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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Nov 22. 2018

인류 이전에는 누가 술을 만들었을까?

자연에서 만들어 지는 술 이야기

최근 수년간의 출판업계의 베스트셀러를 보면 역사 교양서가 무척 눈에 띈다.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등이 대표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제까지의 역사 교양서가 정치, 경제 중심의 콘텐츠였다면, 최근에는 철학은 물론 음악, 미술, 그리고 음식문화까지 그 영역이 무척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안광복 씨의 <철학, 역사를 만나다>, 니시하라 미노루의 <클래식을 흔든 세계사>, 양정무 씨의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주영하 교수의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등이 다양한 분야에서 역사와 접목된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역사와 연관된 <술 인문학>도 등장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와인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맥주, 위스키, 전통주까지 다양한 인문학 교양서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술의 역사는 언제부터일까?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술을 만들었을까? 일반적으로 와인은 기원전 8,000~6,000년, 맥주는 6,000~4,000년 전후로 전문가들은 언급한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서양의 역사일 뿐, 일본의 경우 1만 5천 년 전의 항아리에서 포도씨가 발견되었고, 중국의 경우 세계 4대 문명이라는 황하강 유역에서 9천 년 전에 곡물로 술을 빚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즉 서양에 비해 동양이 술의 역사에 있어서 늦지 않고 오히려 빠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동양과 서양 중 누가 더 빠르냐라는 것은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어차피 인간은 술을 저장성 좋은 음료(알코올 함유로 인해 변질이 늦음)로 사용해왔고, 결국 발견의 차이일 뿐이지, 본질적인 역사는 농경생활의 시작과 함께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술은 농업의 역사와 함께한다.

인류 이전의 술은 있었을까? 없었을까?
그렇다면 인류가 농경생활을 하기 전, 더 나아가 인류가 태어나기 전에는 술이 있었을까? 이것에 관련하여는 유추할 수 있는 보도가 얼마 전 미국에서 있었다. 바로 미국에서 일어난 새들의 행동이다. 미국의 미디어 <Kare11.com>에 따르면,  미네소타주 길버트시에서 야생의 새가 계속 창문에 부딪히거나 주행 중인 자동차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지역 환경학자에 따르면, 자연상태에서의 과실이 발효되어 술이 되고, 그것을 새들이 먹었다고 했다. 인간이 만들지 않더라도 술은 있었다는 뜻이다.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술을 만들었을까? 과실이나 곡식을 그대로 놔두면 술이 무조건 되는 것인가? 너무나도 다양한 방법으로 술이 생기지만, 대표적인 세 가지만 소개해 본다.

무화과의 껍질은 꽃받침이며, 안쪽의 붉은색이 꽃인데, 보이는 각 씨마다 꽃을 가지고 있다. 출처 pixnio


말벌이 만든 술, 무화과 술
패트릭 E 맥거번의 <술의 세계사>에 따르면 말벌이 만드는 무화과 술이 등장을 한다. 무화과는 이름 그대로 꽃이 없는 과일. 정식으로 말하자면 꽃이 없는 것이 아닌 숨겨진 꽃을 열매로 먹는 것이다. 무화과의 껍질은 꽃받침이며, 안쪽의 붉은색이 꽃인데, 보이는 각 씨마다 꽃을 가지고 있다.

무화과 꽃은 외부에 노출되지 않기에 기존의 꽃과 다른 수분 과정이 필요하다. 다른 꽃들과 마찬가지로 벌이 도와주는데 그 과정이 특별하다. 바로 무화과 말벌(크기가 1mm 이하로 매우 작다. 영문명 'Fig wasps')이 알을 낳기 위해 숫 무화과에 들어가고, 여기서 태어난 말벌 유충들이 작은 구멍을 뚫어 무화과에 나오는데, 이때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닌 숫 무화과 있는 꽃가루를 가지고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날개와 몸에 꽃가루를 묻히고 나오는 것이 아닌, 가슴 주머니에 일부러 담는다는 부분이다. 자신을 태어나게 해 준 무화과에 대한 답례이며, 이렇게 꽃가루를 가지고 나온 말벌이 암 무화과에 들어가는 순간 수분이 일어난다.

무화과 술은 바로 이때 생겨난다. 말벌이 구멍으로 인해 공기 중의 효모가 들어가고, 무화과 내부에서는 자연스럽게 알코올 발효가 일어난다. 무화과 내부에 술이 생기는 것이다. 이 무화과 술을 먹고 말벌은 아예 생활을 하며, 발효되면서 나오는 냄새로 조류는 물론, 박쥐, 원숭이, 잠자리까지 무화과 술을 찾으러 온다.  술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만의 영역이 아니다. 포유류, 조류, 심지어 곤충까지 좋아한다는 의미다.

참고로 무화과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악과라는 말이 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무화과 잎으로 가리기도 했으며, 실질적으로 인류가 최초로 재배한 과실이라고 보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바티칸 시티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에서도 선악과가 열리는 나무는 무화과나무다. 사과로 선악과가 바뀐  이유는 라틴어로 악을 뜻하는 <malum>이란 단어와 사과를 뜻하는 <mālum>의 언어유희에서 왔다고 보고 있다.  

<술 취한 동물을 보여주는 영상>

코끼리가 밟아서 만드는 술? 아프리카의 망고, 마룰라 술
아프리카에는 마룰라(Marula)라는 과실이 있다. 망고와 같은 과인데, 잘 익은 열매는 그대로 먹고, 씨앗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여 식재료나 기름을 짜서 섭취하기도 한다.  이 열매의 특징은 익은 이후에 급속도로 발효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 열매가 익을 때쯤이면 모든 동물들이 이 나무 밑으로 모여든다. 원숭이, 멧돼지, 기린, 그리고 코끼리다. 코끼리의 경우는 몸으로 나무를 부딪히고, 떨어진 낙과를 먹는데, 이때 낙과를 밟으면 공기와 접촉이 되고, 발효가 더욱 빨라지게 된다. 의도치 않지만 역시 코끼리도 술을 만드는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이 마룰라 열매를 이용,  아마룰라 (Amarula)라는 리큐르도 개발 및 수출하고 있는데 코끼리와 연관된 좋아하는 술이라는 의미로, 라벨에 코끼리를 넣었다.


마룰라(Marula)라는 열매를 이용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리큐르 아마룰라 (Amarula). 제품에 코끼리가 그려져있다.


원숭이가 만드는 술. 키위 술?

일본에는 사루나시(猿梨)라는 열매가 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원숭이 배. 우리나라에서는 참다래로 불리는 키위와 유사한 과일이다.  이 열매가 사루나시(원숭이배)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원숭이가 이 열매를 저장하는 과정에서 발효가 일어나 술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원숭이가 만드는 술을 말 그대로 원주(猿酒)라고 부르는데, 인류가 술을 빚기 전, 가장 먼저 술을 빚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인류 역시 원숭이의 행동을 따라 술을 빚은 것 아니냐라는 주장도 있다. (참다래는 최근에 국내산 키위의 상품명으로 쓰이고 있다). 결국 인간은 술을 발명한 것이 아닌 발견한 것이며, 좋은 술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Management>에 중점을 뒀다고도 말 할 수 있다.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발효의 섭리
동물들에 의한 술 발효를 설명했지만, 실은 이러한 발효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난다. 포도 껍질을 밀봉해서 버리면 1, 2일만 지나도 부풀어 오르며 술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포도 껍질에 붙어 있는 효모가 포도의 당을 먹고 부산물로 알코올과 CO2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상온에 놔둔 김치 봉지가 부풀어 오르는 것도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서 생기는 현상인 경우도 있다. 술은 마시고 취하는 모습으로만 생각되지만, 알고 보면, 우리 생활과 엄청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생활속의 일부분>이 술인 것이다.

written by 명욱
일본 릿쿄(立教) 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10년 전 막걸리 400종류를 마셔보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서 포털사이트에 제공하면서 본격적인 주류칼럼니스트로 활동한다. 가수 겸 배우 김창완 씨와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전통주 코너를 2년 이상 진행했으며, 본격 술 팟캐스트 <말술 남녀>'에도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최근에는 O tvN의 <어쩌다 어른>에서 술의 역사 강연을 진행했다. <명욱의 동네 술 이야기> 블로그도 운영 중이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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