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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May 30. 2020

[이규보의 술 세계]술 떨어진 날은 가뭄과 같네

이규보의 시를 통해 보는 술 인문학

전국을 분홍빛으로 수놓던 진달래와 철쭉꽃은 어느새 떨어지고, 이제 곧 본격적으로 열매가 영글어지는 여름이 오고 있다. 최근에는 가벼운 비 소식이 꽤 자주 들렸는데, 이러한 비소식에 맞춰 술을 비유한 대문호가 있었다.

역사 시험, 문학 시점에 자주 등장하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등을 집필한 이규보(李奎報)라는 인물이다.


그는 대문호 이상으로 애주가로도 잘 알려진 인물인데, 그가 남긴 다양한 술에 대한 시와 소설에서 그의 문학성을 알 수 있다. 특히 술을 보내준 친구에게 고맙다고 하는 답장은 8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술이 없는 날을 가뭄, 술이 온 날을 단비라고 표현했다.


- 술을 보내 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

근래엔 술마저 말라버려 온 집안에 가뭄이 든 것 같았네.
고맙네. 그대 좋은 술을 보내주니 때 맞춰 내리는 비처럼 상쾌하네


그가 얼마나 해학적인가는 술병이 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알 수 있다.


- 숙취로 고생하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

 나는 노련한 의원이라 병을 잘 진단하지.
지금 술병이 누구 때문인가 하면 틀림없이 누룩 귀신일 걸세.
새벽에 아황주(鴉黃酒) 닷 말을 단숨에 마셔야 해.
이 약이 유백륜이 알려준 비방일세


여기서 아황주는 고려시대의 유명한 술로 진한 황색을 가지고 있어서 아황주라고 불렸으며, 유백륜이란 중국의 유명 시인으로 병을 술로 다스리라는 대주가이다. 결국 술병을 술로 다스리라는 친구를 놀리는 글이며, 저때부터 누룩이 술맛을 좌우한다는 것을 이규보는 알고 있었다. 알고보면 양조의 이치도 이규보는 잘 알 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국이상국집. 이규보의 시·전(傳)·설·서(書)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그가 보낸 편지, 서사시 등을 모두 모았고 주몽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왕편도 동국이상국집에 기록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문호가 들은 같은 내용의 편지를 두 편 썼다는 부분이다. 그래서 하나는 친구에게 보내고, 하나는 자신이 소장했다. 친구에게 보내주면 그 글이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규보는 인생에서도 술을 자주 논했다. 그의 시 꽃샘바람에서도 알 수 있는데, 시기하고 질투하는 인간사를 초봄에 불어오는 차가운 꽃샘추위와 비유했다.


- 인생을 꽃샘바람에 비유한 시-

꽃 필 땐 광풍도 바람도 많으니 사람들 이것을 꽃샘바람이라 한다.(중략)

어찌 그 고움을 시기하여, 광풍을 남겨 보냈을까.
꽃 피어 감상하기 좋으나 꽃 지는 것을 슬퍼할 게 뭐 있나.
 피고 꽃 지는 것 모두가 자연이니 열매가 생기면 반드시 꽃 피어 대신한다.
묻지 말게나, 오묘한 이치 자연의 이치 술잔 잡고 소리 높여 노래나 불러보자꾸나.


결국, 아무리 주위에서 시샘하고 시기하여 꽃은 떨어질 수 있으나 열매는 맺어진다는 자연철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는 병중에서도 술을 사양하지 못한다는 시을 남기기도 했다.


- 병 중에서도 술이 그립다는 시 - 

"병중에도 오히려 술을 사양 못하니 죽는 날에 가서야 비로소 술잔을 놓으리라.
깨어서 날아간들 무슨 재미랴 취하다 죽는 것이 진실로 좋을시고"


늘 거문고와 붓과 벼루, 그리고 술을 사랑했던 자연친화적인 문학가였다. 그렇다고 그가 마냥 술을 많이 마시자는 예찬론자는 아니었다. 그의 아들이 자기와 닮아 과음을 하는 것을 걱정하는 글이 남아있으며, 그가 쓴 최초의 가전체 소설 '국선생전'에서는 좋은 술과 나쁜 술의 비유를 들면서, 술은 집안을 살릴 수도 있으나 망하게 할 수 도 있다는 양날의 검이라는 생각을 담아 글을 쓰기도 했다.


결국, 애주가란 것은 무작정 술을 많이 마신 다는 것이 아닌 술이 가진 무서움도 잘 안다는 것. 알고보면 술이란 것은 800년 전의 이규보와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이것이 진정한 술의 가치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해당 내용에는 개인적인 해석이 있음도 말씀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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