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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Jul 17. 2020

살쾡이가 훔쳐 마신 술 '담양 추성주'

숨겨진 우리술 이야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대나무 밭을 가진 곳이 있다. 전남의 최북단 중 한 곳이며, 북으로는 내장산(763m)과 추월산(729m), 서쪽으로는 병풍산(屛風山, 822m), 불대산(佛臺山, 602m), 남동쪽으로는 무등산(1,187m)으로 둘러싸여 중앙부가 분지인 곳, 그리고 영산강의 수원지로 알려진 아름다운 자연의 담양군이다. 담양은 대한민국 최대 대나무 생산지역으로 모든 총 대나무밭의 면적은 약 500만 평, 1,800개 정도의 축구장 크기를 자랑한다. 그래서 최고급 대나무도 담양에서 나온다. 고급 대금(大笒)이 담양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담양 죽녹원. 출처 담양군청


대나무 외에 유명한 것이 있으니 가사 문학의 산신이라는 곳.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정철, 송순 등이 살았었고, 특히 정철의 사미인곡 등은 이 담양에서 지어진 가사문학이다. 특히 선비들이 자연친화적인 정자도 많이 남겨놨는데, 대표적인 곳이 바로 소쇄원(瀟灑園). 조선시대 조광조의 제자인 양산보가 스승이 유배당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 지은 정자로 수많은 학자가 학문을 토론하고 창작활동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선비들의 문화 속에 좋은 술이 빠질 리는 없을 터. 바로 그 술이 담양의 옛 이름을 딴 추성주다. 


살쾡이에 얽힌 전설의 술 ' 추성주'

추성주에는 전설이 있다. 담양의 유명 사찰인 연동사(煙洞寺)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약 1000년 전, 이곳에서 빚던 술이 계속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때마침 연동사에서 공부 중인 유생이 의심을 받게 된다. 유생은 계속 의심받는 것이 억울하여 범인을 잡기로 결정, 술단지를 계속 감시하는데, 드디어 범인을 발견한다. 바로 연동사에 살던 늙은 살쾡이가 훔쳐마시고 있던 것. 

유생은 술을 마시던 살쾡이를 잡았고, 사람들에게 알리려 하자 당황한 살쾡이는 거래를 맺자고 한다. 자신을 살려주면 일평생 도움되는 비밀의 책을 주겠다고 한 것. 유생은 이 거래를 맺고, 입신양명을 하게 된다. 그 비밀의 책을 받은 사람은 고려 중기의 문신인 이영 간(李靈幹:1047∼1082). 바로 담양 이 씨의 선조로,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그가 연동사에서 공부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담양군지에도 등장하는 추성추

1700년 담양 부사 이석희가 쓴 담양군지(秋成誌)에 따르면 고려 문종 14년(1060년경) 때 추월산(731m)의 연등사에서 약초와 보리, 쌀 등으로 곡차를 즐겼으며, 이후에 허약한 몸에 원기를 넣기 위해 약주로도 빚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절에서 빚은 그 술은 산속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열매로 술을 빚게 되었고, 담양의 옛 이름인 추성이란 이름을 따 추성주로 전해 내려왔다. 추성주가 널리 알려진 것은 담양에 거주했던 가사문학의 대가들 덕분.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 백호 임제. 이 셋은 3일을 추성주를 마시며 즐겼는데 숙취가 없어 그 감동이 한양까지 그 소문이 전해졌다고 한다. 


사라진 담양의 명주, 양대수 씨에 의해 복원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주세법으로 가양주가 금지되고, 해방 이후에도 그 정책은 계속되었다. 추성주도 이내 사라질 위기에 처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막을 운영했던 담양 사람이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추성주 빚는 법을 300여 한자로 남겨주었다. 그리고 꼭 복원하라는 유언을 남기었다. 그것을 받은 아들은 유언대로 추성주를 복원한다. 바로 식품명인 22호 양대수 씨의 이야기이다. 양대수 씨는 자신의 고향인 이곳의 문화를 복원한다는 굳은 결심으로 선친의 유언을 따르기로 결정,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간다. 하지만 연구한다고 해서 바로 복원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비법을 남겨주었다고 한들, 바로 적용하기란 불가능이었다. 특히 약주(藥酒)라는 의미를 가지는 추성주에 들어가는 한방약재 사용방법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구기자와 갈근은 다리고, 연뿌리는 볶고 오미자는 볶아야 하는 등 한약재마다 찌고, 볶고, 달여야 하는 방식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구하고 연구한 것이 2년. 1994년도에 추성주는 100여 년 만에 세상에 다시 복원된다.



약주와 증류주 두 종류의 추성주

복원한 지 약 20년, 그 사이에 추성주는 다양한 전통주가 진화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맑은 약주 형태의 발효주, 하나는 이러한 약주를 증류한 증류주이다. 우선 멥쌀을 기본으로 술 발효를 하고, 100일간의 숙성을 거치면 맑은 약주가 얻어진다. 추성주는 술 발효가 끝난 맑은 약주를 증류하여 전통 소주를 내리고, 이 전통 소주에 구기자, 강활, 상심자, 오미자, 산약, 갈근, 솔잎 등 10가지 이상을 넣어 대나무 여과를 거치며 알코올 도수 25%로 맞춰 100일 이상을 숙성시키면 추성주가 되고, 알코올 도수 40%로 맞춰 대나무를 넣어 숙성을 시키면 타미앙스가 된다. 


흥미롭게도 이 술의 맛은 전혀 약주같이 않다는 뜻. 초콜릿향과 헤이즐럿 향이 있는 모습이 살짝 위스키와 같은 느낌이 있다. 전통주라고 해서 무조건 약재맛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양대수 명인과 그의 아들 양재창 씨

현재 추성고을에서는 추성주라는 전통 소주와 대잎술 및 대통술이라는 약주도 함께 생산하고 있다. 그런 만큼 소줏고리를 이용한 소주 내리기 체험 및 한약재를 이용한 약주 체험 등이 가능한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바로 대나무 약주 체험. 자신이 마음에 드는 대나무 통을 골라 약주를 직접 넣고 가져가는 체험이다. 


위스키의 맛과 향이 느껴지는 추성주


크기에 따라 사람의 손목 정도의 작은 대나무부터 허벅지 크기의 큰 대나무까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참고로 대나무에 들어간 약주는 냉장보관에 빨리 소비하는 것이 좋다. 대나무의 성질상 수분이 외부로 배출되는 만큼 귀한 술이 밖으로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코로나로 잠시 체험은 쉬고 있다. 

소주를 내리는 모습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 등 주변이 모두 아름다운 담양

'추성고을'을 중심으로 반경 10km 이내에는 이른바 몸과 마음의 휴식이 되는 대표적인 담양의 명소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 길'이 대표적이다. '죽녹원'은 5만 평의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정원으로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2.2km 길 안에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등 8가지 테마의 길이 있다. 전망대에는 담양천을 비롯한 수령 300년이 넘는 고목들로 구성된 담양 관방제림이 한눈에 보인다.

<23. 소쇄원. 사진 안병수>


죽녹원의 전망대에서 보이는 '메타세쿼이아 길'은 1970년 담양군은 가로수길 조성에서 8.5km에 묘목을 심은 것이 20m~30m의 쭉 뻗은 높이를 자랑하는 가로수가 있는 지금의 메타세쿼이아 길이 되었다. 2008년 건설교통부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최우수상에 올랐고, 영화 '화려한 외출'의 주인공 김상경이 여유로이 택시를 운전하는 모습, 그리고 오락프로그램인 1박 2일에서도 방문하는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더욱 유명세를 탔다. 현재 메타세쿼이아 길 8.5km 중 학동리 앞 1.5km 구간은 아예 차량통행이 금지되었고 그 자리에 벤치와 오두막, 간이 화장실 등,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온 방문자가 즐길 수 있는 길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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