키고, 신체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렘수면 또한 차단한다. 출처 : 헬스경향(http://www.k-health.com)
고추 속에 있는 캡사이신 성분 역시 순간 몸을 따뜻하게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몸의 온점 수치를 낮춰 낮은 온도에도 뜨거움을 느끼게 해 주는 것뿐이다. 결국 낮은 온도에서도 땀이 나니 결과적으로 체온은 오히려 더 빼앗긴다. 결국, 겨울철 고춧가루를 탄 소주는 저체온증을 유발할 뿐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등장하는 고춧가루와 소주
고추와 소주를 같이 마시는 문헌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처음으로 나온다. 바로 고추에 소주를 타서 주막에서 팔기도 하는데, 이를 먹고 죽는 사람이 많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물론 당시의 고추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지봉유설에 고추는 엄청 독하다는 대독(大毒)이라고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품종도 개량하여 덜 맵고 단맛도 풍부한 고추가 많지만 당시에는 더욱 자극적이었을 것이다. 또, 소주 역시 지금의 17도 전후의 제품보다는 증류한 원액으로 50도가 넘는 술이 많았으리라 예상한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 소주에 고춧가루를 넣어 마시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러시아의 후추 보드카, 일본의 달걀술
러시아에서는 보드카에 후추를 타서 마시곤 하며, 일본은 따뜻한 청주에 달걀을 넣은 달걀술을 마신다. 후추 역시 일시적으로 체온은 상승시키지만 결과적으로는 고추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근본적인 치료는 잘 안되는 것이다. 다만, 일본의 달걀술은 감기 치료는 아니지만 예방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달걀의 단백질과 청주 속 쌀의 아미노산이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역시 추워지는 날에는 마셔도 좋지만 감기에 걸린 날에는 마시지 말라고 권한다. 또 감기약을 먹고 있을 때는 절대로 피해야 한다고 주의한다. 약과 알코올을 함께 섭취하면 약용 기능이 훨씬 빨라져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뱅쇼와 한국의 모주
그렇다면 감기에 좋은 술은 없을까? 유사한 음료는 있다. 바로 프랑스의 따뜻한 와인 '뱅쇼(Vin Chaud)'와 한국의 해장술로 불리는 '모주(母酒)'다. 뱅쇼와 모주의 공통점은 바로 술을 끓인다는 점. 뱅쇼는 와인을 끓이지만, 모주는 주로 막걸리를 끓인다는 것에 특징이 있다. 이렇게 끓이게 되면 알코올은 상당 부분 증발되거나 아니면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즉, 소주 등에 비해 알코올에 따른 저체온증을 비교적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뱅쇼에는 계피, 말린 정향, 레몬 껍질, 팔각등이 들어가며, 모주에는 계피, 감초, 대추, 흑설탕 등이 들어간다. 뱅쇼 및 모두 둘 다 계피가 들어가는데 역시 감기 예방에 좋은 약재이기 때문이다.
또 독일 및 중유럽에도 유사한 것이 있는데 바로 글뤼바인(Glühwein)이다. 주로 적포도주를 중심으로 정향 등을 넣고 마시는 것으로 뱅쇼와 맥락을 같이 한다. 특이점이라면 크리스마스 전후로 많이 판매한다는 것. 또 글뤼바인(Glühwein)이라는 제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알코올 도수 7%는 넘어야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뤼바인(Glühwein) 이미지. 위키미디아
모주(母酒)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광해군에게 아들을 잃은 인목대비가 제주도에 귀양 가서 만든 술이라는 것과 구한말 전주성 앞 우시장에서 유래했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가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다양한 약재를 넣고 끓였다는 설 등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모주의 경우 판매도 하지만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좋은 지역 막걸리 한 병 사서 앞서 언급한 약재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흑설탕은 꼭 넣야 한다는 것. 그래야 색이 모주답게 검게 나오며 맛도 달콤해진다. 물론 콩나물 국밥에 함께 먹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궁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