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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Jun 06. 2020

[허균의 술 세계]잡객들과 마실 때는 꽁무니를 빼야

허균의 술마시기 좋은 때

영화 광해의 스틸컷. 류승룡 씨가 허균을 연기했다. 


조선시대를 크게 둘로 나눈다면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8년간 국토가 유린되면서 200년간의 평화를 유지해 준 성리학에 대한 회의론이 일게 된 것이고 그것을 대신하기 시작하는 실전학문이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청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와 천문, 지리, 역사, 정치, 경제, 경학, 시문, 신형, 언어, 잡사, 기예, 외도, 궁실, 생물 등을 정리한 이수광의 지봉유설 등이 대표적인 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치적으로는 차별받는 서얼들을 규합하여 혁명을 일으키려는 세력도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었다. 소설속 홍길동은 서자인 홍길동이 차별받는 상황에서 시작하지만 허균은 서자는 아니었다.  다만, 어릴 적  둘째 형의 벗인 이달에게서 학문을 배우게 되는데, 그가 서자 출신이었다. 스승의 처지에 비애를 느끼고, 지은 소설이 홍길동전이다. 또한 허균 역시 재취 부인의 소생으로 역시 차별받는 위치에 있어 이달의 처지에 공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중인 홍길동전. 출처 위키피디아

홍길동전은 처음부터 저자명이 등장하지는 않았다. 시대적 상황으로 책이 발간되지 못할 것을 안 허균은 그의 외손자 이필진에게 전해줘서 후대에 전래되었다.  특히 《홍길동전》은 무명으로 발표하였으나 나중에 유몽인이 그의 작품이라는 기록을 남겨 알려지게 되었고 19세기에 널리 읽히게 되었다. 


최초의 음식 해설가 허균

허균은 지금으로 비유하면 행정부 장관의 예조판서까지 역임한 인물이었지만, 이후 권력 다툼에 밀려 귀양을 간다. 그리고 그때 지었던 대표적인 글이 도문대작(屠門大嚼),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 평론서라고 불리는 책이다. 이 책은 허균이 전라북도 함열(지금의 익산)에 귀양가 있던 시기에 저술한 것으로, 유배지에서 나온 거친 음식이 힘들어 이전에 먹던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며 서술한 내용이다. 도문(屠門)은 소나 돼지를 잡는 푸줏간의 문이며, 대작(大嚼)은 크게 씹는다는 뜻. 즉, 현재 먹을 수 없는 고기를 생각하며, 푸줏간을 향해 입맛을 다신다는 의미가 된다. 지금으로 따지면 고깃집 생각하니 '침샘이 고인다' 정도의 의미가 될 듯하다. 단순히 고기만 기록된 것은 아니며, 과실, 고기, 어패류, 채소 등 총 117종의 식품과 식재료, 그리고 특산지와 재배 기원, 생산시기와 가공법, 모양과 맛까지 언급되어 있다. 말 그대로 종합 한식 해설서인 것이다. 


허균이 남긴 기록으로는 홍길동전 외에 한정록(閑情錄)이라는 책도 있다. 은거자의 정신적, 물질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내용과 농사법에 대해 정보를 수록한 책이다.  <은둔()>, <한적()>, <퇴휴(退)>, <청사()> 등의 4문()으로 나누어 편집된 이 부분에는 애주가의 지침이 들어있다. 특히 술에 대해 자연친화적인 그의 모습을 그래도 알 수 있다. 


술 마시기에 좋은 때


"술을 마시는 데는 5가지 좋은 때가 있다. 

시원한 달이 뜨고, 좋은 바람이 불고, 유쾌한 비가 오고, 시기에 맞는 눈이 내리는 때가 첫 번째로 맞는 일이며, 꽃이 피고 술이 익을 때가 둘째로 맞는 일이다. 

우연한 계제에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것이 세 번째 맞는 일이며, 조금 마셔도 흥이 난다면 네 번째요, 

처음에는 울적하다가 다음에는 화창하여 담론이 활발해지는 것이 다섯 번째 맞는 일이다"



결국, 화나가고 속상할 때 과음을 하는 것이 아닌, 달과 바람, 비, 눈이 올 때가 술을 즐기기 좋은 때라는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보인다. 술에 대한 절제와 애주가로서의 처세도 기록되어 있다. 


잡객들과 마실 때에는 꽁무니를 

"기뻐서 마실 때에는 절제가 있어야 하며, 피로해서 마실 때에는 조용해야 한다. 점잖은 자리에서 마실 때에는 소쇄한 풍도가 있어야 하며, 난잡한 자리에서는 규약이 있어야 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마실 때에는 한가롭고 우아하게 하면서 진솔하게 마시되, 잡객들과 마실 때에는 꽁무니를 빼야 한다." 


결국 난잡한 자리에서는 규약이 필요하며, 잡객들과 마실 때에는 꽁무니를 빼야 한다는 것, 허균이 좀 더 오래 살았다면 한국의 음주 문화를 좀 더 멋지게 바꿔주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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