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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Mar 31. 2020

전기 만드는 소주회사, 폐광 활용한 양조장

가고시마 고구마 농업과 소주 이야기

고구마 농업을 받치고 있는 가고시마 소주


- 지속 가능한 주류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


 최근 일본산 증류주의 약진이 눈에 띈다. 일본 재무성에서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위스키, 진, 리큐르, 증류식 소주 등의 수출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미국 굴지의 위스키 기업인 짐빔을 인수한 산토리 홀딩즈는 세계 증류주 매출 탑 4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빔산토리코리아로 활동하면서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은 하이볼을 촉매로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다. 해외 수출의 선두를 이끄는 것은 역시 위스키. 최근에는 쌀 소주를 베이스로 한 재패니스 진이다. 이렇게 증류주가 수출이 활성화를 띄면서 일본 증류식 소주 촉진협의회(焼酎輸出促進協議会)도 미국의 증류주 시장에 출사표를 내밀었다. 브랜드 제고를 위해 독특한 크래프트 소주를 기획하고, 식전과 식후에도 마시는 제품을 만들며, 칵테일 등을 더욱 기획하겠다는 의도다. 여기에 전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디자인의 개발 및 미일 합작 제품, 그리고 믹솔로지스트(음료 및 칵테일 전문가)의 양성 및 양조장 관광상품을 강화한다는 목적이다.


양조장 내 고구마 소주 시음장
한국과 다른 일본의 소주 시장

현재 일본의 소주 시장은 한국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한국 소주는 지역 농산물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어렵다. 주정(酒精)에 물을 희석한 '희석식 소주'가 전체 마켓의 99% 가까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러한 희석식 소주 시장은 50%도 안된다.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 증류식 소주가 메인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실은 일본도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과 비슷했다. 그저 저렴한 술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당시 기술적으로도 증류식 소주의 질적 향상이 크게 안 이뤄진 부분도 있었다. 특히 일본 고구마 소주의 경우, 쾌쾌한 냄새가 있었고, 이것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인공감미료 등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이내 기술이 발달하면서 고구마 특유의 단 맛과 부드러운 향을 낼 수 있었고, 인공 첨가물을 넣을 필요가 서서히 사라졌다. 지금은 오직 고구마와 지역의 물, 그리고 쌀 입국(일본식 누룩)만 넣고 있는 상황이며,  다른 쌀소주, 보리소주도 상승 구도를 탔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서서히 원료의 맛을 즐기는 문화가 커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지역의 농산물을 나타내는 술이 된다.


여기에 소주의 명칭 변화가 소비 흐름에 박차를 가한다. 기존에 증류식 소주의 명칭은 소주을류(焼酎乙類). 희석식 소주의 명칭은 소주갑류(焼酎甲類)였다. 거대한 공장에서 나오는 희석식 소주가 한때 신식이고, 옛 방식이 구식이라는 판단 아래 갑과 을이라는 명칭이 된 것이다. 2003년, 이 을(乙)소주에 대한 이름을 바꾸면서 갑과 을의 역전이 시작된다. 바로 이 소주을류라는 이름을 본격(本格)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영어로는 'real'이라고 붙였다. 증류식 소주가 진짜 소주가 된 것이다.


다양한 고구마 소주의 원료(위). 양조장에서 제공하는 시식용 소주용 고구마. 전혀 단 맛이 없다(좌측 하단). 고구마별로 다른 향미를 느끼게 만든 테이스팅 툴(우측 하단)



농업을 받치고 있는 소주

결국 이 명칭의 개정으로 일본의 증류식 소주는 희석식 소주를 누르고 일본의 메인 증류주가 된다. 중요한 것은 고구마 농업의 체질이 개선이 되었다는 데 있다. 품종이 다양해진 것은 물론, 구매처가 확실한 기업인 만큼, 농민들도 안심하고 고구마를 재배하게 된 것이다. 현재 일본의 고구마 생산은 2017년 기준 80만 톤. 여기에 소주용은 약 20%, 규슈지역의 가고시마와 미자야기현만 놓고 보면 50% 이상을 증류식 소주용으로 활용된다. 일본의 고구마 산업은 소주가 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자국의 농산물로 만들었다고 무조건 소비자가 사주지는 않는다.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위해 업체들은 남들과 다른 마케팅, 사회적 활동도 시작한 것이다.



폐기물로 지역 전기를 만드는 양조장

대표적인 곳이 고구마 소주의 부산물을 이용, 지역 전기를 만드는 양조장이다. 일본 최대 증류식 소주 업체인 키리시마 주조(霧島酒造)가 진행하는 방식이다. 규슈의 미야자기현(宮崎県)에 있는 이 회사는 고구마 등 지역 농산물로 소주를 만들고 난 고구마 부산물에서 나오는 바이오 가스(메탄가스)를 이용, 제조 시의 연료 및 비료, 그리고 지역 전기발전(電氣発電)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회사에 들어오는 고구마의 양은 1일 총 425톤. 그리고 소주를 만들면 수분을 포함하여 850톤의 부산물이 나오게 된다. 이것을 가지고 34,000 m³의 바이오 가스가 생성, 이것이 22,000세대의 전기 에너지를 만든다. 또, 연간 사용하는 공장 연료의 65%를 이 바이오 가스로 보충하며, Co2 발생을 3,000톤이나 삭감 중이다.


이곳의 특징은 단순한 고구마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와인에서 다양한 품종의 포도가 각각 다른 맛을 내는 것처럼 고구마도 품종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이러한 상황에 착안, 백 고구마(こがねせんかん, 黄金千貫), 자색 고구마(むらさきまさみ, 紫優), 호박 고구마(たまねあか, タマアカネ)를 이용, 각각의 다른 제품을 만들어 낸다. 각각 부드러운 맛과 상큼한 맛, 그리고 과실 향이 나는 맛을 추구했다. 또, 누룩의 균을 차별화하여, 청주용 누룩(黄麹), 소주용 누룩(黒麹、白麹)에 따라 다른 제품을 출시, 고구마 소주에 다양성을 확보했다. 부드러운 맛과 진한 맛을 누룩균에 따라 차별화한 것이다. 여기에 고구마 꽃에서 효모를 채취, 독특한 향미를 품게 한다. 소비자와의 접점을 위해 공장 내 레스토랑 운영, 지역 크래프트 맥주 제조, 고구마 소주 아이스크림 및 제과점 운영 등, 고구마 소주에서 확산할 수 있는 다양한 곳에서 소비자와 만나고 있다. 이러한 다양화를 성공한 키리시마 주조는 7년 연속 일본 증류식 소주 1위를 수성하고 있다.


갱도 내 양조장의 모습. 군고구마로 만든 소주의 모습(우측 하단)


폐광 속에 양조장을 세운 킨잔구라(金山蔵)

폐광을 양조장으로 만든 곳도 있다. 가고시마 고구마 업체 하마다 주조(濱田酒造)다. 이곳은 2005년, 이미 폐광이 된 금광을 개조, 킨잔구라라는 소주 양조장을 별도로 만들었다. 금광 속 갱도를 따라 토롯코라는 작은 열차를 타고 가면, 이내 금광의 흔적을 발견한다. 총 120km 중 1km로 구성된 양조장 내부에는 약 500여 개의 숙성탱크를 비롯, 발효, 증류까지 이어지는 소주 양조장의 내부를 볼 수 있으며, 별도의 금액을 내면 자신의 손글씨와 사진이 담긴 제품으로 숙성도 진행해 준다. 마치 자신의 자녀가 출가를 할 때, 오랫동안 재워뒀던 술은 손님 앞에서 봉인을 푸는 방식이다. 금광을 소주 양조장으로 만든 이유는 연중 15도 정도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 언제나 안정적인 온도로 보관 및 숙성을 하기 위함이다.


키리시마 주조가 다양한 고구마로 소주를 만들고 있다면, 이곳은 고구마의 가공방식으로 특이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기존의 고구마 소주는 기본적으로 증기로 찌는 것. 하지만 이곳은 고구마를 갈아서 제조하는 방식과, 군고구마를 재료로 소주를 만들기도 한다. 고구마를 간 제품은 열대과실향이 풍부하게 느껴진다. 군고구마로 만든 제품은 신기하게 고구마의 고소한 맛이 살아있다. 원료의 풍미를 살림으로써 맛과 향, 그리고 여행 체험에 테마파크까지 추진한 곳이다.


다양한 오크통과 창업자 고택에서 즐기는 위스키 
지역의 다양한 곳에서의 숙성. 지역적 문화 전파

일본의 증류주 산업을 리딩하는 것은 일본 위스키일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산토리, 닛카 등이다. 이러한 대규모 증류소 외에 중소 증류소도 상당한 수준을 가지고 있는데, 2017년, 대표적인 곳이 월드 위스키 어워드(WWA)에서 세계 최고상을 수상한 마르스 츠누키 증류소(マルス津貫蒸溜所)다. 


이곳의 특징은 다양한 곳에서 위스키 숙성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추운 곳과 더운 곳, 그리고 그 중간계에 있는 곳이다. 추운 곳은 동계 올림픽이 열린 눈의 고장 나가노의 고원지대(해발 798미터)이며, 더운 곳은 인기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배경지인 아열대의 야쿠시마(屋久島)다. 그리고 중간지대는 해풍이 풍부한 증류소가 위치한 가고시마다. 위스키의 경우, 오크통에 숙성을 하면 기후 환경에 따라 맛과 향이 많이 달라진다. 


특히 알코올의 증발률에 차이가 큰데, 나가노 등의 눈이 많은 지역은 비교적 증발량이 적어 천천히 숙성이 되는 만큼, 아열대 기후인 야쿠시마는 증발률이 높아 빨리 숙성이 된다. 초기에는 생산성이 안 맞아 아열대 기후에서는 숙성을 진행하지 않았으나 오히려 지역의 환경으로 인한 맛의 차이가 애호가들의 입맛을 이끌어, 지금은 이 곳만의 스토리로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버번, 셰리, 럼, 브랜디, 진, 게다가 일본산 참나무인 미즈나라(水楢)로 만든 캐스트에서도 각기 다른 숙성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위스키 등은 최소 수년 숙성을 요하는 만큼 바로 자금 회전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특별히 숙성이 필요 없는 진(gin)등을 제조, 크래프트 재패니즈 진이라고 판매 중이다. 이곳에서는 1950년대 세워진 연속식 증류기를 모델로 역시 다양한 위스키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는 창립자의 고택을 그대로 갤러리 및 레스토랑으로 개조, 100년 전의 당시 문화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도 감성을 이끄는 부분 중 하나다.


일본 증류주 제품은 딱 하나로 귀결된다. 지역성을 살리고, 그 지역성이 좋은 스토리가 되어간다는 것. 얼마 전 한국에서는 최문수 강원도 도지사가 감자를 직접 판매하여 완판을 이뤘다. 우리 농민들에게 도움되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감자가 너무 많이 남았던 부분이 크다. 우리 시장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뜻이다. 우리 농산물을 이용한 한국의 술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단순히 원료도 잘 모르는 그냥 소주가 아닌, 쌀소주, 보리소주, 감자 소주 등이다. 맛을 느끼고 원료를 알면 지역과 공감하면 폭음도 많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좋은 우리 농산물로 빚은 술로 도시와 농촌이 소통하는 좋은 상생모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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