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규제가 대폭 완화되었다. 주류 완화의 흐름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2019년 맥주와 막걸리의 종량세 전환, 올해 3월 소매점 배달, 그리고 이번에 18가지 항목에서 규제 완화가 이뤄졌다. 주류에서 이렇게 규제완화가 이뤄진 이유는 그동안 수입 주류의 매출은 커지고, 반대로 국산 주류의 소비가 줄어들었기 때문. 기재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4~2018년도까지 국내 주류는 연평균 0.4% 감소하였으나, 수입주류는 10% 이상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주류산업에 대한 회생 및 산업적으로 약해지고 있는 모습을 반영, 규제 완화를 통해 재도약을 추진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의 실생활에서는 어떤 변화를 보일까? 소비자에게 직관적으로 다가올 내용으로 정리해본다.
카스 샴푸, 테라 린스, 막걸리 에센스, 장아찌 나올 수 있다.
이번 규제완화에 있어서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주류제조회사에서 음료, 빵, 화장품, 장아찌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에는 오직 주류만 생산 가능해서, 무알코올 맥주 조차도 계열사 등에 위탁제조를 맡겨야 했다. 하이트 맥주의 무알코올 맥주 ' 하이트제로'는 하이트진로음료에서 만들었으며,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도 롯데주류가 아닌 롯데칠성음료에서 만들고 있다. 하지만 무알코올 맥주라고 홍보하지만 알고 보면 주류가 아닌 음료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럴 필요가 전혀 없다. 이제는 관련 공정에서 나오면 자사에서 관련 음료를 만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무알코올 맥주가 아닌 맥즙, 또는 맥콜과 같은 제품도 개발이 가능하다. 여기에 주류 공정에서 나오는 다양한 재료 및 부산물로 독특한 제품이 나올 수 있다. 첫 번째로 탈모방지용 샴푸다. 맥주 효모가 탈모방지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맥주 공장으로 맥주 효모를 구하러 오는 경우가 있으며, 이미 시중에 맥주 효모로 만든 발모제가 있을 정도다. 즉, 카스 샴푸, 테라 린스 등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막걸리 및 전통주 업체 역시 제품이 다양해질 수 있다. 막걸리의 공정 중에는 식혜와 유사한 공정이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막걸리 업체는 아침햇살과 같은 쌀 발효음료를 출시할 수 있다.
막걸리 회사 역시 화장품을 만들 수 있다. 고급 화장품 제조사 SK2에서 나온 피테라 에센스와 유사한 제품이다. 이 제품의 경우는 유독 손이 고운 사케 장인에 착목하여 만든 제품으로 사케의 원료를 화장품에 적용을 시켜서 히트를 쳤다. 우리 막걸리는 오히려 사케보다 더 풍부한 영양을 가지고 있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즉, 앞으로는 우리 전통주를 활용한, 또는 막걸리, 약주, 청주 에센스 등도 나올 수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 전통 시장에 가면 큰 항아리에 큰 장아찌를 덩어리로 판매한 적이 있다. 이런 경우 늘 같이 넣어주는 재료가 있었는데 바로 막걸리에서 나오는 술지게미다. 술지게미는 영양도 풍부하지만, 알코올이 함유되어 있어 보존성도 좋아진다. 따라서, 이제 막걸리 양조장 오리지널 장아찌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며, 빵을 만들 때 넣어주던 술지게미로 양조장 오리지널 술빵도 출시도 가능하다. 국순당, 서울 장수, 지평 및 가평 잣 막걸리 술빵도 나올 수 있다.
진로소주를 처음처럼 공장에서도 만들 수 있다.
이번 규제완화에 따라 제조사끼리 위탁제조(OEM)가 허용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진로소주를 처음처럼 공장에서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그 전에는 오직 자세 제품은 자사에서만 만들어야 했다. 이를 통해 캔맥주 시설, 살균 시설 등을 구비하지 않은 작은 양조장은 시설이 구비되어 있는 중견 양조장에 업무를 의뢰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러한 배경에는 수제 맥주 업체들이 해외에서 주류제조를 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국내의 타 공장에서 생산이 가능하다면, 굳이 해외에서 조달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또, 전국에 120여 개나 있는 수제 맥주 공장이 어려움에 봉착한 것도 있다. 2014년 4월 주세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매장 내 판매만 해야 했던 수제 맥주가 유통이 가능해지며 전국에 120여 개가 최근 수년 내에 생긴 것이다. 하지만, 수제 맥주에 대한 열풍이 가라앉고, 코로나 사태 등이 터지면서 수제 맥주의 수요는 급격히 줄었다. 특히 맥주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부분인데, 대규모 시설을 준비하려면 수십억에서 수천억이 들어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크래프트 맥주 업체들은 살아남고자 위탁제조(OEM) 방식으로 의뢰 및 위탁을 받아 살아남아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소규모 맥주 양조장 면허만 있으면 위탁이 가능해진 만큼, 중견 식품회사들도 면허를 취득한 후에 적극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정식 위탁생산이 진행된다면 판매 및 유통도 함께 진행이 가능하다.
이로써,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수제 맥주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치킨, 보쌈 등의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업체들도 오리지널 제품을 만들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이번 규제 완화로 그동안 허가되지 않았던 질소가스도 맥주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질소가 들어간 대표적인 맥주는 기네스 드래프트. 크리미 한 식감을 가진 맥주가 더욱 다양해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너무 우후죽순으로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 위탁생산을 하게 되면 수제 맥주 본연의 가치를 잃을 수 있다는 전문가 분석도 있다. '맥주,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의 심현희 작가는 원래 수제 맥주는 지역성, 농업성, 독창성을 가진 제품이라며, 위탁생산(OEM) 시장이 커지면 제품이 단조로워지고, 수제 맥주 본연의 가치를 잃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세분화된 음식과 주류가 배달될 수 있다.
이제는 음식과 주류가 함께 정식 배달이 가능하다. 기존에는 음식에 부수하여 주류 배달이 가능하게끔 법이 제정되어 있었으나, 법해석이 애매모호하여 실패한 사업모델로도 이어졌다. 이 부분을 명확하게 음식보다 주류 가격이 낮다면 배달할 수 있게 바뀐 것이다. 치킨, 피자의 맥주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부분은 앞으로 배달 콘텐츠가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비 오는 날의 막걸리와 파전부터, 스테이크와 와인도 가능하다. 각종 도시락과 밀키트에도 가벼운 맥주가 추가될 수 있으며, 제사 및 차례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에는 아예 전통주가 세트로 올 수도 있다. 음식 가격보다 주류 가격을 낮추기 위하여 혼술용 작은 사이즈의 수요가 늘 가능성이 크며, 보다 세밀한 페어링 문화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또 다양한 시음행사도 많아질 예정이다. 기존에는 해당 제품 외에는 시음이 어려워서 칵테일 행사를 진행해도 단순히 보여주고 끝나는 식이였다면, 이제는 직접 소비자가 칵테일도 마셔볼 수 있게 바뀐다. 또, 전통주 등을 위한 소매점 및 전시장에서의 시음도 보다 자유로워진다.
주류기업에서 주류문화기업으로 포트폴리오 전환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주류산업은 싸게 만들고 많이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100년을 진행해오다 보니 획일화된 음주 문화와 제품으로 수입 주류에 철저히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번 규제완화는 이러한 위기를 인지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주류제조기업에서 주류문화기업으로 변모할 수 있는 새로운 도약. 그래서 이번 규제 완화는 준비하는 기업에게는 최고의 찬스로, 기존의 것만 고수하는 기업에게는 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치 한국의 IT기업이 영원히 못 이길 듯하던 일본 IT기업에 확실하게 앞지른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