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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Aug 08. 2020

대기업은 못 따라 하는 술 비즈니스

창의적으로 진화하는 전통주의 세계

세분화되어가는 한국 술의 세계


세상이 세분화되면서 술 산업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주로 마시는 것이 소맥이었다면, 이제는 소주도 복고풍 디자인 제품 마시고 있으며,  맥주도 국산을 넘어 전 세계의 다양한 제품을 가까운 편의점에서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수제 맥주, 내추럴 와인, 그리고 스파클링 막걸리 등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카테고리도 계속 증가 중이다.


흥미롭게도 우리 술의 영역도 계속 발전 중이다. 정부의 제조 면허 완화 및 인터넷 판매 등의 허가로 우리 술의 다양성이 확대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 층이 꾸준히 이 산업에 뛰어들면서 전통에만 얽매이는 것이 아닌 새로운 발상과 참신한 기획력, 그리고 지역성을 강조한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품들은 중장년 층이 아닌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전통주의 최대 소비처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이러한 제품 들 중, 최근에 핫이슈를 이끌고 있는 두 가지 제품을 소개해 본다.


북유럽의 감성을 담은 개포동 C 막걸리

강남의 개포동에 흥미로운 양조장이 하나 생겼다. 건물의 2층을 빌려 개조한 양조장으로 양조장 면적은 약 15평 전후. 그리고 나머지가 사무실로 아주 작고 귀여운 양조장이다. 이곳의 대표는 최영은 씨. 한국외대 네덜란드어를 전공하고 벨기에에서 MBA를 취득, 이후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금융인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그래서 양조장의 인테리어도 원색의 파스텔톤이 그대로 살아있는 북유럽 감성도 느껴지는 공간이다.


테이스팅 중인 최영은 대표. 무에타이 유단자이기도 한 독특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강남이라는 모던함에 반기를 들다

최영은 씨가 강남 개포동에 양조장을 만든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남은 늘 첨단에 모던함만을 추구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러한 것에 그녀는 반기를 들고 싶었다. 강남 역시 수십 년 전에는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받으러 다니기도 했고, 사발에 막걸리를 마시던 정감 있는 곳이라는 것. 그래서 이곳에도 고향의 향수가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양조장을 오픈한 것이다. 준비한 기간은 약 3년. 여기에 그리고 십수 년 간 해외에서 맛본 수많은 외국 술들의 경험을 담아 자신만의 술을 전통 기법을 통해 만들고 싶어서였다.

원색의 파스텔톤이 강조된 양조장 내부

그래서 이곳에서 만드는 막걸리는 뭔가 개성이 특별하다. 이곳의 제품명은 모두 '개포동 C 막걸리 시리즈'

모든 막걸리에 C가 들어가 있다. 이유는 'C'가 가진 함축적 의미가 다르기 때문.  'Channel', 'Chapter', 등에 들어가는 'Ch'는 모으다는 의미가 있으며,  '컴(COM)''함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Creative', 'Colorful', 'Cosmopolitian', 'Classic', Craft'까지 정말 다양하다. 여기에 최영은 대표의 성인 'Chio'도 결국 C. 결국 이 C 막걸리가 뜻하는 것은 동서양의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재료와 색감에 창조적, 하지만 전통에 기반한 최 씨 술이 되는 셈이다.


C 막걸리 시리즈. 오른쪽부터 시그니쳐 큐베, 옐로, 그린, 퍼플, 실험 중인 브라운과 레드. 각각 천연 재료를 통해 색과 맛이 강조되었다.


서울 제기동의 약령시장에서 구한 쥬니퍼 베리를 넣은 막걸리


현재 출시된 'C 막걸리'는 현재 총 4종. 모두 북유럽의 감성을 담은 형형색색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은 '시그니쳐 큐베(signature Cuvee)'. 큐베라는 이름은 항아리를 뜻하는 것으로, 항아리에서 숙성을 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국산 쌀과 전통 누룩을 넣어 무인공감미료로 만들어진 프리미엄 제품이다.

특이한 점 것은 '쥬니퍼베리(노간주나무 열매/Juniper Berry )'가 들어갔다는 것. 이 '쥬니퍼 베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진(Gin)'의 원료이자 어원이 되는 원료다. 다만 일반적인 '쥬니퍼 베리'는 수입산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달랐다. 바로 서울 제기동의 약령시장에서 구입한 국산 제품이라는 것. 수입의 느낌이 물씬 나지만 알고 보면 우리 것임을 알리는 것이 또 이 제품이다.


맛을 보니 진 특유의 상큼함이 느껴지지만 달콤함과 부드러움도 살아있었다. 알고 보니 건포도가 살짝 원료로 들어가 있다. 쥬니퍼 베리의 찌르는 맛을 부드럽게 감싸주기 위해 넣었다고 한다. 최 대표는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진(Gin)과 우리 막걸리와의 조합을 고민해 만들어 본 제품이라며, 극동에 있는 한국과 북유럽이라는 유럽의 끝자락에 있는 네덜란드의 문화가 이렇게 통할 수 있다는 모습을 이 제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였다.


생전 처음 본 ' Yellow 막걸리' 역시 눈길을 끌었다. 레몬그라스와 당근을 넣어 발효한 이 막걸리는 당근 특유의 단맛을 레몬의 상큼함이 잡아주는 밸런스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의외로 단 맛이 전혀 없는 슈퍼 드라이함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와인의 감성을 닮은 막걸리도 있었다. 제품명은  'Purple 막걸리'.  블루 베리를 넣은 붉은빛이 감도는 막걸리이다. 와인의 감성이 느껴진 이유는 바로 와인 효모가 추가되었다는 것. 그래서인지 와인 특유의 복잡한 향미와 식감이 맛에서도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모두 알코올 도수는 12도로 맞춰져 있다.

C 막걸리 그린. 찹쌀로 만든 이 술은 마치 찹쌀 쑥떡을 연상시키는 식감을 가지고 있다.

끝판왕은 녹즙과 유사한 색을 'Green 막걸리'. 개똥쑥과 케일을 넣어 만든 제품으로 겉모습만 보면 식욕을 돋우기에는 어려운 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맛을 보면 기존의 제품과는 다른 부드러운 질감과 달콤한 맛을 느껴졌다. 알고 보니 원료인 찹쌀이 주는 달콤함과 부드러움이었다. 맛만 보면 찹쌀로 만든 쑥떡의 질감과 하겐다즈의 그린티 아이스크림이 느껴지기도 했다.

30평 남짓의 아주 작은 양조장이지만 견학 체험 역시 진행하고 있다. 다만, 예약제로 진행되고 있어서 인스타그램의 메시지로 일정을 조정하면 탐방할 수 있다.  최 대표는 한국의 전통주가 전통만을 고집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다양한 외국의 문화와 접목을 해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발전의 요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다양한 한국의 허브가 들어가는 부자 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만든 진(Gin)
양평 부자 진

올여름에 전통주 업계를 강타한 술이 있는데, 양평의 부자 진(Gin)이라는 증류주다. 원래 진(Gin)은 네덜란드에서 시작해서 영국에서 꽃을 피운 술이다. 네덜란드의 의사인 실비우스가 1660년에 이뇨작용을 돕고자 만들었다는 것. 이후 네덜란드의 귀족인 오렌지 공이 영국의 명예혁명으로 영국 왕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국에 도입이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제조방법은 증류주에 쥬니퍼 베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허브를 넣어 다시 한번 증류하면, 각종 허브의 풍미를 품은 채 술이 나오며 이미 10년 전에 유럽에는 기존과 다른 독특한 방식의 크래프트 진 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러한 유럽의 감성을 푹 가진 술을 한국에서 이제 만들고 있다. 기존에도 한국에서 만드는 진은 있었다. 하지만 외국의 수입 주정에 첨가되는 허브도 모두 수입산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100% 국내 농산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술을 만드는 주인공은 영국과 싱가포르의 골드만삭스에서 뱅커로 활동했던 조동일 씨. 쌀 증류주 100%에 아버지의 유기농 허브농장에서 가꾼 재료로 만들어진다. 한마디로 아버지와 아들이 만드는 진인 것이다.


부자 진을 만드는 조동일 씨(오른쪽)와 부친인 조부연 씨.

 증류 기술은 영국과 싱가포르에서 익혔으며. 진의 원료인 증류주는 국내산 쌀 증류액에 15가지의 허브를 넣어 개성 있는 향미를 나타나게 했다. 대표적인 허브는 케모마일, 라벤더, 레몬 베버나, 쥬니퍼 베리 등 서양의 허브에서 한라봉, 헛개나무, 솔잎 등 한국 특유의 허브를 넣은 것이 특징이다. 전체적인 맛은 박하와 같은 민트가 주는 맛에 상큼한 감귤계의 단맛이 살아 있다는 느낌.


조동일 씨는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클라이언트 들과 자연스럽게 진을 즐기는 일이 많았는데 한국에는 왜 진이 없는가에 착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만의 코리안 크래프트 진을 만들겠다는 신념 하에 4년 전부터 이 일에 몰두, 올해 첫 출시를 했다. 더불어 세계 200여 개의 국가에 한국산 허브의 맛을 듬뿍 품은 코리안 크래프트 진을 수출해 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은 따라 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술 산업

이러한 술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발상과 실행이 필요하다는 것. 한마디로 재료와 원료 구하는 것부터 발품 팔아 찾아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기업이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 국산 원료 자체가 대기업에 공급될 정도로 많은 양도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사람의 따뜻한 감성을 넣는 작업이 많기 때문이다. 기계화되고 산업화로 추진하는 대기업에서는 생각은 있어도 따라 하기는 어려운 사업인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결국 이러한 제품은 단순히 맛과 가격으로 비교하는 가성비 시장이 아닌,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담은 가심비 시장이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으며, 획일화된 주류 시장에서 오히려 트렌드를 이끄는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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